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의 너른마당

 

유승준의 ‘말바꾸기’와 차인표의 ‘당당함’

- 신앙양심을 내세운 두 사람의 대조적인 처신 -

 

연예인들의 병역문제는 언제나 세간의 관심이 된다. 인기와 병역은 당사자에게는 중대한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한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중에 병역의 의무를 감당하게 되면, 당사자는 대중들의 뇌리에서 자신이 잊히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연예인의 병역문제는 병역이 젊은이들에게 가하는 현실적 압박과 제약을 가장 첨예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연예인들이 병역문제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상당히 비중 있는 영향을 미친다. 다 같은 젊은 놈들이 누군들 시간이 아깝지 않고, 누군들 자신의 꿈이 소중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위해 그 만큼의 시간을 희생한다, 이것이 병역의무를 감당하는 논리가 된다. 그러기에 이 논리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한국사회에서 사람취급 받기 어렵다.

 

유승준의 병역 기피를 위한 시민권 신청이 이토록 신랄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까닭도 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승준은 자신의 인기를 철저하게 사적 영역의 문제로 받아들여, 공적 의무를 저버렸고 더욱이 병역의무 준수에 대한 공적 발언을 결국 스스로 깬 셈이 되어서 그 비난의 정도가 더 심해지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방송 매체와 잡지에서 공개적으로 신앙을 표현해 왔던 그는 “당당한 자신의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의 출발”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해 왔기에 그에 대한 실망은 크나큰 실망으로 다가오는지 모른다.

 

한편, 차인표의 경우, 국제적인 스타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관점에서 007 시리즈 물에 출연할 것을 거부함으로써 인기문제를 사적인 차원이 아닌, 공적 영역으로 소화해낸 모범을 보였다. 사실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유혹이라고 할 수 있는 메가톤 급 인기의 기회를 민족적 양심을 기준으로 결정한 그의 모습은 돈과 인기를 연계하여 살아가는 연예가의 세계에서 특별한 존재로 부각될 만한 사건이었다.

 

이와 함께, 유승준이나 차인표나 모두 기독교 신앙인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대조적 처신은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병역 의무를 당연히 감당하겠다고 강조했던 사람이 막상 그 병역의 의무를 짊어져야 하는 순간이 오자 말을 바꾸고 자신의 사적 이해를 쫓아간 것은 적지 않은 사람들을 실망시킨 사례였다. 신앙과 신조가 어긋나고 만 것이었다. 반면에, 국제적 수준의 스타급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을 거부하고 자신의 평소 신앙과 신조에 충실하게 행동한 차인표는 오늘날 기독교 신앙인에 대한 사회적 공신력이 추락한 현실에서 매우 귀중한 본이 되었다.

 

 

 

 

병역문제는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의 논란으로 사실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유승준이나 차인표나 모두 결과적으로는 냉전형 분단체제가 강요하는 논리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보인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유승준의 경우 그가 이러한 논리를 세워 병역의무를 거부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민권 신청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병역의무 대신 다른 방식의 의무를 감당한다는 점에서 아무런 대체 의무도 없는 유승준의 경우는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병역문제는 누구나 다 의무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오늘날 보다 심층적이고도 반성적인 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는 병역 의무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논의를 하려는 장은 아니다.

 

유승준의 경우가 우리에게 일깨우는 바는 병역의무가 날이 갈수록 비특권 계층의 의무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아들이 병역문제로 이후 정치, 사회적 홍역을 치른 것도 다 특권층의 병역 의무 기피에 의한 문제제기였다. 병역의 의무는 신성한 국가적 과제인 것처럼 교육되고 있지만 실상은 너나 할 것 없이 특권적 지위가 없으면 할 수 없이 감당해야하는 고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권층들의 병역 기피는 한국사회의 권력질서가 가지고 있는 부당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군대는 이른바 빽 없는 놈들만 가는 곳이 된다면 그런 군대의 심리적 지위는 날이 갈수록 열등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병역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권력질서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권력 질서의 불평등은 반드시 병역비리를 낳게 된다는 것과 통한다. 유승준의 경우, 시민권자의 병역의무 면제는 당연한 법적 현실이지만, 한국사회에서 활동하면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이를 사회적 특권의 요소로 사용하는 것은 실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이는 다른 무수한 시민권 취득자들에게 엉뚱한 비난이 돌아가게 하는 사건이 되기도 한다.

