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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 순례'

마태 수난곡 No. 4 다시없을 오스카들의 노래

by 한종호 2017. 2. 20.

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 순례(4)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 수난곡

No. 4 다시 없을 오스카들의 노래


코랄 판타지아


첫 번째 합창곡은 오페라의 서곡과 같은 역할을 해 주는 코랄 판타지아입니다. 바흐에게 있어 판타지아는 형식에 구애 없이 작곡가의 음악적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쳐냈다는 의미입니다. 서곡은 연주자로부터 청중까지 그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음악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하며 전체 음악의 내용이나 주제를 함축하고 있지요. 특히 이 곡은 두 개의 4성부 합창과 리피에노 합창의 코랄까지 총 세 개의 합창이 노래를 주고받으며 어우러지는 큰 스케일의 곡입니다. 이 세 개의 합창단은 저마다의 역할이 있는데 이를 구별할 수 있어야 이 곡을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합창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따르며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예루살렘의 딸들’(누가복음 23:28)입니다. 두 번째 합창은 극 속의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십자가와 주님이 당하는 수난을 영적으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채 구경꾼처럼 군중의 틈바구니에 섞여 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도 그 중에 하나였겠지요. 마지막으로 코랄을 부르는 리피에노 합창은 극 밖에서 이 모든 상황에 정서적, 신앙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성도들로 이 곡에서 코멘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이 음악을 듣고 있는 청중들이라고도 할 수 있고 판소리로 치면 감정적, 정서적, 영적 반응을 하고 맞장구를 치는 ‘추임새’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리히터의 1971년 영상을 보시면 세 개의 합창단이 나뉘어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 중 뒤쪽에 있는 소년합창단(뮌헨 소년합창단)이 세 번째 합창단입니다. https://youtu.be/dfLNM7tlSF8




전주와 함께 펼쳐지는 장면은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을 연상케 합니다. 먼저 오보에와 플롯이 함께 슬픔과 고통 그리고 비장함이 뒤범벅 된 선율을 연주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멈춤 없이 계속 되는 느리고 무거운 12/8 박자의 리듬은 이 세상 죄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는 고난의 발걸음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발걸음은 2박자 계통으로 표현되는데 12/8 박자는 3박자 계통으로서 절뚝거리듯 힘겨워하시면서도 사랑과 인내로 끝까지 감내하시는 주님의 발걸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칼 리히터의 템포가 대부분의 다른 지휘자들이 선택하고 있는 템포보다 확연히 느린 이유와 이 곡의 템포를 너무 빠르게 잡는 것이 바흐의 의도를 거스르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1971년 녹음된 리히터의 영상판은 1958년의 녹음보다 더 느리지요. 원래 모든 음악적 템포는 빨라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지금 골고다를 향할수록 점점 지쳐가고 있습니다. 1971년의 영상에서 이 곡을 보십시오. 지휘를 위한 최소의 동작만을 가지고 템포를 지켜나가며 끝까지 주님의 십자가의 길에 집중하는 리히터의 지휘는 실로 경탄스럽습니다. 멋진 폼으로 지휘하는 지휘자가 유능한 것이 아닙니다. 지휘자는 무용가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실제로 칼 리히터만큼 멋진 폼을 가진 지휘자도 또한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1971년 영상이 11분에 이르고 1958년 녹음은 10분정도이며 리히터 이후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8분에서 9분정도에 첫 번째 합창곡을 마무리합니다. 음악적으로 굉장히 커다란 차이지요.


소리마저 뛰어넘는 음악


바흐의 교회음악은 단지 예배를 위한 부수음악이 아니었고 기본적으로 언어적 설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거기에 음악이 덧붙여짐으로 설교에 음악의 날개를 달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소리마저 뛰어 넘는, 인간의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한 총체적인 설교가 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해 드리겠습니다. 


