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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

일그러진 영웅 삼손의 여자들

by 한종호 2016. 8. 17.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7)

 

일그러진 영웅 삼손의 여자들

 

 

삶의 건전성을 찾아볼 수 없었던 구약의 사사시대(주전1200-1000년), 사사들 중에는 “성욕에 들뜬 광대”라든지 “여자의 힘 앞에서는 무력한 영웅”이라는 악평을 받은 인물이 있었다. 삼손이다. 반면에 그는 초대 교부들에 의해 그리스 로마신화의 힘센 영웅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에 비교되거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도 평가받았다. 예수님처럼 수태고지를 받는 비범한 출생이(사사기13장) 한 몫 했겠지만, 출생 전부터 하나님께 받쳐진 사람 삼손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그리고 일그러진 영웅의 삶에는 세 명의 여성들이 얽혀있다.

 

이방 여인과의 결혼이 금지되었던 때(사사기2:2; 3:6), 삼손은 딤나에 사는 블레셋 여성과 결혼했다(14장). 딤나는 단 지파에게 할당된 땅이지만(여호수아19:43), 여전히 블레셋 사람의 통치 아래 있었던 도시였다. 딤나에서의 결혼은 수수께끼로 얽혀 끝내 파국에 이르렀고(14-15장), 그는 지중해 연안 가자 지역에 사는 창녀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16:1-3). 그리고 삼손이 죽기 전에 사랑한 마지막 연인 들릴라, 그녀는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평야를 가로질러 지중해까지 이르는 소렉 계곡 어디쯤에 살았다(16:4). 삼손의 여자들 중 유일하게 이름이 밝혀졌고 유명하지만 그녀의 정체성은 수수께끼다.

 

삼손이 들릴라와 사랑에 빠진 것을 블레셋 군주들이 알게 되었다. 삼손이 가자에 사는 창녀와 밤을 보낸 얼마 후였다. 블레셋의 군주들이 들릴라를 찾아왔다(5절). 삼손이 블레셋의 곡창지대를 삼백 마리 여우 꼬리에 횃불을 달아 모조리 태워버리고(15:4-5),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인 것(15:14-17) 때문에 복수할 기회를 찾으려는 모양새다. 블레셋의 군주들은 들릴라에게 삼손의 힘의 근원을 찾아내면 각각 은1100씩을 주겠다는 것이다. 거래는 성사되었다(5절). 들릴라가 이 일을 잘 해내면 블레셋 다섯 성읍(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 사사기3:3; 여호수아13:3)의 군주들로부터 삼손의 몸값으로 거액의 돈을 얻게 된다.

 

들릴라는 딤나의 여성과 대우가 다르다. 딤나의 여성은 삼손의 수수께끼 때문에 동족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불에 타 죽었다(15:6). 이 사건은 결혼식 잔치하던 때로 되돌아가야 한다. 삼손은 처갓집에서 7일간의 결혼잔치 기간 동안 손님들에게 베옷과 겉옷 각 30벌씩을 걸고 내기를 했다. 잔치 마지막 날이 되었지만, 초대받은 30명의 블레셋 청년들은 답을 알 수 없었다. 이들은 삼손의 아내에게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지 못하면 “너와 네 아버지 집”을 불사르겠다고 협박했다(14:10-15). 때문에 삼손의 아내는 매달려 울며 삼손에게서 답을 알아내 자기 백성들에게 알렸다(14:17).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삼손은 30명을 쳐 죽이고, 자기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다(14:19). 어떤 위험에 처할지도 모를 갓 결혼한 자기 아내를 남겨두고서.

 

 

삼손의 감정적인 격분이 누그러졌던 것일까. 그는 얼마 후 염소 새끼 한 마리를 가지고 장인의 집에 찾아와 아내와의 동침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15:1). 삼손이 아내를 처가에 남겨두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을 때, 이미 장인은 딸을 삼손의 친구에게 넘겼다(14:19-20). 이 얼마나 무례하고 무책임한 행동인가. 아버지와 남편 모두 제멋대로다. 이름도 없는 블레셋 여인은 자기 몸의 주인이 아니다. 아버지와 남편의 종속물로 존재하는 여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성은 좀 더 우월한 지위에 있는 남성들 앞에서 굴복당하거나 남자들 사이의 싸움에서 희생자 되기 쉽다.