 

기독교 신앙인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함께 사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기본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자기만 빠져나가서 특권적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신앙양심을 내세울 수 없는 경우가 된다. 긴 안목에서 볼 때 유승준이 잠시의 특혜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사회적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기회와 신앙인의 위상을 당당하게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상실해버린 것은 그래서 안타깝다.

 

차인표의 경우, 그가 톱스타이면서도 평소 겸손하고 또 이번에는 냉전체제 해체를 추구하는 민족의식까지 분명하게 나타내어 그를 기르고 있는 신앙적 토양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도자적 지위에 오르면 자신의 신앙적 의지를 매우 가볍게 버리고 현실적 이익을 추종하는 것과 그는 대조적인 선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유승준과 차인표,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이렇듯 대조되는 신앙의 결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유승준이 차라리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면, 그래서 평소 자신의 병역의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서 설파했다면 이번 사태는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보통 때에는 병역의무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하다가, 하루아침에 병역 의무 거부의 논리를 세운다면 그것은 진실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겠다. 유승준이 군대를 다녀오겠다고 한 것도 인기논리요, 병역 기피를 위한 시민권 신청도 인기논리라는 점에서 그 인기논리의 막강한 힘을 거부한 차인표는 그의 정신적 내면이 얼마나 강고한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와 함께 우리는, 병역 의무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의 논의가 마치 인민재판식으로 유승준에 대한 돌팔매를 던지는 방식이 아니라 오늘날 재능 있는 무수한 젊은이들을 병영의 소품으로 몰아놓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보다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유승준은 물론 자신의 인기관리를 위한 선택이긴 했으나, 그러한 현실의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했다는 차원도 있다는 점을 주목하면, 한국의 젊은이들이 처한 고뇌의 일단을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선 이후에, 우리는 병역의무의 특권적 기피와 냉전체제의 현실을 하나로 엮어 새롭게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될 것이다. 유승준이나 차인표 모두, 이 냉전체제의 군사시스템에 대한 자신의 선택을 대중들 앞에 공개했다는 점에서 그 선택의 의미를 보다 심화시켜 되돌아 볼 수 있다면 이번 사건은 중요한 교훈을 남기게 될 것이다.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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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새로봄(131)

 

주님은 나의 희망

 

내가 겪은 그 고통, 쓴 쑥과 쓸개즙 같은 그 고난을 잊지 못한다. 잠시도 잊을 수 없으므로,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 나는 늘 말하였다.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은 나의 희망!”(예레미야 애가 3:19-24)

 

조국의 패망을 목도한 애가의 저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에 얻어맞았으며, 빛도 없이 캄캄한 곳에서 헤맸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가난과 고생으로 그를 에우시고, 도망갈 수 없도록 담을 쌓아 가두시고, 무거운 족쇄까지 채우셨을 뿐 아니라, 소리 높여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하나님이 마치 엎드려서 사람을 노리는 곰이나 사자와 같다고 했겠는가.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그는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을 과녁으로 삼아서 활을 당기시는 것 같고, 마치 돌로 이를 바수고, 그의 얼굴을 땅에 비비시는 것 같다고 말한다. 쓴 쑥과 쓸개즙이 입 안에 가득한 듯한 형국이다.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입술을 비어져 나오는 것은 탄식뿐이다. 그의 삶에서 빛은 사라졌다. 고난의 현실을 잠시도 잊을 수 없기에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울적하다는 뜻의 ‘멜랑콜리’(melancholy)는 그리스어로 ‘쓸개즙’(담즙)을 뜻하는 단어에서 나왔다. 중세에는 멜랑콜리를 종교적인 신념을 좀먹는 병적인 현상으로 여겨 죄악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멜랑콜리는 자기 성찰의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고통과 아픔과 외로움이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다. 질병과 실패, 공허감이나 권태, 무력감이 찾아올 때 그것을 성찰의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삶의 부정적 계기들은 우리 삶에 덧붙여진 군더더기를 걷어내라는 하늘의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애가의 저자는 울적함 속에서 곰곰이 자기를 돌아본다. 그러다가 자기 속에 있는 희망의 뿌리를 발견한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예레미야 애가 3:21-22)

