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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리스바, 누구도 그처럼 모권을 주장하지 않았다(2)

by 한종호 2016. 5. 3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43)

 

리스바, 누구도 그처럼 모권을 주장하지 않았다(2)

 

1. 또 다른 비극. 또 다른 아픔. 이미 일어난 비극과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내고 또 다른 아픔을 겪게 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가혹한 자연재해를 계기로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과거사를 살피고 과거 역사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자들을 찾아내서 진상을 규명하고 보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처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가뭄과 기근의 원인으로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집단 살해한 것을 알려주신 하나님도 그것을 결코 원치 않았을 것이다.

 

2. 하지만 일은 그렇게 흘러갔다. 자연재해의 원인을 찾다가, 과거에 사울이 저질렀던 집단살해의 진상을 밝혀낸 다윗은 사법 제도를 작동하지 않고, 기브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물었다. 다윗은 금전적 보상을 제안했는데, 기브온 사람은 그것을 거부하고(“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며”), 사울의 남은 가족 중에 일곱 사람을 자기들에게 넘겨주어서, 그들을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에서 자신들이 직접 교수형에 처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다윗은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3. 이렇게 하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나치게 잔인한 처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해결하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제도적이고 사법적인 처벌을 하지 않고,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에게 직접적인 보복을 하게 함으로써,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게 하는 것은 왕으로서 올바른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4. 어쨌든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이 요구하는 대로 자신이 직접 일곱 사람을 택해서 그들에게 내어준다. 사울과 리스바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 그리고 아드리엘과 사울의 딸 메랍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 아들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다. “기브온 사람들이 그들을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 매어 달매 그들 일곱 사람이 동시에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21:9). 기브온 사람들은 일곱 사람을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 산에 있는 성소로 데려가서 성소 앞에서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5. 성경기자는 다윗이 므비보셋을 처형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다윗이 사건을 친분관계에 따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경기자는 다윗이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므비보셋을 처형대상자에서 제외시켰음을 강조함으로써, 다윗이 결코 사울 가문으로부터 왕권을 강제적으로 탈취하지 않았으며, 약속을 지키는 의리 있는 자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나 성경기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우리는 다윗의 행동이 정당하지 않음을 느낀다.

 

6. 어쨌든 그렇게 해서 사건이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의외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성경기자는 21장 9절에서 그 일곱 사람들이 동시에 죽임을 당했다고 하면서, 그 때를 밝히는데, 이것이 복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메랍이 낳은 아들들은 다섯 명이었는데도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데, 리스바가 낳은 두 아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그 다음 이야기를 위한 복선이었다. 메랍은 아버지 사울이 저지른 집단 살해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아들 다섯 명이 기브온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자 다섯 아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서, 자포자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리스바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보리 베는 날 죽임을 당한 두 아들 시신을 지켰다.

 

7. 사울의 아내였던 리스바를 성경기자는 “아야의 딸 리스바”라고 한다. 그가 사울의 아내였다는 것보다 누군가의 딸이었다는 게 더욱 맘을 아프게 한다. 성경기자도 그랬던 모양이다. 두 아들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날, 리스바는 굵은 베로 만든 천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 장막처럼 치고 두 아들의 시신을 지켰다. 리스바는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했다”(11절). 그러니까 밤낮으로 제대로 잠도 못자면서 두 아들의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켰다는 것이다. 얼마 동안 그렇게 했을까? 정확한 날수야 알 수 없지만, 보리 베는 날부터 가을비가 내릴 때까지라고 했으니, 4월에서부터 10월경까지 대략 6개월가량을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정말 초인적인 모정이다.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한 서린 모정이다. 하지만 봄에서 초겨울에 이르기까지, 무더운 여름을 지나면서 시신들이 어떻게 됐을 것인지,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8. 리스비가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한이 깊었다는 사실이다. 기브온 사람들이 처형한 사람들의 시신을 땅에 묻지 못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참으로 감동적이면서 또 한편으론 한 서린 섬뜩한 모정! 리스바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던 모양이다. 민심이 들끓었을 것이다. 결국 다윗도 그 이야기를 들었단다. 다윗은 그 이야기를 듣고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당시 사람들, 그리고 독자들은 리스바가 시신을 지키는 모습에서 피맺힌 원한을 보았을 것이다. 이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다윗은 그 원한을 잠재우기 위해, 길르앗 야베스에 있던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찾아왔는데, 그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이 처형당한 사람들의 뼈, 즉 일곱 사람들의 유해를 거두어서, 다윗이 명한 대로 사울의 가족묘지에 합장했다.

 

9. 본문은 사람들이 다윗이 말한 대로 했더니,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말로 끝난다. 하나님은 감추어진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밝혀내기를 원하시고, 그리고 거기에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일과 전혀 무관한 사울의 일곱 아들을 단지 사울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다윗과 특별한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그렇게 사적으로 보복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곱 사람을 처형했는데도, 바로 비가 내려서 가뭄과 기근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지시해서 사울과 요나단, 그리고 일곱 사람들의 뼈를 가족 묘지에 합장했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다.

 

10. 성경기자는 과거의 죄악을 규명하고 청산하는 의로운 재판관으로 다윗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사울의 범죄만을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을 읽으면서 사울의 범죄뿐만 아니고 심층적으로 다윗의 범죄도 본다. 다윗의 행동이 과연 정당하고 합법적이었는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판단해야할 문제이다. 리스바. 그는 누군가의 딸이었으며,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두 아들의 어머니였다. 그가 보여주는 그 지독한 모정. 아, 정말 잔인한 모정의 세월이었다.

 

이종록/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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