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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02

민족사와 함께 한 ‘떠돌이 신학자’의 생애 민족사와 함께 한 ‘떠돌이 신학자’의 생애 문동환(87세)은 1921년 만주 북간도 명동 출생이다. 서로 인접해있던 명동이나 용정 모두 구한말, 일단의 유학자들이 새로운 교육현장을 일구어나가겠다는 대단히 이례적인 개혁적 열정을 가지고 떠나 정착했던 곳이었다. 고종은 이 지역의 선비들에게 교육재정까지 지원해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나라 안은 어지럽고 힘들었으니, 밖에서라도 새로운 동량을 길러내라는 조선조 마지막에 해당하는 왕의 애처로운 심사였다. 1921년이라면 이미 일제의 제국주의 지배가 극에 달해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조선반도에서 벌어졌던 시기였다. 나라가 망하고 만주지역에 떠도는 이들이 넘치기 시작하고 장래를 제대로 도모하기 막막했던 세월이었다. 그러나 문동환이 태어나 자란 북간도 명동이나.. 2019. 3. 10.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69) 밥 정릉교회에서 길 아래쪽으로 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집, 도자기를 굽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 가게 앞을 지날 때였다. 비둘기 두 마리가 뭔가를 열심히 쪼아대고 있다. 실외기 아래에 놓인 두 개의 그릇, 사료와 물이었다. 길고양이를 위한 배려라 여겨지는데 그걸 비둘기가 먹고 있는 것이었다. 사료와 물을 놓아둔 누군가가 고양이밥이라 따로 써놓지 않았으니 누가 먹으면 어떨까. 고양이가 나타나기 전까지가 먹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비둘기는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감나무 위에 남긴 까치밥을 까치만 먹진 않는다. 참새도 먹고, 박새도 먹고, 직박구리도 먹는다. 자연은 나누어 먹는다. 고루고루 나누어 먹는 것이 평화다. ‘和’는 벼(禾)와 입(口)이 합해진 말, 먹을 .. 2019.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