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4)

 

김광석 21주기, 그 노래 그 사람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로 시작되는 그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젖어들게 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에게조차도 그의 이 노래는 마치 우리 모두가 함께 통과해온 시간들에 대한 깊은 추억처럼 남게 됩니다. 그의 특이하게 애조 띤 목소리와 아무런 꾸밈없이 말하듯 다가오는 가사, 그리고 소박한 풍경화 같은 곡들은 한 시대의 눈물과 사랑을 일깨운 것입니다.

 

“김광석” 우리 노래의 역사 속에서 너무도 일찍 아쉽게 사라진 하나의 별 같은 존재. 그의 21주기가 바로 오늘입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배우 송강호가 북한 인민군 장교로 나와, 남한 군과 어울려 이 노래를 듣다가 “광석이 갸는 와 길케 일찍 갔네?”하고 난데없이 슬프게 읊조릴 때 관객들은 모두 그 말에 하나가 되고 맙니다. <이등병의 편지> 마지막의 “이제 다시 시작하자 젊은 날의 꿈이여”가 열창되는 순간, 어느 누구의 청춘도 결국 남루해지지 않게 됩니다.

 

 

 

 

그의 노래 <내 사람이여>는 이런 가사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의 어둠을 밝혀 줄 수 있다면/빛 하나 가진 작은 별이 되어도 좋겠네./너 가는 길마다 함께 다니며 너의 길을 비추겠네./내가 너의 아픔을 만져 줄 수 있다면/이름 없는 들의 꽃이 되어도 좋겠네./음 눈물이 고운 너의 눈 속에 슬픈 춤으로 흔들리겠네./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내 가난한 살과 영혼을 모두 주고 싶네.”

 

“김광석”은 그렇게 자신의 시와 노래와 눈물, 그리고 사랑이 그득히 담겨 있는 영혼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떠났습니다. 1964년 생으로 1996년에 세상과 작별을 고했으니 겨우 서른넷이라는 젊디젊은 나이였습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아 인생을 좀더 맑게 살아야겠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면서 지내야겠구나, 이 세상에 사랑해야 할 것이 이리도 많은데, 라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입에서 창과 칼이 뿜어져 나오는 가시 돋친 설전에 익숙해가고, 침략자를 닮은 눈매를 따라 배우며 날이 갈수록 초라해져가는 영혼의 실상에 눈이 멀어가는 그런 시대를 어루만지며, 조용한 음성으로 일으켜 세우는 힘을 가진 한 청년 예술가가 우리 곁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도 이 세월이 살만한 보람이 있는 듯싶습니다. 무대 위에서 잠시 객석을 흥분시키며 난무하는 춤은 있으나 오래도록 기억되어 따스한 피로 흐르는 몸짓은 보기 드물고, 열광하는 인기에 스스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들 역시 많으나 시간이 갈수록 도리어 뚜렷해지는 아름다운 자취를 남기는 이는 또한 흔하지 않습니다.

 

노래 <내 사람이여>에는 이런 가사도 있습니다. “내가 너의 사랑이 될 수 있다면, 이름 없는 한 마리 새가 되어도 좋겠네. 너의 새벽을 날아다니며 내 가진 시를 들려 주겠네… 내 사람이여, 내 사람이여.”

 

그는 지금 자신의 시를 들려주는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이름 모를 작은 새가 되어 우리 곁을 날아다니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처받고 비틀거리며 아파하는 이들 모두에게 그의 노래가 위로가 되고 감사가 되는 그런 신비스러운 진동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좋은 노래가 살아있는 마을은 결코 황폐해지지 않습니다. 그 노래를 기억하고 부르는 이들이 많을 때 세월은 우리를 속이거나 배반하지 못할 겁니다. 아니 때로 그런 일이 있다 해도 우린, 웅크리고 숨을 죽이다가 그냥 그렇게 사라지고 마는 일은 겪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자 젊은 날의 꿈이여”라는 그 애절한 열창이 못내 귀에서 맴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민웅/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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