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순례(3)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 수난곡
No.3 네 명의 화자(話者)와 음반소개
내러티브
지난 시간에는 대본작가 피칸더와 더불어 마태 수난곡의 네 명의 화자(話者)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았습니다. ‘내러티브, 대사, 코멘트, 기도’라는 화자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오늘은 조금 더 깊은 설명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내러티브’와 ‘대사’는 마태복음의 본문 그대로의 내용입니다. 예를 들면 내러티브는 마태복음 26장 1절의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와 같은 부분으로서 에반겔리스트(복음사가)가 담당합니다. 바흐의 수난곡에서 에반겔리스트는 테너가 담당하고 있는데 선율적인 노래를 담당하지는 않지만 음악의 전체 분위기와 곡의 시종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서 자체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판소리에서의 아니리나 무성영화에서의 변사(辯士)를 떠올리시면 그 중요함을 쉽게 공감하실 것입니다.
대사
대사는 복음서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직접화법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마태 수난곡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대사는 26장 2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는 주님의 대사이며 베이스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중요한 역할이 아닐 수 없겠지요. 그래서 제가 마태 수난곡 연주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지휘자-에반겔리스트-예수를 누가 맡고 있느냐입니다. 그 밖에 성서의 등장인물인 베드로, 유다, 가야바, 빌라도 등의 대사도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남성 저음 파트인데 자주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합창 단원이나 솔로 한 사람이 모든 배역을 소화하기도합니다. 여성의 대사로는 아시다시피 베드로를 알아 본 두 여종과 빌라도의 아내가 있습니다.
대사중에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는 부분들입니다. 예를 들면 26장 5절에서 가야바의 관정에 모인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이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에게 분개하고 있는 제자들의 대사인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등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대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합창으로 표현되는데 여러 성부로 구성된 합창의 장점을 살려 현장의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음악적으로 매우 다채롭게 표현됩니다. 그들은 주로 한 목소리로 대변되기도 하지만 때로 여러 사람들이 시끄럽게 자기 목소리를 내기도하는데 바흐는 이런 상황들을 다 구분하여 합창으로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마태 수난곡 음반을 처음 들으시면 어떤 음반의 경우 소년합창단의 소리가 들려 놀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성인 합창단과 달리 안정적인 연주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지만 이는 바흐시대의 전통을 고려한 소위 ‘원전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HIP)’를 따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이유 때문에 소년합창단의 연주를 좋아하는데 그들의 노래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영적인 메시지를 주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어린 소년들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도 예외 없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코멘트와 기도
‘코멘트와 기도’는 성서 밖에서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멘트’는 주님의 수난 이야기를 접한 신자가 마음속으로 품었을 법한 내적 정서적, 신앙적 반응인데 주로 바흐 당시의 회중 복음성가라고 할 수 있는 코랄합창이 이 역할을 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말 그대로 코멘트의 반응을 응축시켜 외적 고백과 결단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주로 솔로 아리아로 표현되며 마태수난곡에서는 알토 아리아 ‘내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mein Gott’가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기도’의 노래입니다. 이 곡은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후에 나오는 노래이지요.
제가 만든 아래의 표를 통해 마태 수난곡의 시작인 합창곡 ‘오라 너희 딸들아(Kommt, ihr Töchter)’ 부터 6번곡인 알토 아리아 ‘회개와 뉘우침에(Buß und Reu)’에서 마태 수난곡의 네 명의 화자가 어떻게 역할을 나누고 있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틀을 가지고 마태 수난곡을 감상하시면 아마 3시간에 육박하는 이 대작을 보다 쉽게 소화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 속으로
이제 마태 수난곡을 직접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첫 번째 감상은 위의 표에 있는 네 명의 화자의 역할에 주의를 기울이시면서 가볍게 들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번에 마태 수난곡 전곡을 다 들으시려는 것은 새해 벽두에 창세기부터 성경 통독을 다짐하는 것과 같고 작심삼일로 끝날 확률이 높습니다. 마태복음 26장을 펴 놓으시고 우연히 들른 장터에서 모여 앉아 판소리를 듣는 것처럼 편안하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섬세한 내용들은 성서일과를 따르듯이 제가 소개하는 부분들만 들어 나가셔도 충분하실 것입니다. 되도록이면 음반을 구입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넷 온라인으로 쉽게 들을 수 있지만 마태 수난곡 음반 하나 정도는 소장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음반 케이스 속에 첨부된 해설과 대본(리브렛토)은 그저 덤이라고 생각하기에 매우 유용한 아이템이 되어줄 것입니다.
