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161)

 

평화 나누기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로마서 12:17-21)

 

바울 사도는 성도들이 꼭 붙들어야 할 삶의 지침을 간결하게 요약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로마서 12:21).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이다. 기도 가운데 마음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이를 데려오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이 아니다. 솔직하게 마음의 생각을 아뢰라. 왜 그를 용납하기 어려운지를 말이다. 하나님 앞에 그 문제를 내려놓는 순간 치유가 시작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오래도록 귀를 기울이여야 한다. 말씀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은 자기 속에 어떤 힘이 유입됨을 느낄 것이다.

 

또한 선으로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괴로움을 주었던 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야 한다. 출애굽기를 읽다보면 율법의 가르침이 매우 현실적이라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율법은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거든, 반드시 그것을 임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너희가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의 나귀가 짐에 눌려서 쓰러진 것을 보거든,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말고, 반드시 임자가 나귀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도와 주어야 한다”(출애굽기 23:4-5).

 

삶의 곤경이 오히려 원수와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어려움을 함께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들도 자신과 똑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임을 알게 된다. 교회는 평화를 배우고 익히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망가진 세상을 고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평화의 표징이 될 수 없다. 박노해 시인은 <평화 나누기>라는 시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이들의 과제를 이렇게 밝힌다.

 

 

 

 

일상에서 작은 폭력을 거부하며 사는 것/세상과 타인을 비판하듯 내 안을 잘 들여다보는 것 /현실에 발을 굳게 딛고 마음의 평화를 키우는 것//경쟁하지 말고 각자 다른 역할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일을 더 잘 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좀 더 친절하고 더 잘 나누며 예의를 지키는 것// 전쟁의 세상에 살지만 전쟁이 내 안에 살지 않는 것/총과 폭탄 앞에서도 온유한 미소를 잃지 않는 것/폭력 앞에 비폭력으로, 그러나 끝까지 저항하는 것/전쟁을 반대하는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따뜻이 평화의 씨앗을 눈물로 심어 가는 것

 

남과 북, 노동자와 사용자, 여당과 야당, 부자와 가난한 사람,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날로 깊어가고 있다. 평화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낯선 시대이다. 하지만 평화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 믿는 이들은 이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한복판에서 사랑에 근거한 삶이 가능함을 실증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기도*

 

하나님, 거친 세상에 지친 히브리의 시인은 그의 말은 기름보다 더 매끄러우나, 사실은 뽑아 든 비수로구나”(시편 55:21) 하고 탄식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실감이 되는 나날입니다. 한 번 두 번 상처를 입는 일이 반복되면서 우리 마음은 갑각류처럼 굳게 닫혔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 결과는 쓸쓸함입니다. 주님, 선으로 악을 이길 힘을 주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도 평화를 포기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우리 속에 심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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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새로봄(162)

 

희망의 뿌리

 

그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예루살렘의 주민이 네 모든 친척, 네 혈육, 이스라엘 족속 전체를 두고 하는 말이 '그들은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이 땅은 이제 우리의 소유가 되었다' 한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일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비록 내가 그들을 멀리 이방 사람들 가운데로 쫓아 버렸고, 여러 나라에 흩어 놓았어도, 그들이 가 있는 여러 나라에서 내가 잠시 그들의 성소가 되어 주겠다' 하여라.(에스11:14-16)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 있던 자기 집에서 놀라운 비전을 본다. 그가 유다 장로들과 함께 앉아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하늘과 땅 사이로 그를 들어 올려 예루살렘으로 데려갔다. 거기서 그는 성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역겨운 일들을 다 보았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제 잇속 차리기에 급급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죽음을 선고하신다. 그 참담한 광경을 보면서 망연하게 서 있던 에스겔은 더 놀라운 광경을 본다. 그룹들 사이에 좌정해 계시던 주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 성읍 동쪽에 있는 산꼭대기에 머무르는 장면이었다(에스10).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성전,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강도의 굴혈이 아니겠는가.

 

에스겔의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지금 우리 형편은 어떤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땅에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는 많지만 하나님의 영이 머물고 계신 교회는 많지 않은 것 같다. 하나님과 함께 아파하고 그분의 손과 발이 되려는 교회가 참 교회이다. 희망의 빛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

 

 

 

 

 

하나님은 이방 땅에 끌려가 죗값을 치르고 있는 백성을 보며 마음 아파하신다. 예루살렘에 남겨진 이들은 포로로 잡혀간 이들의 땅을 차지할 생각에 온통 부풀어 있었지만 하나님은 잡혀간 이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셨다. 그래서 말씀하신다.