 

그러나 삼손의 마음을 사로잡은 들릴라의 상황은 다르다. 대체로 독자들은 딤나의 여성과 가자의 창녀처럼 들릴라도 이방여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들릴라는 블레셋 사람이나 창녀로 소개되지 않거니와 딤나의 여성처럼 남자들의 협박 대상이 아니라 블레셋 다섯 군주들의 협상 대상이었다. 그러면 들릴라는 다른 여성들보다 좀 더 우월한 위치였을까? 그렇더라도 이들은 들릴라에게 삼손을 유혹하여 알아내라고 한다(16:5). 군주들은 돈과 “유혹하다”라는 말을 사용해 여성의 성적인 상징을 강화시켜 들릴라를 통제한 셈이다. 남성위주의 지배와 질서로 고착화된 사회에서 여성의 성을 도구화 하는 것은 악한 일이지만 흔하다.

 

들릴라는 블레셋 군주들의 조건을 수락했다. 곧바로 그녀는 삼손에게 힘의 근원이 무엇 때문인지, 어떻게 하면 결박할 수 있는지 직설적으로 묻는다(6절). 삼손은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며 들릴라와 밀당을 계속해 갔지만(7, 11, 3절), 희롱만 당했다고 생각한 들릴라는 삼손을 날마다 재촉했다. 삼손의 괴로움은 끝내 진심을 말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모든 것을 말했다. 자신은 나면서부터 구별된 하나님의 나실인이며, 머리카락을 밀면 힘이 약해진다고(17절).

 

사실을 알게 된 들릴라는 블레셋 군주들에게 “이제 한 번만 더 올라오라. 그가 내게 진심을 알려주었다”라고 말한다. 군주들은 은을 가지고 도착했고, 들릴라의 무릎에서 잠든 삼손은 머리털 일곱 가닥을 잃고 힘이 사라졌다(18절). 잠에서 깨어난 삼손, 너무 늦었다. 들릴라와 블레셋 사람들의 거래를 눈치 채지 못한 삼손은 힘을 써보려 하지만 소용없었다. 삼손은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했다.”(20절) 긴 머리카락은 상징에 불과한 것일 뿐 힘의 근원은 하나님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눈을 빼고 가자로 끌로가 놋줄로 매고 감옥에서 맷돌을 갈게 하며(21절) 삼손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았다(25절). 하나님께 받쳐진 나실인의 처참함 뒤에는 들릴라가 있었다. 그녀는 삼손을 잡는 포획자의 도구였지만, 딤나의 여성처럼 희생당하여 버려지거나 죽음에 이르지 않았다.

 

그리고 들릴라가 블레셋 군주들에게서 받은 은1100이라는 숫자는 곧바로 사사기를 마무리 짓는 결론(17-21장) 시작부분의 미가 어머니 이야기와 묘한 역설적 연결고리를 만든다.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미가 어머니는 은1100을 잃고 훔친 자를 저주했다. 하지만 그 돈을 훔친 사람이 아들 미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저주는 축복이 되고, 이것은 엉뚱하게 우상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미가 어머니는 개인 신당을 만들어 아들 중 한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기까지 한다(17:1-6).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했던 시대(17:6; 21:25), 멋대로 신앙의 결정판이었다.

 

그런데 은1100이라는 숫자 말고도 지리적으로 두 여성이 연결된다.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미가 어머니(17:1)와 에브라임 지파의 땅과 남쪽 유다 땅 사이의 경계를 흐르는 소렉 계곡의 들릴라, 둘이 동일 인물은 아니었을까. 더욱이 미가 집안의 우상은 삼손이 살았던 소라와 에스다올의 600명의 남자에게 빼앗겨 단 자손들의 우상이 된다(18장). 한 집안의 우상숭배가 지파 전체로 확대된 이 사건이 그저 우연이었을까. 들릴라의 정체를 수수께끼로 남긴 본문의 침묵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침묵이 허락하는 진실에 접근하는 일, 용기가 필요하다. 설령 답 없는 질문일지라도.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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