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바, 누구도 그처럼 모권을 주장하지 않았다(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42)

 

리스바, 누구도 그처럼 모권을 주장하지 않았다(1)

 

 

1. 리스바와 메랍. 성경기자는 가혹한 삶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이 무력하고 가련한 여인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 이야기를 슬쩍 들려준다. 성군(聖君)이라는 위대한 왕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절, 하지만 언제나 살기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혹독한 가뭄과 기근이 3년 동안 이스라엘 땅을 폭력적으로 지배했다. 상황은 참으로 끔찍했을 것이다. 인심이 사나워져서, 자연적인 폭력에 인간적인 폭력이 뒤섞였을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강한 자들이 설친다. 그리고 힘없는 사람들, 노약자들, 여자들과 아이들은 폭력에 희생당하기 쉽다.

 

2. 사무엘하 21장은 그 참혹한 시대 이야기를 들려준다. 줄거리는 아주 단순해 보인다.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기간에 3년 동안 계속해서 흉년이 들었다. 자연재해가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던지, 다윗은 답답해서 하나님께 그 이유를 여쭤보았는데, 예전에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무고히 죽인 민간인학살사건이 그 원인이라고 하나님이 알려주셨단다. 그래서 다윗은 그 사건을 철저하게 진상조사하고, 피해당사자들인 기브온 사람들의 의견을 전폭 수용해서,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사울의 후손 가운데 일곱 명을 택한 다음, 기브온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처형케 한다. 나중에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 그리고 처형당한 사람들의 뼈를 합장했더니,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단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맺은 약속을 업신여긴 사울의 죄 때문에 죽은

사울의 아들과 손자 7명, 그리고 아들들의 시체를 지키는 리스바

 

3. 이게 줄거리인데, 사무엘하 21장을 좀 더 깊게 읽어보면, 이중구조가 드러난다. 본문에는 두 가지 사건이 안쪽과 바깥쪽으로 그려진 두 원처럼 겹쳐 있다는 것이다. 바깥 원은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이다. 이것은 그 원인과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인간역사에서 빈발하게 일어났던 민간인학살사건임에 틀림없다. 사무엘하 21장 1-14절은 그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관련자들을 피해자들의 뜻에 따라 처벌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사울이 과거에 저지른 죄를 다윗이 밝혀내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사울을 악인으로, 다윗을 의인으로 판정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본문의 표면적인 내용일 뿐이다.

 

4. 우리는 본문의 심층적인 측면도 읽어내야만 한다. 본문에는 하나의 원이 더 있다. 그것은 안쪽 원이다. 우리는 바깥 원을 읽을 때보다는 안쪽 원을 읽을 때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본문을 피상적으로 읽지 말고, 좀 더 자세하게, 역사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읽는 것이 성경기자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본심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5. 3년을 이어온 가뭄과 기근. 3년 동안이나 흉년이 계속되었으니, 민심이 얼마나 흉흉했겠는가? 다윗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상당히 큰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자연재해가 미치는 사회적 파장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특히 정치적으로 컸을 것이다. 독자들은 본문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탁월한 전략가이며 정치가인 다윗이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는지를 살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6. 다윗은 들끓는 민심을 진정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어렵게 하는 사울 가문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즉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흉년의 원인을 과거에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사건과 연결시켜서, 사울의 가문을 기브온 사람들의 손에 넘겨서 처형토록 했다. 이것은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었을까?

 

7. 기브온 주민을 학살한 사울의 행동이나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그 사건을 이용한 다윗의 행동은 모두 정당화할 수 없는 범죄 행위이다. 사울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기브온 사람들을 처형했다(21:2). 새번역은 2절을 이렇게 번역한다. “기브온 사람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의 자손이 아니라, 아모리 사람 가운데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며, 이미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살려 주겠다고 맹세하였는데, 사울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편파적으로 사랑한 나머지,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을 다 죽이려고 하였다.” 사울은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맺은 상호평화조약을 임의로 깨뜨리고, 기브온 사람들을 진멸(인종청소)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사울의 이러한 의도는 2절 마지막 부분과 5절에서 반복된다.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을 이렇게 평가한다.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5절). 사울은 인종차별주의자, 집단살해(제노사이드)범이다.

 

8. 가뭄과 기근이라는 자연재해의 원인을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윤리적인 차원에서 규명하려는 노력 끝에 비록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니지만, 기브온 사람들이 억울하게 집단살해를 당한 사실을 밝혀내고, 과거사를 청산하려는 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 그런데 다윗이 자신의 개인적인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사울의 잔존세력을 제거하고, 그것도 자신이 직접 하지 않고, 기브온 사람들의 손을 빌어서 하는 교활함을 보였다면, 사울보다는 오히려 다윗이 더 지탄받아야 할 인물이라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본문의 단순한 구조를 넘어서, 실제 세계, 특히 정치적인 측면은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9.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도 그렇고 다윗이 그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는 것도 그렇고, 언제나 모든 게 분명해지는 건 아니다. 성경기자는 실제 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사울이 기브온 사람을 무고히 죽였다는 데 역점을 두고, 다윗이 그것을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가는 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리고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다윗이 하는 방식이 당시에 통용되었다는 사실이다. 3년 동안 흉년이 들었는데, 다윗은 이것을 자연적인 재해로만 규정하지 않았다. 그것을 촉발케 한 인간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연현상을 인간의 구체적 삶과 연계해서 그 근본 원인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가 보기에는 3년 동안 가뭄이 발생한 원인으로 사울의 기브온 주민학살사건을 내세우는 것은 대단히 무모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윗을 비롯한 정치가들뿐만 아니라, 성경기자를 포함하는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10. 그래서 다윗도 기브온 주민학살사건을 3년 연속 기근의 원인으로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었고, 그것을 신적인 권위에 근거해서 공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진상조사를 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본문을 보면, “다윗이 물었다”는 말이 네 번 나온다. 다윗은 하나님에게 물었고, 기브온 사람들에게도 물었다. 이것은 다윗이 진상조사와 그것에 대한 조치를 나름 철저하게 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기근의 원인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 그 원인을 알려주시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기근의 원인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에 신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아무도 거기에 반대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비극을 야기 시켰다는 게 문제다.

 

이종록/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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