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46)
날마다 ‘시작하는’ 자의 영혼
누가가 말하는 ‘아이’는 맑은 공기와 같은 것,
티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영혼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이와 같이 영혼이 순결하고 티가 없어야 합니다.
독일의 신비주의자인 로렌츠 마티가 자기의 영적 스승 칼프리트 뒤어크하임 백작의 집을 찾아갔을 때, 백작은 이미 팔순의 나이인데다 거의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두 사람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 로렌츠는 자기 스승에게, 높으신 연세와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주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다네.”
백작이 나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인간이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본질과 하나가 되려고 아무리 머리 터지도록 애를 써 봐도, 인간은 언제나 처음 있는 것이야.”
로렌츠는 스승을 만난 뒤 그 소감을 이렇게 썼다.
“삶의 종착역에 다가온 노인네. 그런데도 아직도 처음 시작이라는 노인네. 나와 똑같이 시작하는 사람. 물론 나와 약간의 차이는 있다. 스승은 엄청나게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작하는 자만이 갖는 열려 있고 편견 없는 태도로 이 둘을 결합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과연 우리도 이런 초보자의 마음으로, ‘시작하는 자의 영혼’으로 살 수 있을까? 자기의 경험과 지식에 붙잡히지 않고 언제나 초보자의 마음으로 사는 자는 경이로운 세계를 발견해 가는 어린아이와도 같다.
경험과 지식의 때가 묻지 않는 어린아이 같은 순결한 영혼, 예수는 그런 영혼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 주어져 있다고 단언했다.
어떤 영혼이 어린아이 같은 순결한 영혼인가?
‘순결’은 단지 성욕의 절제나 순진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엑카르트가 말하는 순결은 “원죄나 이분법 혹은 분리 의식이 싹트기 전의 존재의 상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자기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 자기의 뿌리를 되찾는 것, 자기가 누구의 형상으로 지어졌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엑카르트가 순결을 어린아이와 연결 짓는 것은, 아이들이 성적으로 때 묻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른들보다 ‘출처’ 내지 ‘근원’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래서 전문가라든가 똑똑한 체 하는 자들과 항상 충돌했고, 순결한 마음을 상실한 그런 이들에게 따끔하게 충고했다.
“때가 된 늙은이는 태어난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아이에게 삶이 어디 있느냐고 묻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그럴 때 그는 살게 되리라.”(도마복음)
고진하/시인, 한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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