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46)
수넴 여인, 자식 낳기도 어렵고 키우기도 어렵다(2)
1. 사랑하는 아이,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낳은 아이가 손 쓸 겨를도 없이 죽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아이가 제 무릎에서 죽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수넴 여인은 그저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본능적인 의지만 남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아들이 죽은 다음, 그 아이를 엘리사의 침상에 뉘어놓고, 나귀를 타고 쉬지 않고 갈멜 산까지 달려가서 엘리사를 만난다. 엘리사는 자신의 발을 꼭 껴안은 채 말을 하지 못하는 수넴 여인을 보면서, 뭔가 말하기조차 어려운 일을 그가 당했음을 짐작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그래서 엘리사는 신통력이 작동하지 않음을 자인한다.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27절).
2. 엘리사는 수넴 여인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아이가 죽었음을 알아차린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28절). 이 말을 우리는 16절에서 이미 들었다. 그런데 이게 참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말이다. 아마 독자들은 수넴 여인이 하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단 수넴 여인은 자신이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간구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엘리사를 원망하고 따지는 것 같다. 자신은 아들을 원한 적이 없는데, 왜 당신 맘대로 내가 아이를 갖게 해서 이런 고통스런 일을 겪게 하느냐는 그런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3. 성경기자가 말하는 대로, 수넴 여인은 자녀를 출산하지 못했고 당시에 남편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14절) 앞으로 아이를 출산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으며, 그리고 그 당시에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삶을 힘겹게 하는지 독자들도 충분히 짐작할 것이기 때문에, 엘리사가 아들을 낳게 해주겠다고 말했을 때 수넴 여인이 뛸 듯이 기뻐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수넴 여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조금도 기뻐하는 것 같지 않다. 아이를 낳지 못해서 마음 아파하고 어찌 되었든 무슨 방법을 쓰든 어머니가 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보통 여자들인데, 수넴 여인은 그런 모습, 어머니가 되려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독특한 여인이다.
4. 수넴 여인이 느닷없이 자신을 찾아와서 하는 행동을 보고 또 그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엘리사는 다급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게하시에게 지시한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단단히 준비하고 수넴 여인 집으로 속히 가서 엘리사의 지팡이를 아이 얼굴에 놓으라고 지시한다(29절).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려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29절).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매우 엄중한 지시를 하는 것이다. 한 눈 팔지 말고 수넴 여인 집까지 빨리 달려가서 아이를 살리라는 것이다.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 살리는 일을 매우 중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5. 그러나 수넴 여인은 엘리사가 게하시를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해서, 즉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일러준 대로, 엘리사의 지팡이를 아이 얼굴에 놓는다고 해서 아이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반드시 엘리사가 가야 한다고 고집한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30절). 그래서 엘리사는 마지못해 길을 떠나고 수넴 여인이 그 뒤를 따랐다.
6. 그런데 엘리사의 지시를 들은 게하시가 엘리사의 지팡이를 들고 먼저 수넴 여인 집으로 가서 그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에 놓았지만, 예상과 달리 아이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엘리사가 수넴 여인 집에 도착하자 게하시는 엘리사를 맞으면서 자신이 지팡이를 아이 얼굴에 놓았지만, 아이가 깨지 않았다고 보고한다(31절). 독자들은 게하시가 엘리사보다 능력이 부족해서 아이를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 엘리사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하는 방법을 보면, 꼭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7. 엘리사는 집으로 들어가서 자기 침상에 누인 아이가 죽은 것을 확인한다. 엘리사는 문을 닫고 주님께 기도한 다음,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아이를 살려낸다. 침상에 반듯하게 누인 아이 위에 몸을 엎드리고 아이 입과 자신의 입, 아이 눈과 자신의 눈, 아이 손과 자신의 손을 대고 아이 몸이 다시 따뜻해질 때까지 그렇게 했다. 침상에서 내려와 집 안을 이리 저리 다닌 후, 다시 아이 위에 몸을 엎드렸더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깨어났다. 엘리사는 자신이 게하시에게 말한 방식대로 하지 않았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자기 지팡이를 아이 얼굴에 올려놓으라고 지시했지만, 게하시가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깨어나지 않았다고 하자, 다른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아이를 살렸다.
8. 아이가 눈 뜬 것을 확인한 엘리사는 수넴 여인에게 아이를 데려가게 한다.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36절). 이것은 단순한 말 같지만, 수넴 여인이 그 아이의 어머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야기는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37절)로 끝난다. 이것은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그 아이 어머니로서 엘리사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9. 이렇게 끝난 수넴 여인 이야기는 열왕기하 8장에서 다시 이어진다. 엘리사가 수넴 여인에게 가족들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고 말한다.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년 동안 임하리라”(1절). 기근으로 인해서 살던 곳을 떠나서 이주하는 것은 아브라함, 야곱, 그리고 엘리멜렉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칠년 기근은 요셉을 떠올리게 한다.
10.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 즉 엘리사가 일러준 대로 블레셋 땅에서 7년을 우거하다가 기근이 끝나자 다시 돌아온다. 돌아온 수넴 여인은 제 집과 전토를 되찾기 위해서 왕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때 마침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가 왕과 함께 수넴 여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단다. 왕이 엘리사 이야기, 특히 기적을 일으킨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 해서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이를 살린 이야기를 게하시가 왕에게 들려주는데, 그때 마침 수넴 여인이 왕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정말 기막힌 우연의 일치이다. 왕은 수넴 여인으로 하여금 엘리사가 아이를 살린 이야기를 직접 하게 한다. 그런 다음 왕은 특별히 관리를 한 사람 임명해서 수넴 여인이 청원한 일을 처리하게 한다. 이렇듯 여러 가지 경우마다 성경기자는 수넴 여인의 죽은 아이를 엘리사가 살린 것을 강조하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애쓴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 가족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직접 나서서, 아니면 남들이 서로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와주었던 것이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가족을 지켜주는 수호천사, 진정한 모정천리의 예언자였던 것이다.
이종록/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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