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를 대하는 한국 종교의 호들갑과 사회적 뻘짓
성탄시즌이 시작하기 직전 통계청에서 2015년도에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 결과를 발표하였다. 물론 이 자료에는 종교항목도 포함되어 있었다. 10년마다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에서 내놓는 자료인지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그런데 이번 결과는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신도수 순위가 많은 이의 예상을 빗겨가 있었다. 전통적으로 신도수 순위에서 1위를 달리던 불교가 이번 조사에서는 인구수 대비 15%정도인 760만 여명 정도로 960여만 명을 기록한 개신교에 이어 2위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이 수치는 2005년 조사에 비해 120여만 명이 늘어난 것이라서 계속 신자들이 줄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던 입장에서는 좀 뻘쭘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2005년 신도수 5백만 명을 넘으며 기염을 토했던 천주교는 380여만 명으로 백여만 명 이상의 신도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뚱맞은 각 종단의 호들갑
이런 결과가 나오자 각 종단별로 난리 났다. 1등에서 밀려난 불교계로서는 조사 결과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급기야 조사방식의 형평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전의 전수조사와는 달리 이번은 국민 대비 20%의 표본조사이고, 그것도 방문조사와 자발적 인터넷 참여조사를 병행했기에 상대적으로 노령층 신도가 많은 불교로서는 통계 왜곡의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황스럽기는 1위를 차지한 개신교도 마찬가지다. 무려 120만 여명의 신자수 증가는 개신교에게는 뻘쭘한 형국을 만들어 버렸다. 왜냐하면 2005년 조사결과 발표 이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던 개신교는 실제 교회 현장에서도 신도수의 감소를 피부로 점감하고 있던 터라 백만 명 이상의 신자수 증가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곤란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통계 결과에 대한 다양한 이유를 들이댄다. 2015년 통계에는 가나안 교회 성도가 포함되었다느니, 이단의 통계도 포함되어서 그랬다니 등등. 그러나 가나안 성도나 이단의 수치가 전체 통계에 영향을 주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만약 개신교 통계에 이들이 반영되었다면 비단 2015년도만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단 신도들이나 교회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굳이 통계에서 개신교를 선택할 필연적 이유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겠나. 따라서 개신교 신도수 변화에 가나안교인이나 이단의 수는 상수라 보기 힘들고, 함수라 해도 그 끼친 영향은 미미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천주교의 대응은 차분한 편이다. 물론 천주교 관련 몇몇 미디어에서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교회의 선교 관심을 높여야 하지 않겠냐는 주장을 펴는 곳도 있었지만, 앞서 언급한 두 종단과 달리 천주교의 대응은 침착하다고 할 만하다. 아무래도 자체 내 통계에서 이미 지금의 수치를 가늠했던 탓이 아니었겠는가.
종교학자의 눈에는 이번 통계결과 발표에 보이는 각 종단의 호들갑이 오히려 더 생뚱맞아 보인다. 우선 불교의 경우, 언제 불교가 신도수 중심의 종교였던가? 입만 열면 수행의 종교라 하면서 왜 이럴 때는 정량적 수치에 급급해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배움이 부족한 탓인가? 아니면 이미 깨달음은 확보되었기에, 그 다음 수순으로 숫자 놀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인가? 불교는 기본적으로 출가자 중심의 종교이다. 따라서 종교적 수행과 절차, 의례에 매진하는 경우도 재가자보다는 출가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불교는 신자 수의 많고 적음에 그리 집착할 필요가 애초부터 없다. 그들이 보다 투명하고 올곧게 자신들 수행에 집중하면 될 뿐이다. 그러니 불교로서는 신도 수의 증감에 그리 예민하게 굴 필요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매번 순위에 집중하는 불교의 태도는 잘 요해가 되지 않는다. 여전히 스스로의 종교적 수행과 열정에 기대기보단 공적 자금과 기부에 의존하려는 불교의 오랜 습성이 남아있는 탓인가? 불교는 신도수 순위에 집착적 관심을 보이기보다 되려 주간 종교 활동 참여도 6%라는 참혹한 수치에 더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것이다. 이 수치는 설문결과 아무리 불자의 수가 많다 하더라도 그들 모두를 제대로 된 불교신자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 심각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 1회 예배나 미사, 그리고 법회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그들을 참된 신자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6%의 참여도는 전체 불자의 수에 집착하는 종단의 행태를 머쓱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따라서 불교는 무엇보다 소속된 신도의 종교적 활동 독려에 보다 더 신경을 쓰고, 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에 고민할 때이지 순위가 어느 종단에 밀렸다고 호들갑 떨 때는 아니다.
