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8)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폭력의 시대(2)
청량한 가을날 참혹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어쩌겠나. 사사기 저자는 이 사건의 결말을 기록으로 남겼으니. 에브라임 산골에 살던 어떤 레위인의 첩이 베냐민 지파의 땅 기브아의 불량배들에게 밤새 윤간을 당한 이야기는(19장) 더 큰 폭력으로 확대재생산 되었다. 자신의 첩을 제 손으로 기브아의 남자들에게 넘겨준 레위 남자는 문지방에 쓰러져 있는 아내에게 “일어나라, 이제 우리 가자”라고 말한다(사사기19:28). 무자비하다. 본문은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있고 그녀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남편이 보았다고 말했을 뿐 죽었다는 말은 없다. 그리고 그가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28절, 개역개정)라고 했지만, 히브리 본문은 “그녀를 나귀에 실었다”라고만 기록한다. 죽음의 시점이 모호하다.
비정한 레위 남자는 집으로 돌아와 칼로 자기 첩의 사지를 열두 토막으로 절단하고 이스라엘 온 지역으로 보냈다(29절). 남편 손에 끌려 나가 여러 남자에게 짓밟혀 성적인 학대를 당한 것만으로도 비통하건만, 이 여성은 죽은 몸마저 남편에 의해 훼손당하고 말았다. 사사기 저자는 이 사건에 대해 당대 사람들의 말을 빌려 평가했다.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30절)
이 충격적인 사건이 있은 후,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스라엘 가장 북쪽 단에서 남쪽 브엘세바까지, 요단강 건너편 동쪽 길르앗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 되어’ 미스바에 모였다(20:1). 이것은 레위 남자가 자기 아내의 사지를 절단해서 보낸 섬뜩하고 오싹한 초대였다.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 12킬로미터 떨어진 베냐민과 에브라임 접경지역이다. 기브아에서 서북쪽 5킬로미터 지점이다.
미스바에 모인 사람들이 레위 남자에게 사건의 경위를 묻는다(3절). 사건의 요지를 말하는 레위 남자의 말에 거짓말이 섞였다. 기브아 성읍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집을 포위했고, 그들이 자기의 첩을 윤간하여 죽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음란하고 수치스러운 일을 알리려고 그녀를 토막 내서 온 이스라엘에게 보냈다는 것이다(4-6절). 사실과 다르다. 기브아의 남자들은 레위 남자를 동성 강간하려 했지 죽이려 하지 않았다. 이때 집주인이 레위 남자를 보호하기 위해 여자에게 맘대로 하라고 했던 말과 자기의 첩을 제 손으로 내 준 사실을(19:24-25) 말하지 않았다. 레위 남자는 불리한 진술을 왜곡하고 생략하여 악한 행위들을 은폐시켰다.
레위 남자가 자기 첩을 소유물 취급하듯 맘대로 다루었던 것에 대한 징계는 없었다. 기브아 남자들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만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8절)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합세하여”(11절)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죽여 악을 제거하겠다는 결의를 한다. 베냐민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이 일 때문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을 결행한다(13-19절). 베냐민 지파는 불량배들을 보호하기 위해 명분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 베냐민 자손들과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과의 세 차례의 전쟁은 끝내 이스라엘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18-48절). 마지막 전쟁에서 베냐민 사람 25,100명이 죽었다(31-35절). 베냐민 군사 26,700명 중에서(20:15), 600명을 제외하고 거의 진멸되다시피 했다(48절). 사악한 일을 저지른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징계하지 않고 옹호한 베냐민 지파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을까.
전쟁은 끝났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에 모여 베냐민 사람과 결혼하지 말자고 맹세한다(21:1). 그리고는 벧엘에 가서 한 지파가 멸족할 위기에 처한 것을 놓고 하나님께 통곡하며(2-3절), 딸들을 베냐민 지파의 아내로 주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을 후회한다(6-7절). 이때 야베스길르앗 사람은 한 사람도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8-10절). 이들은 미스바 총회에 나오지 않은 자들을 죽이자고 맹세까지 했던 터라(5절) 용사 12,000명을 보내 야베스길르앗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죽였다. 젊은 처녀 400명만 생포하여 가나안 땅 실로 캠프로 데려온다(12절). 이들은 살아 숨어있던 베냐민 사람 600명에게 평화를 선언하고(13절) 돌아온 베냐민 자손들에게 400명의 야베스길르앗 젊은 여자들을 주었지만, 부족했다(14절).
장로들이 부족한 200명의 여자를 채우기 위한 계책을 마련했다(16절). 그들이 짜낸 해결방안은 어이없다. 실로에서 여호와의 축제가 열릴 때 베냐민 자손더러 포도원에 숨어 있다가 여자들이 춤추러 나오면 하나씩 붙들어 아내 삼고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다(20-21절). 한마디로 주님의 축제에 참여한 여자들을 납치해가라는 말이다. 베냐민 자손은 장로들의 결정대로 행동했고, 자기 땅으로 돌아가 성읍을 건축하고 살았다(23절).
한 여인을 처참하게 윤간한 성폭행은 한 지파를 진멸시키는 수준의 폭력으로 확대되었고, 축제에 참여한 여성들을 집단 납치하여 강제 결혼시키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것도 신앙 공동체가 함께 즐거워하는 거룩한 축제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폭력과 전쟁에 대한 남자 어른들의 합의된 해결책이었다. 이 사건을 마무리 짓는 사사기 저자는 “그때에는…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개역개정) 옳은 대로 행하였다.”(21:25)라는 문장으로 종결하고, 사사시대의 역사 기록을 마무리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흐름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 앞에서 도덕적 분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참담한 사회는 하나님 없이 ‘자기 눈에 옳은 대로’ 자기주장에 몰입한 자기중심적인 폭력성으로 시대의 악을 키웠다. 여기에는 여성을 주체적인 인격체가 아니라 소유물 취급했던 가부장적인 위계질서의 강고한 힘의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것은 공동체 전체로 번져 악한 삶의 방식을 공유하게 했고, 불의한 사회를 만들었다. 하나님을 왕으로 생각하지 않은(21:25) 사회의 결말이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21:25, 새번역)
이렇게 사사기의 마지막 한 문장은 자기중심적인 사회의 폭력성과 야만성, 그리고 윤리적 천박함을 고발했다. 이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사회의 여러 현안들을 주의 깊게 살피라는 부름이다. 예컨대 여성들을 향한 국가적 폭력성을 드러낸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국제적인 여성인권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군위안부 문제는 조직적인 성폭력 희생자들의 한 맺힌 응어리와 절규로 남았다. 이 문제는 자유로운 자기선택권을 갖지 못하고 희생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신호다. 때문에 희생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다. 힘의 위계질서의 폭력성이 작동하면 약자를 향한 ‘혐오’사회를 확대시킨다. 부디 약자에게 가해지는 자기중심적인 위계질서의 폭력과 야만성에 침묵하지 말기를. “침묵은 고문하는 이를 도울 뿐 고문당하는 이를 돕지 않는다.”라는 엘리 비젤의 말대로 기계적 중립을 내세워 침묵하면서 악한 일에 동조하는 일이 없기를.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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