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74)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영원한 언약의 피를 흘려서 양들의 위대한 목자가 되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평화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온갖 좋은 일에 어울리게 다듬질해 주셔서 자기의 뜻을 행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히브리서 13:20-21)

 

수필 문학을 한 차원 끌어 올린 것으로 평가받는 윤오영 선생이 들려주는 ‘방망이 깎던 노인’ 이야기는 시간에 쫓겨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어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작가는 아주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린다. 동대문 맞은 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한다. 방망이 한 벌을 깎아달라고 부탁하자 노인은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이리 저리 돌려보며 굼뜨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만 하면 될 것 같아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 했다. 차 시간이 다 되었으니 그저 달라고 해도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되나”라고 퉁 치고 말았다. 자꾸 재촉을 하다가 포기한 화자에게 노인은 말했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결국 차를 놓치고 다음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서도 불쾌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러나 방망이를 본 아내는 칭찬 일색이었다. 제대로 된 방망이를 사 왔다는 것이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편지의 수신인들을 위해 이런 기도를 바친다. “영원한 언약의 피를 흘려서 양들의 위대한 목자가 되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평화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온갖 좋은 일에 어울리게 다듬질해 주셔서 자기의 뜻을 행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히브리서 13:20-21a) 신앙생활의 과정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행하도록 우리를 다듬어 가시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깎고, 자르고, 두드리고, 문지르는 일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성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다. 하나님이 주도하시지만 인간의 노력도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의 최선과 인간의 최선이 만나 이루어지는 법이다.

 

좋은 방망이를 얻었다고 기뻐하는 아내에게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 않다고 하자 아내는 이렇게 응대한다. “배가 너무 부르면 힘들어 다듬다가 옷감을 치기를 잘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가 쉽다.” 정성을 다해 깎은 방망이라야 제 역할을 잘 감당하는 법이다. 어거스틴은 우리가 하는 일은 죄뿐이라면서 어쩌다 선한 일을 한다 해도 그것은 우리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고백한다. 인간의 죄성의 깊이를 통찰한 이의 말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없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아름다운 일을 이루기 원하신다. 아름다운 일이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생명을 온전하고 풍성하게 하는 일임을 가르쳐주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다듬질하고 계신다. 그래서 지금은 은총의 시간이다.

 

*기도*

 

하나님, 세월의 더께가 앉은 우리 영혼은 죄에 대해 아주 둔감하게 변했습니다. 영적 민감함을 잃었기에 세상에 만연한 아픔을 보면서도 아파하지 않습니다. 욕망 둘레를 맴돌며 근근이 살아가는 것으로 할 도리를 다했다고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함께 병든 세상, 망가진 세상을 치유하자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님, 그 부름에 응하고 싶습니다.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일체의 군더더기들을 걷어내 주시고, 주님의 마음과 꿈을 우리 속에 심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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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8)

 

견뎌야 하는 무게

 

창문 밖으로 건물 하나를 짓는 모습을 여러 달 바라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모든 재료와 모든 과정들이 모여 집 한 채가 세워지고 있는 모습을 본다.

 

토요일인 엊그제도 아침부터 작업이 한창이었다. 2층에서 3층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키가 장대인 크레인이 서서 온갖 재료들을 일하는 곳까지 올려준다. 저 모든 재료들을 사람이 등짐으로 옮기자면 하세월일 텐데, 지금은 기계가 척척 감당한다.

 

오늘 올리는 짐들의 대부분은 철근이다. 크레인은 키만 큰 것이 아니어서 힘도 세다. 철근 한 다발을 들어 올리면서도 힘든 기색이 전혀 없다. 도면을 든 이가 위로 올라온 철근이 놓일 자리를 지정해 주면, 다른 이들은 열심히 철근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그야말로 일사불란(一絲不亂)하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지금 일하는 이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만들어온 구조물 위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은 구조물은 저 많은 철근과 일을 하고 있는 자신들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누군가 남이 만든 바탕 위에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바탕 위에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은 것이 허술하다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구라도 자신이 이룬 바탕 위에서 다음 일을 하는 것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그동안 어떤 바탕을 만들어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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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새로봄(73)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

 

