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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가뭄 끝은 있다고 말하지만

by 한종호 2015. 11. 27.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4)

 

가뭄 끝은 있다고 말하지만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城門)의 무리가 곤비(困憊)하여 땅에 앉아 애통(哀痛)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귀인(貴人)들은 자기(自己) 사환(使喚)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 땅에 비가 없어 지면(地面)이 갈라지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버리며 들 나귀들은 자산 위에 서서 시랑(豺狼)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예레미야 14:1-6).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속담이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면, 가뭄의 피해보다는 장마의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아무리 큰 가뭄이라도 약간의 곡식은 거둘 수 있지만, 큰 장마에는 농작물은 물론 농토까지 유실되기 때문에 피해가 장마의 피해가 훨씬 크다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가뭄을 겪어본 이는 이 속담 앞에 고개를 저을 지도 모른다. 차라리 장마는 아무리 피해가 커도 잠깐 지나간다. 하지만 가뭄은 다르다. 허구한 날 마른하늘이면 논밭보다도 농부의 가슴이 타들어간다. 자식 죽는 것은 보아도 곡식 죽는 것은 못 보는 것이 농부의 마음, 시뻘겋게 타 죽어가는 곡식을 볼 때면 농부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밥과 반찬을 나눠먹으며 인심 좋게 지내던 이웃끼리도 가문 날 제 논에 대는 물을 두고서는 고성을 지르며 멱살을 움켜잡기도 하고, 그러다간 낫을 들고 싸우기도 한다. 그게 가뭄이다. 가뭄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겪어본 이들만 안다.

 

 

 

 

계속되는 가뭄을 두고서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유다 백성들이 가뭄으로 인해 겪고 있는 고통을 주님은 알고 계시다.

 

성읍마다 백성들이 곤비하여 땅에 앉아 있다. ‘곤비’(困憊)괴로울 곤’()피곤할 비’()를 쓴다. ‘이라는 글자는 에울 위’() 안에 나무 목’()이 들어간 글자로, ‘사방이 둘러싸인 곳에서는 나무가 자라기 곤란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 백성들은 가뭄으로 인하여 괴롭고 피곤하여 땅에 주저앉아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가뭄이 찾아오면 고통을 겪는 것에 귀천이 따로 없다. 아무리 돈이 많은 귀인들이라 하여도 어려움을 겪기는 매한가지다. 어디에 가서라도 제발 물을 구해오라고 자기 사환들을 보내지만 극심한 가뭄에는 우물에서도 물을 구할 수가 없다. 샘의 근원이 마른 탓이다. 물을 구하지 못한 종들은 빈 그릇으로 돌아오는 것이 부끄럽고 죄송하여 머리를 가린다.

 

비가 오지 않으면 가장 고통을 받는 것이 농부이다. 자라던 곡식은 모두 말라 죽고, 씨를 다시 뿌릴 수도 없다. 먼지가 나는 땅에 씨를 뿌려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상한 농부는 애를 태우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가뭄으로 인한 고통은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자연도 짐승들도 똑같이 고통을 받는다. 새끼를 낳은 들녘의 암사슴은 풀이 없어서 결국은 새끼를 포기한다. 들 나귀는 마실 물이 없어 자산’(赭山)에서 시랑’(豺狼)처럼 헐떡인다. ‘자산’(赭山)이란 붉은 흙 자’()메 산’(), 어디에도 풀이 없다보니 지금 들 나귀는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벌거숭이 언덕에 서 있다. ‘시랑’(豺狼)승냥이 시’()이리 랑’()이다. 그 중 가뭄에 강하고 물 냄새를 잘 맡는 나귀도 소용이 없다. 승냥이와 이리처럼 헐떡거릴 뿐이다. 어디에도 뜯어먹을 풀이 없다보니 나귀의 눈이 흐려질 정도이다.

 

이처럼 극심한 가뭄은 왜, 어디에서 왔을까?

 

하나님 백성들의 죄와 교만 때문이었다. 주님은 백성들의 교만을 두고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 같이 흩으리로다”(13:24) 말씀하셨다. 바람에 불려가는 사막의 검불에서는 물기 한 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백성들은 뒤늦게 아우성을 친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희망이시라고, 환란을 당할 때 구해 주시는 분이라고, 그런데 어찌 나그네처럼 행하시고 하룻밤을 묵으러 들른 행인처럼 행하시냐고 부르짖는다(14:7~9).

 

하지만 주님은 전혀 듣지를 않으신다. 오히려 예레미야에게 경고를 하신다. 백성들이 금식을 한다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니 너는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다(14:11~12).

 

결국 극심한 가뭄을 불러들인 것은 하나님 백성들의 죄와 교만이었다. 인간이 불러들인 가뭄으로 인해 땅과 짐승들이 함께 고통을 받는 것이다.

 

어찌 예레미야 시대뿐일까? 곤비함에 지친 사람들의 탄식소리는 하늘로 치솟고 있고, 사람도 짐승도 새끼까지 포기를 하는 일들이 오늘도 벌어지고 있다. 자연은 함부로 파헤쳐지고 있고 그 안에서 즐겁게 살던 온갖 생명들은 신음을 하며 고통을 받는다.

 

이 시대를 지배하는 극심한 가뭄의 이유가 무엇인지 주님의 백성인 우리는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애써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뭄 끝은 있다고 속담은 말하지만 주님의 백성인 우리의 죄와 교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땅의 가뭄은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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