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베트남 여성을 우습게 여기는 우리의 부끄러움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이름은 1970년대 세계반전 운동의 푯대였다.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맞서 오랜 항불 투쟁을 해왔던 호지명은 이미 당시 제3세계에서 존경받는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다. 프랑스에도 굴하지 않았고, 잠시 이 나라를 점령했던 일본에도 항복하지 않았던 호지명과 그의 조국 베트남. 미국은 이 나라를 침략했지만 결국 손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1953년,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축출된 이후 베트남에서는 제네바 회의의 결과로 평화적인 선거가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프랑스가 지배했던 남베트남과, 이미 해방이 된 북베트남의 통일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렇게 해서 베트남이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국가가 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베트남을 어떻게든 다시 식민지 상태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쟁은 시간이 흐르면서 전 세계의 지탄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식민지 점령전쟁이었고, 베트남의 입장에서는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성격이 분명하게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이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애초에 이 전쟁을 지지했던 언론들도 하나 둘씩 돌아섰다. 베트남 침략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여지없이 땅에 떨어뜨렸다.

 

 

 


미국은 내외적으로 이렇게 몰리자 뒷감당을 하기 어렵게 되면서, 우리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끌어들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이를 집행한 권력이 되었다. 우리사회 일부에서는 이른바 베트남 특수로 우리의 경제가 발전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고 이익을 위해서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도 된다는 식의 풍조를 가져올 수 있는 반인류적 선택이다.

당시 한국군은 그곳에 가서 미군의 전략에 따른 용병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우리와는 아무런 적대적 관계가 없는 곳에서 살상의 현장을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 책임은 물론 일차적으로 미국과 이에 동조한 박정희 정권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책임들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모한 양민학살의 증거는 이후 밝혀졌고, 이러한 기록들은 우리가 베트남에게 이후 국가적 사죄를 해야 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아직도 베트남에게 국가적 차원의 공식 사죄를 한 바가 없다. 국가 수뇌의 유감 표명 정도로 그쳤을 뿐이지, 진지하게 역사적 차원의 사죄를 밝힌 것이 아니었다. 베트남은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우리가 미국의 강요에 의해 그렇게 했다는 논리로 이해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경제관계를 진전시키는 쪽으로 미래지향적 선택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베트남의 자세를 깊이 성찰하고 우리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 말았다. 베트남에 남겨 놓은 한인혼혈 라이 따이한의 문제도 내팽개쳐 버린 지 오래이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마치 한국에 시집오는 것이 환상적인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베트남 여성들을 능멸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최근 일어난 베트남 아내에 대한 한국 남편의 무자비한 폭행 동영상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명백한 인권침해에,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 나라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이다.

베트남은 강대국을 차례차례 이겨낸 강인한 나라다. 지금은 아직 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다지만 수십 년 전쟁의 폐허와 고난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것만 보아도 놀라운 민족이다. 이런 나라의 여성들을 우습게 여기는 우리가 부끄럽다. 이 부끄러움과 자책이 훨씬 더 깊어져야 우리는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진 나라가 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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