 

너무나 갑작스런 분위기의 반전이다. 마치 단조(minor key)로 이어지던 노래가 갑자기 장조(major key)로 바뀐 것 같다. 이런 변화를 가능케 한 것은 ‘기억의 회복’이다. 기억은 지금 겪고 있는 시련과 고통에 매몰되어 있던 우리의 생각을 더 큰 세상과 접속시켜준다. 삶은 언제나 힘겹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난관을 헤치며 여기에 이르렀다. 고독한 순간은 있었지만 홀로 버려진 적은 없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린 것 같은 상황 가운데 처할 때도 있었지만, 그 고통의 시간에도 하나님이 곁에 계셨다. 행복의 날도 지나가지만 고통의 날도 지나간다. 하지만 지나가는 날들 속에서도 변치 않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다. 그 사랑을 기억해내는 순간, 고통은 나 홀로 견디어야 하는 아픔이 아님을 알게 된다.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의 나의 희망!”(예레미야 애가 3:23-24) 이 말 한 마디를 가슴에 새긴 사람은 절망의 어둠 속에 유폐되지 않는다.

 

*기도*

 

하나님, 은총의 날개 아래 우리를 품어 주십시오. 삶의 곤경에 직면해서야 우리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약함과 강함이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휘저어놓곤 하는 일들이 매일 매일 벌어집니다. 지금 눈물의 골짜기를 거닐고 있는 이들을 붙들어 주십시오. 차마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무너진 이들 속에 하늘의 빛을 비춰주십시오.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이라고 고백하는 이들 속에 하늘의 생기를 불어넣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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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1)

 

 

시(詩)와 밥 

 

원고를 쓰다가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일이 있다. 이태 전쯤이었나, 독서캠프에 참석을 했을 때의 일이다. 장로님 한 분이 운전을 하며 동행을 해주셨다. 길은 멀어도 함께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모임 장소에 도착을 했을 때는 막 점심식사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누가 독서캠프 아니랄까 그런지 시 하나를 외워야만 밥을 준다는 것이었다. 수련회에 가서 성경구절을 외우지 못하면 밥을 안 주는 모습을 본 적은 있지만, 시를 외워야 밥을 먹는 모임은 처음이었다.

 

 

 


 

엄격함과는 거리가 먼 기쁨지기가 검사를 하는 것이어서 크게 부담이 될 것은 없었는데, 그래도 맘에 걸렸던 것이 장로님이었다. 장로님이 외우는 시가 따로 있을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기쁨지기 앞에 가서 물었다. 둘이서 하나의 시를 나눠 외워도 되겠느냐고. 얼마든지 된다고 했다. 장로님 귀에 대고 짧게 귀띔을 했고, 우린 보란 듯이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그날 장로님과 함께 외운 시는 문삼석의 ‘그냥’이었다.