나 주가 말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아라. 용사는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아라. 부자는 자기의 재산을 자랑하지 말아라. 오직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이것을 자랑하여라. 나를 아는 것과, 나 주가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하나님인 것과, 내가 이런 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아 알 만한 지혜를 가지게 되었음을, 자랑하여라. 나 주의 말이다.(예레미야 9:23-24)

 

예레미야는 멸망이 목전에 닥쳐왔는데도 허망한 자랑에 빠진 이들에게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아라. 용사는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아라. 부자는 자기의 재산을 자랑하지 말”(렘9:23)라고 충고한다. 겸허함을 모르는 ‘지혜’는 다른 이들을 훈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힘’은 자기의 의지를 타자들에게 강제하고픈 욕망으로 이어지고, ‘재산’은 과시적인 소비의 욕망을 부추긴다. 

 

자랑하는 마음의 뿌리에는 열등감이 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칭찬이나 인정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지혜와 힘과 재산은 그들이 중요한 사람임을 입증해주는 전리품이나 마찬가지이다. 반면 내면이 충실한 이들은  굳이 다른 이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적으로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프랑스 사상가인 르네 지라르는 인간의 욕망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매개되어 있다고 말했다. 무엇을 가지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할 때 그 마음의 뿌리에는 그것을 이미 누리고 있는 이들에 대한 선망의 감정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망의 감정이 지배할 때 우리는 부자유 속에 살 수밖에 없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인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삶을 모방하지 않는다. 그들이 모방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예레미야는 우리가 삶을 통해 경험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긍휼, 공평, 공의라는 세 단어로 요약하고 있다. 긍휼은 몸으로 표현되는 사랑 혹은 사랑으로 가득 찬 친절함이고, 공평은 회복적 정의를 가리킨다. 공의는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견결한 태도이다. 하나님은 엄중하신 동시에 부드럽고, 상처입은 세상과 사람을 치유하고 회복시키시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신다.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이것 뿐이다. 

 

 

 

모제스 마이모니데스(Moses Maimonides)는 중세 최고의 철학자이자 랍비였다. 그는 <당황하는 이들을 위한 지침>(The Guide for the Perplexed)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존재, 인간 인식의 한계, 악의 문제 등을 다뤘다. 주제가 어려운 만큼, 내용도 어렵다. 책의 말미에 그는 자기의 가르침을 요약하는 성경구절을 인용한다. 그게 바로 예레미야 9장이다. 고도의 지적인 사색을 거쳐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그 책을 쓴 후 그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처럼 행동할 수는 있다고 믿었고, 인간의 지혜는 하늘을 향한 발돋움이지만 결국 그것은 땅에서 바로 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의학을 공부해 병든 이들을 고쳐 주었고, 고민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해결책을 제시했다. 또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기도하는 것을 즐겼다. 그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사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기도*

 

하나님, ‘타인의 시선이 나를 타락시킨다’는 사르트르의 말이 참 적실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기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고, 가식적인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세상에 적응하느라 지쳤습니다. 속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습니다. 헛된 자랑거리를 추구하던 삶에서 돌이키고 싶습니다. 긍휼과 공평과 공의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마음과 접속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우리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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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7)

 

 신선대

 

한국 산에 반한 규영이와 함께 도봉산 포대능선을 찾았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도봉산 초입을 찾아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도봉산은 손에 꼽을 만큼 우람하고 멋진 산이었다. 특히나 와이(Y)계곡은 험하기도 하고 위태하기도 하여 스릴과 함께 자유로움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지나온 길이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흔한 경험이 아니지 않겠는가.

 

 

 

 

정점을 찍듯 마침내 오른 봉우리가 신선대였다. 탁 터진 사방과 시원한 바람, 산을 오르며 힘들었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보상 받는 느낌이었다. 신선대 바로 앞에 솟아 있는 봉우리도 아름다웠다. 층층 쌓인 바위들이 또 하나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었다.     

 

빼어난 경치에 반해 이 땅을 찾은 하늘의 천사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가 지는 줄 모르고, 옹기종기 얼굴을 맞대고 공기놀이라도 한 것일까? 하도 재미있어, 그냥 돌아서기 아쉬워, 다음날 다시 오자며 놀던 공깃돌 한 데 모아 쌓아놓은 듯 아슬아슬한 돌무더기. 어둠 속 사라지는 신선의 뒷모습을 누가 보았던 것일까, 이름하여 신선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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