이 첫 합창곡의 가사를 보십시오. 예루살렘의 딸들은 계속 ‘보라’라고 외칩니다. 보는 것은 시각적 감각입니다. 아마 당시의 청중들은 이 음악을 들으며 알자스 어느 작은 마을에 있다던 그 유명한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를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바흐 음악에서는 이처럼 시각적인 감각이 매우 중요하며 때로 음악을 뛰어 넘어 예배당에 걸려 있는 성화와 같은 시각적 역할을 해 주고 있습니다. 마태 수난곡 전체가 이젠하임 제단화 같이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펼쳐 놓은 것이라면 이 합창곡은 그뤼네발트의 그림 속에서 십자가의 예수를 가리키고 있는 세례요한의 손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바흐의 교회음악은 예배의 한 부분이 아니라 시각적인 감각까지 아우르는 총체적 설교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 (1511∼1515)부분. 운터린덴 미술관 소장



다시 첫 번째 합창곡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은 극중의 성도들에게 신랑을, 어린 양을, 그의 인내를, 우리의 죄를 바라보라고 독려합니다. 처음에 두 번째 합창단은 십자가와 주님의 수난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계속하여 ‘Wen? Wie? Was? Wohin?’이라고 묻는 것이지요. 하지만 곡 후반에 그들 모두는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으면서 사랑과 은총으로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만나고 고백하게 됩니다. 바로 이 구절이 마태 수난곡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적 메시지입니다.


Sehet ihn aus Lieb und Huld Holz zum Kreuze selber tragen.

그를 보라, 사랑과 은총으로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그 분을.


다시없을 오스카들의 노래


합창곡 30마디에서 리피에노 소프라노 파트는 당시 루터교회에서 성 금요일에 회중 찬송으로 불렸던 ‘O Lamm Gottes unschuldig/오 죄 없으신 어린양이’라는 코랄을 유니즌으로 부릅니다. 이 곡은 당시의 회중들이 다 알고 있는 곡이었기에 아마 이 부분에서 성도들은 추임새를 넣듯 나지막이 이 선율을 따라 불렀을 것입니다. 칼리히터의 1958년 녹음에서 이 부분을 부르는 뮌헨 어린이 합창의 노래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부분을 듣고 ‘경악’이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감정적 반응에서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분명 처절한 절규의 목소리인데도 흐트러짐 없이 놀라운 절제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로테스크함과 순수함이, 공포와 위로가 뒤섞여 뭐라 할 수 없는 이 감정이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https://youtu.be/3icLbxogeV4


하지만 이 음반이 녹음된 1958년의 뮌헨을 생각하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녹음 연도가 1958년이고 소년합창단은 변성기 후에는 활동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연주에서 노래하는 소년들은 대부분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모국의 패망을 전후하여 태어났을 것입니다. 전쟁의 아픔과 비극 그리고 재건을 위한 고된 시절은 이 소년들의 보드라운 어린 마음에 이미 굳은살처럼 고스란히 배어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뮌헨은 히틀러의 정치적 고향으로 전쟁의 참상이 더욱 심했던 곳입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지역적 조건이 이러한 노래를 끌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한 소년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오스카’입니다. 이 소년의 이름만 들어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귄터 그라스의 소설과 동명의 영화 ‘양철북(Die Blechtrommel, 1979)’을 말씀드리면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가장 비극적이고 암울했던 시기에 스스로 사다리에서 뛰어 내림으로 육체적 성장을 멈추어 버린 소년 오스카… 뮌헨 합창단 소년들의 노랫소리는 그 참상을 겪어 내라고 일방적으로 세상에 내던져졌던 오스카들의 노랫소리, 바로 오스카들이 두드리는 양철북 소리였습니다.


어쩌면 오스카는 스스로 육체적 성장을 멈추어 버린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감당키 어려운 비극적 상황을 다 받아 내며 ‘애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영혼들을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스카는 특별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정작 전쟁에 책임이 있었던 이기주의와 위선에 찌든 평범한 소시민들의 사생아였습니다. 평화를 깨뜨리고 전쟁과 파괴를 일으키는 것은 한 사람의 악마도 아니고 집단적 광기도 아닙니다. 평범한 소시민들의 개인주의와 이기심의 악마적 연대가 증오를 낳고 평화를 깨뜨리고 그 마성이 히틀러라는 얼굴마담 한 사람을 내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모습은 우리의 죄성 안에 보편적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독일인들은 그 참혹한 전쟁 후에 마태 수난곡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동족간의 전쟁이라는 더 잔인한 아픔을 그저 덮어놓은 채 새마을 노래와 군가와 유행가를 불렀습니다. 독일인들의 죄와 아픔은 계속 용서되어지며 치유되고 있는 반면 우리의 죄와 아픔은 계속 변이되고 있으며 곪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도 이제 주님의 수난곡을 함께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죄악과 아픔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마태 수난곡 첫 번째 합창곡의 가사처럼 ‘ Erbarm dich unser o Jesu!/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오 예수여라고 노래하며 진정 회개하고 울부짖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입니다. 진정한 용서와 치유 그리고 평화는 십자가에 있습니다. 우리의 노래는 남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향한 절규가 되어야 합니다. 그 노랫소리는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부르는 노래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선 우리는 이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양철북을 마구 흔들어 쳐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주님의 수난곡을 불러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십자가 길의 구경꾼으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따라 나의 십자가, 우리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명음반 명연주, 1958년 리히터