교회와 관련된 화려한 사회적 뻘짓(?)
개신교의 경우는 이번 통계의 결과를 신도수의 증가로 봐야하나 고민스러울 것이다. 계속 진행 중인 교회와 관련된 화려한 사회적 뻘짓(?)이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도 신자수가 늘었으니 진보측이나 보수측이나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를 간단히 ‘교회 성장’ 혹은 ‘부흥’으로 이야기하자니 지금까지 해온 일이 있고, 또 받은 평판이 있으며, 게다가 현장 교회에서 올라오는 보고도 있는데 차마 그렇게 까지 포장하지 못하는 보수 쪽 입장도 있겠고, 2005년도에 비해 무려 120여만 명의 성장을 정상적인 것이라 인정할 수 없는 진보 쯕의 경직된 이념지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다시 보면, 개신교의 신도수는 그리 늘어난 것이 아니다. 이른바 ‘1천만 신도’ 운운할 때가 언제인가?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천 2백만 신도라 목소리를 높혔고, 그때가 이미 80년대 아닌가! 그에 비한다면 지금 960여만 명 신도는 오히려 백여만 명 이상 감소한 셈이다. 물론 2005년 통계에 비해서 증가한 것은 확실하지만, 20년 전인 1995년도 19.4% 비율과 비교해 보면 2015년의 19.7%는 거의 제자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큰 흐름에서 보면 개신교 역시 신도수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 감소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다만 기존 통계청의 가택 방문조사가 가져온 ‘통계 착시’ 때문에 2005년도 결과가 심하게 왜곡되어 지금을 증가로 보게 만들고 있는 것뿐이다.
예서 잠시 이번 통계방식이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살펴보자. 전에는 에누리 없이 가택방문 전수조사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적지 않은 통계적 오류가 끼어든다. 이전 전수조사 방식은 설문의 대상이 특정 계층, 연령대, 성별대로 제약된다는 단점이 있다. 즉 오전이나 오후 직장이 아닌 집에 머무는 이는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구술에 의해 가족 구성원의 종교를 일괄 조사하는 방식으로는 실제에 가까운 통계결과를 얻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거기에 제대로 대면조사를 했는지 여부도 불투명하기에 결과의 엄밀성을 보장받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조사부터 보완한 방식이 ‘등록센서스’와 ‘표본조사’이다. 등록센서스는 기존 공적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수치를 십분 활용하는 것이고, 이를 다시 20% 표본 전수조사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 2015년부터 도입된 조사 방법이다. 표본조사라 해도 20%에 해당하는 1천만 명 정도를 대상으로 한 것이니 그 결과치의 신뢰도는 상당한 수준이라 하겠다. 다시 표본조사는 가택 방문조사와 인터넷 조사를 병행하여 응답의 신뢰도를 높였다고 한다. 그러니 나는 이번 2015년 인구센서스 조사결과는 이전의 어떤 통계보다 사실에 가까운 결과치를 보였다고 믿는다.
사실 난 오래전부터 한국의 종교지형도에서 신도수로 나누는 순위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그런 식의 응답으로 잡히는 신도수가 해당 종단에 유의미한 통계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인구조사를 통한 종교인 수 집계는 그냥 대강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종교인의 수를 그런 식의 설문으로 다 담아낼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따라서 이는 그저 하나의 참고자료일 뿐, 그 결과로 전혀 일비일희할 필요는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어쩌면 각 종단이 통계청의 발표에 이리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자체가 한국의 종교들이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종단별로 신앙인 내지 신도수 통계는 매년 실시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 누구보다 종단본부 스스로 조직에 속한 신자수의 변화 추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통계청의 발표에 그토록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스스로 조직의 통계를 불성실하고 부정직하게 관리해 왔다는 반증이라 하겠다. 이는 스스로 말하는 종교적 가치에 전면 위배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도수에 대한 예민한 반응 자체가 한국 종교의 문제이면 문제이다.