 

엄만 왜
내가 좋아?
-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 그냥

 

시를 어떻게 나눠 외웠는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하나는, 기쁨지기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는 때때로 밥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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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발을 가리우다

 

 

각 언어마다 완곡어법(婉曲語法)이란 것이 있다. 이 말이 유래된 그리스어 유페미아(euphemia)는 재수 없는 말이나 듣기에 유쾌하지 않은 말을 피하고 대신 길조를 지닌 낱말을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완곡어법에서는 모호하거나 우회적이거나 덜 구어체적인 용어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구약성서에서 완곡어법이 사용되는 예 가운데 하나가 신체의 부분이나 그것들의 기능을 묘사할 때이다. 예를 들면 발을 가리우다라는 표현이다. 모압 왕 에글론의 경우, “왕의 신하들이 와서 다락문이 잠겼음을 보고 이르되 왕이 분명히 서늘한 방에서 그의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개역개정> 사사기 3:24), 또 사울왕의 경우, “길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개역성경> 사무엘상 24:3).

 

<공동번역>발을 가리우다라는 표현을 두 곳에서 다 뒤를 보다로 번역하였다. “발을 가리우다는 표현은 용변(用便)을 보는 것을 뜻한다.

 

 

 

우리말에서도 이런 경우에는 직접적인 묘사를 피하고 완곡어법을 쓴다. <공동번역>뒤를 보다역시 똥 누다를 점잖게 일컫는 말이다. 이것을 한자어로 변을 보다라고 하거나 토박이말로 뒤를 보다라고 하면 웬만큼 불쾌한 냄새가 가신다는 기대에서일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발() 역시 음부(陰部)나 나체를 가리키는 완곡어법으로 쓰인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돌칼로 자기 아들의 포경을 자르고 그것을 모세의 발에 대었더니사경을 헤매던 모세가 다시 살아났다는 기록이 있다(출애굽기 4:24-26). <개역>은 십보라가 아들의 양피를 모세의 발 앞에 던졌다라고 번역하였고 <개역개정>모세의 발에 갖다 대었다고 번역하였다. 여기서 모세의 남경(男莖)”을 일컫는다.

 

이사야서에도 보면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쪽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 털과 발 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개역개정> 이사야 7:20)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서 발 털은 발이나 다리에 난 털이 아니라 음부 주위에 난 털을 뜻한다.

 

<공동번역>발 털거웃이라고 표현하였다. “거웃의 사전상의 일차적 의미가 음모(陰毛)”인 것을 보면 거웃을 쓴 <공동번역>은 완곡어법을 피하고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턱 밑 거웃 수(), 입술 거웃 자(), 뺨 거웃 염() 등의 설명을 보면 거웃 역시 본래는 턱이나 코 밑이나 뺨에 난 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결국 음모를 거웃이라고 한 것도 본래는 완곡어법의 한 표현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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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새로봄(130)

 

길을 찾는 사람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빌립보서 3:7-11)

 

바울은 길을 찾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께 이르는 길, 영적 자유에 이르는 길을 찾느라 늘 노심초사했다. 가급적이면 사람들이 선망하는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자부심이 큰 사람이었다. 명문 지파인 베냐민 지파 출신에다가,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었고,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그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그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기 때문에 이전에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심지어는 오물로 여긴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이전에 그가 소중히 여겼던 것들은 한결같이 그의 자아를 강화해주는 것들이었다. 가문, 학식, 신분, 종교적 열심…. 이런 것들은 세상적으로 보면 소중한 것들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때가 많다. 신앙이란 자기를 비우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는 과정이다. 자랑스러운 게 많은 사람 속에는 하나님을 모실 공간이 부족하다. 부활하신 주님의 빛이 바울의 내면에 비쳐드는 순간 그는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겨왔던 게 지푸라기 강아지(芻狗)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늘 막힌 듯 답답하던 정신의 지평이 툭 트였다. 

 

 

 

 

그 때부터 그는 자유인의 삶을 살았다. 어떤 고난도, 시련도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발걸음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이전에는 벗어던지려고 했던 약함과 고통을 오히려 자랑거리로 여겼다. 자신의 약할 때가 곧 주님의 은혜가 유입되는 순간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로움과 해로움이 이렇게 자리를 바꿨다.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말하지만, 바울 사도는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고린도전서 15:10)라고 고백한다.