잠시 무거운 주제로 흘러버렸습니다만 리히터의 1958년 음반의 위대함은 시대적인 배경과 ‘오스카들의 양철북소리와도 같은’ 뮌헨 어린이 합창단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1971년 영상보다 1958년 음반을 더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971년 영상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 되어 들어 있습니다. 무대 구성도 파격적이고 음향과 카메라 워크가 흠 잡을 데 없습니다. 솔리스트들도 당대 최고의 성악가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독일인들은 어느새 전쟁의 참상에서 벗어나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고 있었습니다. 연주자들도 전반적으로 자신감과 화려함에 익숙해 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수난곡에서 그러한 자신감은 상당히 불편하게 들립니다. 죄인으로서, 고통을 당하는 이로서의 깊은 절규가 아니라 음악적 완벽함을 추구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이 우리가 수난곡을 부르고 듣는 근본적인 이유와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작년 성탄절 예배를 시작으로 낮은자리 믿음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비록 의정부 가난한 동네 지하에 있는 예배당에서 열 명도 안 되는 성도들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매주 새롭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져 ‘오늘은 울지 말아야지’라고 매주 다짐하며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이렇듯 낮은자리와 고난과 고통 속에서 비로소 빛나는 것인가 봅니다.


1958년 음반이 명반인 또 다른 이유는 에반겔리스트를 맡은 에른스트 헤플리거 때문입니다. 리히터의 1971년 영상과 1979년 음반의 에반겔리스트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독일의 거장 페터 슈라이어입니다. 아마 대중에게 알려진 정도로만 생각하면 페터 슈라이어의 에반겔리스트가 더 매력적일 것 같지만 헤플리거의 노래에는 그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깊은 영성과 감동이 담겨 있습니다. 헤플리거는 조만간 깊이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이렇듯 1958년 음반이 불멸의 명반이 된 이유는 시대적 참상과 연관이 깊습니다. 또한 함께 부르는 회개와 구원의 절규의 노래를 잿더미 위에서 꽃피워 낸 음악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적인 역사가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을 소망하는 마음을 섞어 말하자면, 리히터의 1958년 마태 수난곡에 필적하는 연주는 인류 역사상 결코 다시 없을 것입니다.


수난곡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


이 글을 쓰기 위해 몇 주간 계속 마태 수난곡을 듣었고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어느 날 강원도 우리 집으로 소포가 왔습니다. 어머니의 고향 섬에서 온 마늘 몇 첩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마늘을 까는 동안 마늘이 참 맵다고 굳이 얘기하시면서 연신 눈물을 닦아내셨습니다. 그 마늘은 어머니의 바로 윗 언니, 저의 이모의 사망소식과 함께 전해져 온 것이었습니다. 강원도 화천 산골에서 전라남도 신안의 섬까지 가실 수 없었던 어머니는 그렇게 마늘 핑계를 대면서 아들 몰래 울고 계셨던 것입니다.


마태 수난곡 핑계를 대고 있었지만 사실 지금 이 나라의 현실과 아직도 그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월호에 갇혀 있는 아이들 생각이 자주 났습니다. 때로는 뜬금없이 가슴 깊은 곳에서 절규가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자격 없는 저는 구레네 시몬 마냥 얼떨결에 십자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곧 사순절이 다가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의 사순절은 우리 모두가 바흐의 마태 수난곡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면 좋겠습니다.


조진호/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음악공부와 선교활동을 하였다. 바흐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솔리스트로 활동하였고 이후 국립합창단 단원을 역임하였다. 감신대 신학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의정부 낮은자리 믿음교회 담임으로 목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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