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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말씀을 제 집으로 삼은 사람

by 한종호 2016. 6. 29.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59)

 

말씀을 제 집으로 삼은 사람

 

이에 그 방백(方伯)들이 왕(王)께 고(告)하되 이 사람이 백성(百姓)의 평안(平安)을 구(求)치 아니하고 해(害)를 구(求)하오니 청(請)컨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城)에 남은 군사(軍士)의 손과 모든 백성(百姓)의 손을 약(弱)하게 하나이다(에레미야 38:4).

 

오래 전 기억이 맞는다면 장작불 속에서 타 죽어간 개미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솔제니친이 아닐까 싶다. 활활 타고 있는 모닥불 속에 통나무 하나를 집어넣었다. 통나무가 타오르기 시작했을 때 불이 붙은 장작에서 개미들이 떼를 지어서 쏟아져 나왔다. 무심히 던져 넣은 그 장작개비 속에 개미집에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는 황급히 불 붙은 통나무를 모닥불 속에서 끌어내었다. 생명을 건진 개미들의 일부가 불을 피해 달아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미들은 좀처럼 불길을 피해 달아나려고 하지를 않았다. 가까스로 불길을 피했던 개미들도 방향을 바꾸어 통나무 둘레를 빙빙 맴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많은 개미들이 여전히 불이 타고 있는 통나무 위로 다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통나무에 붙어서 그대로 타 죽어가는 것이었다.

 

개미 이야기는 기이하게 다가온다. 불에 타서 죽게 될 위험이라면 서둘러 불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 그런데 그 어떤 힘이 개미들을 제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일까, 그 무엇이 개미들을 불 속에서 타 죽게 했던 것일까, 의아한 생각이 든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의 손에 넘어갈 것을 여전히 외친다. 예루살렘 성 안에 머물러 있는 자는 전쟁이나 기근이나 염병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바빌로니아 군인들에게 나아가서 항복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목숨을 건질 것이라고, 결국 예루살렘 성은 바빌로니아 왕의 군대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대신들이 시드기야 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은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해서, 아직도 이 도성에 남아 있는 군인들의 사기와 온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참으로 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재앙을 재촉하고 있습니다”(4절, 새번역).

 

사람들은 도무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군인들의 사기와 온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면서, 백성의 평안이 아니라 화를 구하고 있다면서 예레미야를 죽여야 한다고 왕에게 고한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말은 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말을 하고 있는 예레미야를 없애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예레미야의 모습이 딱하고 안쓰럽다. 그런 말을 하면 어떤 결과가 주어질지 뻔히 알면서도 어찌 예레미야는 멈추지 않았던 것일까, 꼭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불편한 심정으로 묻게 된다.

 

돌아오느니 배척과 비난과 박해뿐임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예레미야는 그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이라 말을 할 줄 모른다고, 주님의 뜻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어리고 부족하다면서 예레미야는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려고 했다. 어떻게든 주님을 설득해서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은 부름을 받았다.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1:7).

 

거듭해서 명하시는 주님의 말씀 앞에 마침내 예레미야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주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예레미야의 입에 대며 “보라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1:9) 하신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똑똑히 보아라. 오늘 내가 뭇 민족과 나라들 위에 너를 세우고, 네가 그것들을 뽑으며 허물며, 멸망시키고 파괴하며, 세우며 심게 하였다”(1:10).

 

예레미야를 세워 뭇 민족과 나라들을 뽑으며 허물며, 멸망시키고 파괴하며, 세우며 심게 하시겠다니, 누가 보아도 그 일은 자신을 아이라 고백하는 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결국 주님께 졌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부름을 받을 때야 도망을 치고 싶었다 할지라도 마침내 부르심을 받아들였다면 제대로 쓰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라 부름을 받은 사람, 사람들이 나를 뭐라 하든, 박수를 치든 손가락질을 하든, 나는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할 사람, 예레미야는 타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불 속으로 돌아가면 불에 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집을 떠날 수가 없었던 개미들에 비춰 생각하면, 예레미야야 말로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제 집으로 삼은 사람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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