 

오늘의 우리는 어떠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에서 사람들은 바알과 맘몬을 숭배하고 있다. 한완상 박사는 한국의 교회에는 예수님이 안 계신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 교회의 위기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이렇게 분석한다. 

 

“교세의 양적 팽창과 대외적 선교열을 그토록 자랑하는 한국 교회와 교인의 삶 속에서 나사렛 예수, 갈릴리의 예수를 만날 수가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위기라 하겠습니다. 그분의 체취, 그분의 숨결, 그분의 꿈, 그분의 정열, 그분의 의분, 그분의 다정한 모습을 교회 안에서 찾기 힘듭니다. 그러기에 밑바닥 인생의 그 억울한 고통을 함께 나누시면서 그들에게 사랑과 공의의 새 질서를 몸소 보여주셨던 갈릴리 예수가 더욱 그리워집니다.”(『예수 없는 예수 교회』, 7쪽)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이 거룩한 지향을 다시 회복할 때 교회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있다.

 

*기도*

 

하나님, 멋진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이웃들과 더불어 생명의 춤을 추며, 살아 있음을 경축하며 살고 싶습니다. 기쁘게 일하고, 신나게 놀고, 뜨겁게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잿빛 우울에 감싸여 있습니다. 세상의 인력이 하늘을 향해 도약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무력화시키곤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만난 후 진정한 자유인이 된 바울 사도가 부럽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기다리오니, 성령이여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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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새로봄(129)

 

홀로 그리고 함께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또 둘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라면 어찌 따뜻하겠는가?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전도서 4:9-12)

 

서양의 정신사는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이었다. 자유란 남들에게 아무 것도 강제당하지 않으면서 전적으로 자기의 자발성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경우 ‘타인’은 늘 우리의 자유에 걸림돌로 작용하기 일쑤이다. “타인은 나에게 있어서 지옥”이라고 말했던 사르트르의 말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홀로 자족적인 자유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외로움이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사람들은 술과 마약, 그리고 쾌락으로 도피한다. 때로는 배타적이 되고, 이웃에게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외로움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소금물을 들이킨다고 갈증이 해소되지는 않는 법이다. 요즘 우울증이 늘어나는 것은 타자들과의 소통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전도서는 혼자보다는 함께 일하는 게 효율적이고, 혼자 걷는 것보다는 함께 걷는 게 좋고, 혼자 눕는 것보다는 함께 눕는 게 따뜻하고, 혼자 싸우기보다는 함께 싸우는 게 승산이 높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참 진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진부하다고 해서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묻는 율법교사에게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그를 피하여 지나갔고,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 이야기 끝에 주님은 율법교사에게 물으셨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누가복음 10:36) 주님은 ‘이웃’의 경계를 설정하거나 범주화하지 않았다. 다만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이웃 되어주기’를 사유하도록 하셨을 뿐이다. 종교, 문화, 피부색, 나라도 이웃의 경계일 수 없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이 세계에 회복시키려는 마음이다. 

 

제랄드 메이는 『사랑의 각성』이라는 책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는 아주 괴팍한 노인이었다. 아이들이 뒷마당에서 놀기 시작하자 노인은 철조망을 치고 자기 집 마당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하루는 아들 폴의 고양이가 그 집 장미 덩굴 안으로 들어가자 노인은 고양이를 죽이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폴은 고양이가 그 집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노심초사했지만, 며칠 후 고양이의 주검을 발견하고 말았다. 노인이 쥐약을 먹였던 것이다. 가족들 모두가 분노해서 뭔가 복수하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폴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난 후 아이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매우 외로운 분일 거예요. 우리가 그분에게 생일 파티 같은 것을 해드렸으면 좋겠어요.” 이 어린 천사는 우리에게 이웃 되어주기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누군가의 이웃이 되려 할 때 우리를 사로잡는 외로움 혹은 우울은 안개처럼 흩어진다.