굳이 음반 구입을 원하지 않으시는 분들이나 비교대상으로 듣고 싶으신 분들은 유튜브에 ‘Matthew Passion'을 입력하시면 수많은 명반들과 영상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다른 음악과는 달리 유튜브에 소개 된 대부분의 마태 수난곡 음반들이 저마다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음반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태 수난곡은 헨델의 메시아처럼 대중적인 인기가 많은 곡도 아니며 연주 기법으로도 훨씬 난해한데다가 전 곡의 연주시간만 3시간에 육박하여 어지간한 지휘자나 연주자들은 연주할 수 없고, 그러기에 마태 수난곡을 녹음으로 남길 정도면 지휘자는 그 자체로 진지하고 음악적 역량이 검증된 음악가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독일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번역하여 부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나 엄청난 음악적 스케일은 음악가적 역량과 성품이 부족하고 음악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이용하려드는 대다수의 음악가들을 차단시키는 훌륭한 장벽이 되어 줍니다. 듣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혹 영화나 소설에서는 한니발 렉터와 같은 천재적 싸이코패스들을 바흐 음악과 연결시키곤 하는데 실제로 제가 만난 마태 수난곡이나 바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깊이 있고 지성적이며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음반을 고르셔도 좋겠지만 감상하실 때 지휘자와 녹음 연도, 에반겔리스트를 노래한 테너와 예수 역할을 맡은 베이스가 누구인지는 꼭 체크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추천하는 음반은 칼 리히터(Karl Richer)가 1958년 녹음한 음반입니다. 같은 지휘자가 71년에 녹음한 영상판이나 79년의 음반과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리히터의 58년 녹음은 뮌헨 바흐합창단과 뮌헨 어린이합창단이 합창과 코랄을 노래했고 에반겔리스트는 에른스트 헤플리거(Ernst Haefliger)입니다. 헤플리거는 신앙적 표현과 성악적 역량 면에서 단연코 최고의 에반겔리스트입니다. 모노녹음의 실황연주가 아닌 음반 발매를 위해 스테레오로 녹음된 첫 번째 마태 수난곡 연주지만 50년 전의 작업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음반은 마태 수난곡의 고전적인 연주이면서도 여전히 파격성과 탁월함을 느끼게 하는, 클래식 레코딩 역사의 가장 위대한 음반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녹음입니다. 아마 이번 여정 내내 저는 이 음반에 관한 언급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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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링크 https://youtu.be/3icLbxogeV4)
음반소개
그 밖에 추천할 음반은 다음과 같습니다. 레온하르트의 음반은 매우 지성적이면서도 혹자의 말로는 ‘없던 신앙심마저 생기게 해 주는’ 영성 깊은 연주입니다. 프레가르디엔이 노래하는 에반겔리스트는 이야기에 깊이 개입하지 않고 물 흐르듯 깨끗하게 진행됩니다. 그는 가장 군더더기 없는 에반겔리스트입니다. 또한 이 음반에서 예수 역할을 맡은 막스 반 에그몬트는 바흐음악에 가장 잘 어울리는 베이스로서 다른 음반에서 예수의 음성이 너무 무겁고 지나치게 힘이 넘치는 아쉬움을 남기는 것과 달리 선하고 부드럽고 때로 흔들리는 청년 예수의 음성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헤레베헤의 1984년 음반을 추천한 이유는 소프라노 바바라 슐릭 때문입니다. 그녀의 중성적인 느낌의 노래는 바흐 음악에 매우 잘 어울립니다. 특히 마태 수난곡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노래로서 그녀가 노래하는 ‘Aus Liebe will mein Heiland sterben/사랑 때문에 나의 주님은 죽으려하신다’ 한 곡 때문에라도 이 음반은 충분한 소장 가치가 있습니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Agnus Dei, c. 1635–1640
아르농쿠르의 음반은 그의 다른 곡 녹음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언제나 그의 연주는 바흐 음악에 있어서 원전연주의 표본이 되어줍니다. 특히 대학시절 그 음반이 나왔을 때 CD 자켓의 그림이 매우 충격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왔었는데 작년에 방문한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그림의 원본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습니다.
그 밖에 헬무트 릴링의 1994음반(Non HIP)이나 칼 리히터의 1971년 영상(Non HIP)도 꼭 들어야 할 연주입니다. 다만 카랴얀, 번스타인 등 잘 알려진 지휘자들의 음반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바흐의 음악은 기교가 넘치고 세상적으로 성공했다고 아무나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흐와 같은 음악가들, 장인정신과 신앙심과 음악의 종으로서의 자세가 삶에 배어 있는 사람들이 바흐를 제대로 연주할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마태 수난곡의 첫 번째 곡인 코랄 판타지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첫 곡도 들어가지 못했군요. 서둘러야겠습니다.
Gustav Leonhardt(좌) - 듣기
Philippe Herreweghe(중) - 듣기
Nikolaus Harnoncourt(우) - 듣기
조진호/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음악공부와 선교활동을 하였다. 바흐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솔리스트로 활동하였고 이후 국립합창단 단원을 역임하였다. 감신대 신학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의정부 낮은자리 믿음교회 담임으로 목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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