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7)

 

도대체 내가 제대로 아는 것은

 

물이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화학물질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사람은 프랑스의 화학자인 앙투안 라부아지에였단다. 1783년 라부아지에가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크게 놀랐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대로 물이 세상을 이루는 기본적인 물질인 원소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놀란 사람은 그런 사실을 알아낸 라부아지에 자신이었다고 한다. 수소는 불을 붙이면 폭발하는 기체이고 산소 역시 불에 무섭게 타는 기체, 그러나 이 둘이 결합하면 불을 끄는 물이 된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았을 때 라부아지에는 자연의 신비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구의 70퍼센트 정도가 물이라 하고, 사람 몸의 70퍼센트 정도도 물이라 한다. 그런데 이 물은 불이 닿으면 폭발하는 휘발성이 강한 기체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우주와 자연의 신비 앞에서, 내 몸 안에 담긴 신비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도대체 내가 제대로 아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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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새로봄(125)

 

영혼의 계승

 

요단 강 맞은쪽에 이르러,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을 제가 갑절로 받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엘리야가 말하였다. “너는 참으로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구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불병거와 불말이 나타나서, 그들 두 사람을 갈라놓더니, 엘리야만 회오리바람에 싣고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사가 이 광경을 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마병이시여!” 엘리사는 엘리야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엘리사는 슬픔에 겨워서, 자기의 겉옷을 힘껏 잡아당겨 두 조각으로 찢었다. 그리고는 엘리야가 떨어뜨리고 간 겉옷을 들고 돌아와, 요단 강 가에 서서, 엘리야가 떨어뜨리고 간 그 겉옷으로 강물을 치면서 “엘리야의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하고 외치고, 또 물을 치니, 강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엘리사가 그리로 강을 건넜다.(열왕기하 2:9-14)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영화 <나사렛 예수>에 나오는 한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권력자들에게 독설을 서슴지 않던 세례자 요한이 군인들에게 붙잡혀갈 때, 그 소란 속에서 요한의 겉옷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물끄러미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예수님이 슬그머니 다가가 그 옷을 집어 들고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셨다. 함께 영화를 본 한 청년은 ‘예수님이 참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그 장면은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라는 마가복음 1장 14절의 말씀을 이미지화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장면은 세례자 요한의 길과 예수님의 길은 다르지만 두 분 모두 하나님 나라를 지향했음을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자 엘리야는 자신의 생도들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려 한다. 하나님을 등졌던 아합과 이세벨에 맞서 싸우느라 지쳤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힘을 내라시면서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선지자 7천 명이 남아 있다고 말씀하셨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에 의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쉽게 절망하고 낙심하는 것은 믿는 이의 마땅한 태도가 아니다. 세상 어딘가에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있는 이들이 있다. 선지자의 생도라 하는 이들은 어쩌면 그 7천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오랜 싸움에 지친 엘리야의 가슴에 다시 한 번 용기의 불꽃을 지펴주었던 소중한 동지들이었다.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 이들을 만나 용기를 붇돋고 싶었던 것이리라. 

 

엘리야는 산지인 길갈을 떠나면서 엘리사에게 그곳에 남아있으라고 권했지만, 엘리사는 스승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엘리사는 스승이 가는 곳마다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강가로…. 요단강을 앞에 두고 엘리야가 겉옷을 말아서 물을 치자 물이 갈라지고 두 사람은 걸어서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넌 후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무엇을 구하는지를 묻자 엘리사는 아주 간결하게 답한다. “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을 제가 갑절로 받기를 바랍니다.”(열왕기하 2:9b)

 

머지않아 떠나실 스승에게 엘리사가 구하는 것은 유형적인 유산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과 깊이였다. 엘리야를 휘몰아갔던 하나님의 영이 자신에게 갑절이나 부어지기를 그는 바랐다. 이윽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가자, 슬픔에 잠긴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을 들고 요단 강 가에 섰다. 그리고 겉옷으로 강물을 치자 강이 갈라졌다. 둘 사이에 일어난 영적 계승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정신의 계승자로 살고 있는가 돌아볼 일이다.

 

*기도*

 

하나님, 삶이 고단하고 팍팍하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행운이 자기에게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그런 헛된 바람을 한번 웃음으로 소비하면 그만이지만,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삶이 지리멸렬해집니다. ‘왜 사는지를 알면 어떻게든 살 수 있다’는 격언처럼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삶의 방편이 아니라 삶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정념을 품고 살기를 원했던 엘리사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마음에 깊이 접속된 사람이 되어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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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베트남 여성을 우습게 여기는 우리의 부끄러움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이름은 1970년대 세계반전 운동의 푯대였다.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맞서 오랜 항불 투쟁을 해왔던 호지명은 이미 당시 제3세계에서 존경받는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다. 프랑스에도 굴하지 않았고, 잠시 이 나라를 점령했던 일본에도 항복하지 않았던 호지명과 그의 조국 베트남. 미국은 이 나라를 침략했지만 결국 손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1953년,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축출된 이후 베트남에서는 제네바 회의의 결과로 평화적인 선거가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프랑스가 지배했던 남베트남과, 이미 해방이 된 북베트남의 통일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렇게 해서 베트남이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국가가 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베트남을 어떻게든 다시 식민지 상태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쟁은 시간이 흐르면서 전 세계의 지탄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식민지 점령전쟁이었고, 베트남의 입장에서는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성격이 분명하게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이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애초에 이 전쟁을 지지했던 언론들도 하나 둘씩 돌아섰다. 베트남 침략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여지없이 땅에 떨어뜨렸다.

 

 

 


미국은 내외적으로 이렇게 몰리자 뒷감당을 하기 어렵게 되면서, 우리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끌어들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이를 집행한 권력이 되었다. 우리사회 일부에서는 이른바 베트남 특수로 우리의 경제가 발전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고 이익을 위해서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도 된다는 식의 풍조를 가져올 수 있는 반인류적 선택이다.

당시 한국군은 그곳에 가서 미군의 전략에 따른 용병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우리와는 아무런 적대적 관계가 없는 곳에서 살상의 현장을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 책임은 물론 일차적으로 미국과 이에 동조한 박정희 정권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책임들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모한 양민학살의 증거는 이후 밝혀졌고, 이러한 기록들은 우리가 베트남에게 이후 국가적 사죄를 해야 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아직도 베트남에게 국가적 차원의 공식 사죄를 한 바가 없다. 국가 수뇌의 유감 표명 정도로 그쳤을 뿐이지, 진지하게 역사적 차원의 사죄를 밝힌 것이 아니었다. 베트남은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우리가 미국의 강요에 의해 그렇게 했다는 논리로 이해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경제관계를 진전시키는 쪽으로 미래지향적 선택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베트남의 자세를 깊이 성찰하고 우리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 말았다. 베트남에 남겨 놓은 한인혼혈 라이 따이한의 문제도 내팽개쳐 버린 지 오래이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마치 한국에 시집오는 것이 환상적인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베트남 여성들을 능멸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최근 일어난 베트남 아내에 대한 한국 남편의 무자비한 폭행 동영상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명백한 인권침해에,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 나라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이다.

베트남은 강대국을 차례차례 이겨낸 강인한 나라다. 지금은 아직 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다지만 수십 년 전쟁의 폐허와 고난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것만 보아도 놀라운 민족이다. 이런 나라의 여성들을 우습게 여기는 우리가 부끄럽다. 이 부끄러움과 자책이 훨씬 더 깊어져야 우리는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진 나라가 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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