 

*기도*

 

하나님, 남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삶이 무겁다고 느낄 때마다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소스라치곤 합니다. 피부가 상한 자리에 스치는 모든 것들이 다 고통을 안겨주듯이 삶에 지친 우리들은 작은 일에도 비명부터 질러댑니다.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이들을 보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는 누군가의 이웃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보다는 다른 이들의 속 깊은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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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새로봄(128)

 

아나니아

 

아나니아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를, 나는 많은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잡아 갈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그는 내 이름을 이방 사람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가지고 갈, 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를, 내가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 아나니아가 떠나서,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손을 얹고 “형제 사울이여, 그대가 오는 도중에 그대에게 나타나신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소. 그것은 그대가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사도행전 9:13-19)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을 박해하던 사울에게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아나니아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거라’라는 명령이 거듭되자 아나니아는 그 명령에 순종했다.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사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도 아니지만,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 사울을 찾아간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게 바로 믿음이다. 믿음이란 비록 이해할 수 없다 해도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에 대해 ‘아멘!’ 하는 것이다.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있던 이스라엘은 적을 목전에 둔 길갈에서 전투에 나설 젊은이들에게 할례를 행했다.(여호수아 5장) 전투에 대한 상식이 없는 사람이 보더라도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말씀에 순종해 그렇게 했고 마침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미디안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던 기드온은 군인들이 너무 많다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처음엔 이천 명을, 그리고 그 다음엔 만 명을 돌려보내고 오직 삼백 명만 데리고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뒀다.(사사기 7장)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다. 이걸 인정해야 한다.

 

 

 

 

아나니아는 ‘곧은 거리’에 있던 유다의 집을 찾아가 사울과 만난다. 그는 사울이 경험하고 있는 어둔 밤의 체험은 오히려 그의 생을 바로 세우기 위한 창조적 혼돈임을 깨우쳐 주었다. 지금까지 사울은 맹목적 열정에 사로잡힌 채 살았다. 그것은 눈 먼 자의 행로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그릇된 열정을 변화시켜 복음을 위한 열정으로 변화시키려 하셨다. 아나니아는 “형제 사울이여, 그대가 오는 도중에 그대에게 나타나신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소. 그것은 그대가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오”(사도행전 9:17)라고 말했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형제’라고 부른다. 형제를 뜻하는 그리스어 아델포스(adelphos)는 ‘자궁’을 뜻하는 델푸스(delphus)에서 나온 말이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골육지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자신은 물론이고 사울도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자궁에서 새롭게 태어난 혹은 태어날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울의 몸에 닿은 아나니아의 손길은 어쩌면 주님의 손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갔다. 그릇된 열정의 비늘, 편견과 경쟁심의 비늘, 자기 의라는 비늘이 떨어져 나가자, 그는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영혼의 어둔 밤에서 벗어나자 그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충만한 세상을 감격 속에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새로운 생의 열정이 그를 사로잡았다. 거기에는 타인에 대한 미움도,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조바심도 없었다. 궁극적인 평안과 기쁨이 그의 내면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그는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아나니아라는 이름은 ‘주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의 하나니아(hananiah)와 연결된다. 세상에는 이처럼 은혜를 매개하는 이들이 있다.

 

*기도*

 

하나님, 만나기 꺼려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살아가는 방식이나 지향이 다른 이들을 만나면 본의 아니게 불쾌한 상황에 직면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에 맞는 이들과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만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가라 하십니다. 아나니아는 그 명령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매개했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세우신 사람들을 우리 멋대로 판단하고 도외시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넓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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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0)

 

 버릴 수 없는 기억 

 

교우들 가정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는 대심방이 진행 중이다. 어제는 따로 시간을 내어 요양원에서 지내는 어른들을 찾아갔다. 한 때는 정릉교회에 출석을 했지만 이제는 연로하여 요양원에서 지내는 몇 몇 어른들이 있다. 연세로나 건강으로나 더 이상 그분들이 교회를 찾는 일은 어렵겠지만, 그럴수록 심방 중에 찾아뵙는 것은 도리다 싶었다.