사실 종교적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통계는 따로 있다. 구름 잡는 식의 전체 신도수가 아니라 바로 종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직자의 수이다. 교직자라 함은 해당 종교행위를 통해 종단에서 녹을 받고 생활을 하는 ‘종교 직능인’을 말한다. 이들은 신도수보다 더 분명히 통계에 잡히고, 그 흐름도 상대적으로 명확히 추적할 수가 있다. 난 오래전부터 이 교직자수와 다른 몇몇 통계를 기초로 한국의 종교적 영향력은 인구센서스 조사와는 달리, <개신교-불교-천주교> 순으로 가야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 이유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교직자 수를 보자.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한국의 종교 현황』, 문화체육관광부 발간, 2012) 개신교의 교직자 수가 14만 여명으로 수위를 달리고 있고, 그 뒤를 이어 불교 4만 6천명, 천주교 1만 6천여 명이다. 교직자수를 통한 교세와 영향력 평가를 보완해주는 것이 교당수 통계이다. 이에 대한 수치도 개신교가 7만 7천여 개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2만 6천여 개의 불교, 그리고 천주교는 1천 6백여 개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또 한 가지 내가 유의해서 보는 통계는 온라인 포털에서 활동 중인 종교별 카페의 개수다. 예를 들어 카페활동이 가장 활발한 포털 서비스 업체인 다음(http://daum.net)의 경우, 총 종교 카페 수는 317,538개인데, 그중 개신교 관련 카페는 238,426으로 무려 75%의 점유율을 보인다. 반면 불교와 천주교의 경우는 각각 2만여 개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실제로 한국에서 정량적으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종교는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불교가 아니라 개신교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2015년 인구센서스 조사 결과로 나온 종교인수의 순위 개신교-불교-천주교는 이전의 통계적 왜곡을 넘어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결과라 할 수 있겠다.
한계에 다다른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수명
사람들은 겉으로 들어난 신도수의 증감에 관심이 가겠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이전 조사보다 대폭 늘어난 비종교인 수가 더 크게 들어왔다. 2005년 47%에 머물던 비종교인의 수가 2015년에 들어 56%를 기록했다. 그중 남자 비종교인의 수는 이미 60%를 넘었고, 여성의 비율도 51.6%에 달했다. 이번 통계에서 주시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한국인의 비종교인 비율은 2012년도 <퓨 리서치센터>의 ‘세계종교 현황’ 보고서에서 발표한 세계 종교인 수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세계 인구 69억 명 중 대략 58억 명 정도가 종교인이다. 이는 인구 대비 84%에 달하는 수치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56%가 비종교인이다. 이 말은 한국의 세속화 정도가 상당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차세대의 비종교인 비율을 보면 보다 뚜렷해진다. 이미 우리사회 40대 이하의 비종교인 수는 60%를 넘나들고 있고, 이중 20대가 64.9%로 가장 높다. 이제 한국에서 종교인이라 하면 5~60대 이상의 노인세대의 전유물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 결과치는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의 종단들은 종교에 비호감을 드러내고 있는 차세대를 위한 대비나 배려, 그리고 지원에는 무심하다. 그러니 종단별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청소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문법으로 바꾸고, 그들이 선호하는 매체에 담으려는 노력은 매우 더디고 드물 수밖에! 이는 특정 종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종교 대부분 그렇다! 그러니 청소년들의 눈에 종교 활동만큼 ‘구리고’, ‘후지고’, ‘재미없는 것’도 없다. 종교 말고도 차세대가 즐기고 누릴 흥미롭고 자극적인 것은 쌔고 쌨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여전히 제 종단은 짙은 색 슈트에 감싸인 60대 남성들의 일방적 대변자 역할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면서 언제나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신들이 미성숙한 차세대를 관리하고, 훈계하고, 지시해야만 한다고 낮은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니 차세대가 그런 꼰대들의 종교에 관심이나 기울일까?
이런 점에서 이번 통계가 한국 종교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엄중하고, 지엄하고, 절망적이다. 통계가 웅변하는 바는,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수명은 거의 다되어감“이기 때문이다. 56%의 비종교인 비율이 주는 메시지가 그렇다. 그러니 신도수 순위에 호들갑 떨면서 난리칠 때가 아니다. 지금은 한국 종교들 스스로 제 몸을 살펴 종교로서 본질적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따져 물을 때이지, 한가한 순위 놀음에 일희일비 할 때가 아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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