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카잔차키스의 영혼

 


 

어떤 현실에도 굴하지 않는 원시적 힘을 가진 사나이 <그리스인 조르바>와 인간적 유혹 속에서 마침내 자신을 지켜낸 예수를 그린 <최후의 유혹>은 서로 다른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 하나로 묶인다. 그건, 무수한 고난과 좌절 그리고 절망 앞에서 결국 무너지지 않은 인간에 대한 갈망이다.


이 두 작품은 모두 그리스 출신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세상에 충격을 준 글이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그는, 터키에 지배받아왔던 그리스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가계의 자손이었다. 그는 강인해야 했고, 그 어떤 상황도 이겨내야 했다. 두려움을 정복하고, 희망의 봉우리에 올라서야 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말년에 집필한  <영혼의 자서전>에서 카잔차키스가 어떻게 자신을 뜨겁게 일구어냈는가를 목격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서전이 얼마나 문학적이고 철학적일 수 있는가도 함께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폭우로 온 마을의 포도밭이 다 떠내려가면서 모두가 비통해하고 있었을 때, 입을 꽉 다물고 미동도 하지 않고 “우리는 남아 있잖니”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카잔차키스는 이 아버지의 모습이 자신이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평생의 버팀목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생명의 철학자 베르그송과, 인간의 초월적 책임을 일깨우면서 인간 내면에 있는 위대한 힘을 이끌어 낸 니체의 제자인 그는 인간의 영혼이 가진 용맹함에 대해 깊은 신뢰를 부여했다.


 



 

카잔차키스는 젊은 시절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한다. “목표를 향해 나가라. 멈추거나 소리를 지르지 마라. 너에게는 한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걸어가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 한계점이 무엇이든 간에 너는 앞을 향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그는 고독과 우울함과 좌절에 맞서 격투를 벌어나갔다.


하지만 카잔차키스의 영혼에 언제나 싸워야하는 쟁투의 기운만 가득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운명하는 자리에서 남긴 이야기는 이러하다. “소와 양, 당나귀들을 잘 돌보아라. 짐승들도 인간이다. 우리처럼 영혼을 가졌지만 가죽을 쓰고 말을 못할 뿐이다. 옛날에는 다 인간이었다.(...) 올리브와 포도나무를 잘 돌봐라. 열매를 얻고 싶으면 거름과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한다. 나무들도 옛날에는 인간이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거냐?“ 인간이란 삼엄하거나 가파른 산을 끝까지 올라야 하는 일과 사랑하는 일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건 격전의 현실 속에서도 그 영혼이 거칠어지거나 무자비해지지 않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다. 나비가 되려는 유충을 억지로 나비가 되게 하려다가 실패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서 카잔차키스는 생명의 법칙을 넘어서 서두르지 않는 지혜를 일깨운다. 결국, 모든 것은 통과해야 할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동안 무수한 싸움을 치러 오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때로 우린, 격투에 몰두하며 사랑을 잃었고, 다급한 마음에 순서를 지키지 않고 억지를 부렸던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당장의 일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강인하면서 너그럽고, 멀리 내다보면서 깊이 있게 기다릴 줄 아는 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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