 

북한산 인수봉 아래에 자리 잡은 요양원은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았다. 공기도 맑게 느껴졌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서 만난 권사님은 착한 치매가 찾아온 분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나오신 권사님은 얌전히 의자에 앉아 무엇을 물어도 가만 웃으시며 짧은 대답만을 반복하실 뿐이었다.

 

 

 

 

권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던 것은 권사님이 몸에 두르고 있는 포대기 안에 담긴 무엇인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천으로 만든 작은 인형이었는데, 얼마나 만졌는지 때가 탄 아기 인형이었다. 

 

권사님은 당신이 살아오신 삶의 많은 순간들을, 어쩌면 모든 순간들을 잊어버리셨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얼굴도 어떤 것도 기억을 못 하신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하신 말씀에 의하면 권사님은 마침내 아이와 같이 되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지만 권사님에겐 끝내 버리지 못한 마지막 기억 한 가지가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버리려야 버릴 수가 없는 기억이다. 자식들 품에 안고 젖을 먹이던, 아무리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도 어린 자식들 굶기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젖을 물리던 모정인 것이다. 권사님이 포대기를 두르고 가슴으로 안은 작은 아기 인형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권사님이 버릴 수 없는 마지막 기억이 무엇일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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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9)

 

귀한 방석 

 

권사님 집을 찾아가는 골목길은 차 하나가 지나가기에도 좁아보였다. 도중에 차끼리 만나면 누군가는 진땀을 흘리며 후진을 해야 할 듯했다.


운전을 한 전도사님이 차를 세우는 동안 한쪽에 서서 기다리는데, “어서 오세요” 하며 다가오시는 분이 있다. 마중을 나온 권사님이었다.


“제가 사는 집은 이래요.”


권사님은 그렇게 인사를 하며 집으로 들어섰지만, 권사님 성품을 닮아서인지 집안은 깨끗했고 단정했다.


미리 준비해 놓으신 상 주변으로 앉았다. 상 주변으로 방석까지를 가지런히 깔아 두셨다. 예배를 드리기 전 마주앉으신 권사님을 바라보며 가만 웃었던 것은 권사님이 나를 보며 빙긋 웃으셨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권사님이 한 마디를 하신다.


“목사님이 앉으신 방석은 지금까지 목사님이 오실 때만 쓰던 방석이에요.”

 

 

 


 

 

권사님 말씀을 듣고 다시 보니 내가 앉은 방석은 예쁘게 수를 놓은 방석이었다. 방석덮개는 칼칼하게 풀을 먹여 다린 상태였다. 권사님이 시집오실 때 손수 만든 방석이라고 했다. 권사님은 그 방석을 따로 보관을 했다가 목사가 심방을 오면 그제야 꺼내 놓으셨다는 것이었다. 나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으셨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동안 이 방석엔 몇 명의 목회자가 앉았을까, 몇 번이나 앉았을까, 나는 몇 번이나 이 방석에 앉을 수 있을까, 할머니의 기다림과 방석의 쓰임은 얼마나 어긋나지 않았을까, 혼자 사시는 할머니 권사님의 구별된 기다림에 나는 얼마나 대답할 수가 있을까,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도 마음으로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지나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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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보면 

 

동네 골목은 재미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심방 길에 동네 골목에서 만난, 전봇대에 붙어 있는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제목도 없이 네 줄이었는데 마치 운율을 맞추듯 첫 글자가 모두 ‘개’로 시작되었다.

 

 

 

 

개 주인은
개 때문에
개 망신 당하지 말고
개 똥 치우시오

 

단조롭고 시시해 보이지만 눈여겨보면 동네 골목에는 전봇대에도 시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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