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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1)

by 한종호 2016. 6. 22.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3)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1)

 

인류 역사는 남성과 여성의 공조를 통해 일구어졌지만, 그 열매들은 남성에게 수렴되거나 통제되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 구원 역사에서 내리막길로 치닫는 혼돈의 사사시대(주전 1225년경), 사해 남서쪽에 위치한 다볼산에서 바락과 함께 가나안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여성이 있었다. 드보라다(사사기4장). 사사기 저자는 여성의 활약에 침묵하지 않았다.

 

사사기는 구약의 다른 책들에 견주어 유달리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머니, 아내, 딸로서 제각기 한 사회의 구성원이다. 가부장적질서에서 드보라를 비롯해 일부 여성들은 주체적인 자기결정권을 갖고 살았던 것이 눈에 띈다. 악사(사사기1:13-15), 야엘(4:18-22), 데베스의 여인(9:53-54)이 그렇다. 하지만 패역한 얼굴을 가진 사회의 비참한 희생자였던 여성들의 삶도 오롯이 그려져 있다. 입다의 딸(11:34-40), 집단 강간으로 잔혹한 죽음에 이른 어떤 레위인의 아내(19:24-26), 실로 축제에 참여했다가 강제결혼을 하게 된 여성들(21:16-23)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하고 불편하고 비통한 아픔들이다. 이 여성들의 삶도 구원 역사에 포함된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기에 대면하고 해석의 장에서 말해져야할 주제다.

 

그럼에도 이들 이야기는 잠깐 뒤로 미루고 모세와 견줄만한 지도력을 보여준 드보라의 삶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은 현재 제도교회의 여성 지도력에 대한 합의되지 않는 논의들이 미완의 과제로 남아서다. 드보라의 이야기를 오늘의 상황에서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반화의 유혹이 없지 않으나, 성경의 내러티브가 지금 우리 신앙의 맥락에서 해석학적인 상상력 발휘로 반복해서 이야기되어졌으면 한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깨달음의 원천이며 힘이기 때문이다.

 

 

 

드보라는 모세와 비견될 정도의 지도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너무 과한 평가 아니냐는 물음도 있겠지만, 사사기 4-5장의 이야기와 출애굽기 14-15장의 구성적인 유사성이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출애굽기 14-15장은 하나님이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시고, 정비된 군사들을 깊은 물에 수장시킨 이야기(14장)와 모세와 이스라엘이 함께 승리를 찬양한 이른바 ‘모세의 노래’(15장)로 구성되었다. 사사기 4-5장의 짜임새 역시 마찬가지다. 철 병거 900대로 무장한 가나안 병력과의 전투 이야기(4장)와 이른바 ‘드보라의 노래’(5장)는 승리를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한 시다. 더욱이 이 두 노래(출애굽기 15장, 사사기 5장)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시 본문으로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모세처럼 드보라 역시 예언자이면서 공동체의 지도자였다.

 

드보라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을 한 번은 이야기체로(4장), 한 번은 시로(5장) 각기 생략한 역사적 정황들을 보충한다. 왼손잡이 사사 에훗이 죽고 이스라엘이 다시 여호와 눈앞에서 악을 행했다. 이 때문에 여호와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넘기셨다(4:1-2).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5:6)라고 말할 정도니 에훗-삼갈-야엘 시대의 고통의 크기가 짐작된다. 가나안의 혹독한 학대 때문에(4:3) 큰 길을 피해 작은 길로 통행할 정도로 공포가 일상화된 상황이다. 일상화된 공포는 악에 대한 침묵을 키워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사기 4장은 2명의 여성과 2명의 남성을 주요한 인물로 소개한다. 드보라의 지휘를 받는 바락(4:1-10; 4:12-16), 그리고 가나안 왕 야빈의 권위 아래 있는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를 죽인 여성 야엘이 각기 한 쌍이다(4:17-22). 바락과 시스라 둘 다 부차적인 지도권을 가진 남자들이다. 거기다 가나안 왕 야빈(사사기 4:2, 3)과 야엘의 남편 헤벨(4:11, 17)은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되는 이야기의 배경일 뿐이다. 의도성이 짙게 깔린 구성이라서 드보라와 야엘의 출현은 의미심장하다.

 

가나안 왕 야빈이 무려 20년이라는 세월동안 이스라엘 후손을 억압했던 상황이다. 야빈 왕이 “… 이십 년 동안 … 심히 학대했으므로 … 여호와께 부르짖었다”(4:3)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이집트 노예생활의 괴로움 때문에 부르짖어 하나님이 모세를 구원자로 보내신 상황과 흡사하다(출애굽기2:23-25). 심각한 학대의 상황에서 사사들이 세워지는 방식은 출애굽의 축소판 같다. 자유와 구원이 절박한 시점이다.

 

엄혹한 시대, 드보라에 대한 소개가 독특하다. ‘사사’(쇼페트)의 어근이 되는 “샤파트”(재판하다, 판결하다, 심판하다)라는 히브리말 여성 분사형 동사, “쇼페타”(그녀가 재판하고 있었다)가 나올 때 까지 6개의 여성명사들이 연속되는데, 그녀의 남편 이름까지도 여성형이다(4:4).

 

 

그리고 드보라 그녀는 예언자요, 랍비돗아내였다. 그녀는 그때에 이스라엘을 재판하고 있었다(4:4).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에서는 드보라가 랍비돗의 아내라는 사실보다 예언자였다는 것이 순서상 앞선다. 고대 사회에서 여성은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 결혼을 했다면 남편에 의해 존재감이 표시되었다. 독특하다. 더욱이 옷니엘이나 에훗처럼(3:9, 15),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3:10)라는 소명 양식은 생략된 반면에 다른 사사들에게는 소개되지 않은 직임을 드보라만 수행했다.

 

 

그녀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앉아 있었고, 이스라엘 후손들이 재판을 받기 위해 그녀에게 올라왔다(4:5)

 

 

다른 나머지 사사들(judges)은 재판하는 관리, 혹은 스승 같은 모범적인 인물에 상응하는 ‘사사’(공동번역: 판관)와 실질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당시 ‘사사’(士師)는 하나님의 영을 받은 군사적인 지도자로서의 역할이 더 컸다. 인간적인 약점도 여과 없이 노출되었다. 반면 드보라는 사사의 본래적 의미에 충실했던 셈이다. 드보라에 대한 한 절 짧은 묘사는(4:5) 아침부터 저녁까지 백성들을 재판했던 모세를 떠올리게 한다(출애굽기18:13). 더욱이 그녀가 재판하는 장소는 벧엘과 라마 사이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나무였다. 벧엘은 조상들과의 언약을 확인시켜주는 장소요(창세기35:11-15), 라마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며 예언자였던 사무엘이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을 다스린 곳이다(사무엘상7:16).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자유로운 통행조차 두려운 공포의 시대(5:6),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될 때가지 이스라엘의 마을들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5:7). 이때 드보라는 아버지들이 주도하는 질서에서 절망의 상황을 딛고, 이스라엘의 크고 작은 민사적인 문제와 다툼을 해결하는 정의실행을 위한 재판관으로,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예언자로 살았다(4:11, 17). 드보라는 누구도 감히 정의수행을 위해 일어서지 않는 암흑의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어머니’(5:7)로 세워졌다. ‘시대의 어른’으로 부름 받았다.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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