 

비록 내가 그들을 멀리 이방 사람들 가운데로 쫓아버렸고, 여러 나라에 흩어 놓았어도, 그들이 가 있는 여러 나라에서 내가 잠시 그들의 성소가 되어 주겠다”(11:16).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백성들을 찾아가 스스로 성소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때가 되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들 속에 일치된 마음과 새로운 영을 넣어주시어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라 살게 할 것이라 약속하셨다(에스36:26-27).

 

이 약속은 위태롭기만 한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반석이었다. 종말론적인 희망이 삶에 유입될 때 잿빛 현실은 완전히 다른 빛깔로 바뀌지 않던가. 캄캄한 밤과 같은 세월을 지난다 해도, 주님의 동행하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두려움 없이 어둠을 헤쳐 나갈 수 있다. 길 없는 곳에 길을 내며 걷는 것이 믿음의 행보이다. 희망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우리는 그 희망을 살아내면 된다.

 

*기도*

 

하나님, 광야에 세워진 회막은 소박했지만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졌던 성전은 애초에는 아름다웠으나 결국은 더러워지고 말았습니다. 권력과 탐욕이 영광의 빛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닙니다. 오늘 더럽혀진 이 땅의 교회들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시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게 해주십시오. 이제 다시 시작할 용기와 희망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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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28)

 

Good to Great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Good is the enemy of Great) 라는 말이 있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짐 콜린스 교수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 나오는 구절로 알려져 있다.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라는 말 뒤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이어진다. “대개의 사람들은 제법 ‘좋은 삶’을 살게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위대한 삶’으로의 꿈을 접는다.” 

 

 

 

 

의미로 살펴보면 ‘좋은’이라고 옮긴 ‘Good’은 ‘좋은’보다도 ‘무난한’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무난한 삶에 만족하여 그 너머에 있는 위대한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를 않는다. 이만하면 됐다 하는 마음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위대한 삶을 미리 포기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Great’는 ‘위대함’보다는 ‘의미 있는’으로 옮기고도 싶다.

시간은 인간의 몫이 아니어서 때를 셈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환갑이 지나면서부터 목회의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조급함과는 조금 다른, 허투루 보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무난하게, 무탈하게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 없다. 그것은 최선이 아니다. 낯설고 거북해도 무난한 것을 등지고 의미 있는 것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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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29)

 

어느 날 보니

어느 날 보니
젊다는 것이 예쁘더라
푸릇푸릇
영 서툰 것이

어느 날 보니
늙었다는 것이 예쁘더라
노릇노릇
잘 익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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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27)

 

호박꽃을 따서는

우리나라의 전래동요를 모아놓은 책에 ‘호박꽃’이란 동요가 담겨 있다. 

충북 충주 지방 동요라고 밝히고 있는데, 삽화도 정겹다.

호박꽃을 따서는
무얼 만드나
우리 아기 조고만
촛불 켜주지

 


 

 

 


예뻐라, 호박꽃.
호박꽃과 같은 후덕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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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26)

 

개치네쒜

 

 

우리가 모르는 우리말이 어디 한둘일까만, ‘개치네쒜’라는 말은 전혀 모르던 말이었다. 심지어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디 다른 나라 말로 여겨진 말이었다. 우리말에 그런 말이 있는 줄을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 영 아쉽게 여겨졌던 것은 그럴 만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에서 목회를 시작하며 독일어를 배우는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시에서 개설한 독일어를 가르치는 곳이었는데, 나처럼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모여 ‘아베 체 데’부터 배우는 과정이었다. 오직 독일어만으로 독일어를 가르쳤는데 전혀 모르는 언어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내게는 또 다른 관심사이기도 했다. 표정이나 몸짓이 만국공통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 때 덤으로 배웠다. 

어느 날인가 인사말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날 배운 인사말 중의 하나가 “게준트하이트!(Gesundheit!)”였다. 누군가가 재채기를 하면 옆에 있던 사람이 건네는 인사말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말은 건강이라는 뜻의 ‘게준트(Gesund)’와 상태를 의미하는 ‘하이트(Heit)’가 결합된 말이었다. 


게준트하이트를 일러준 선생님은 수강생인 우리들에게 자기나라에서는 이럴 때 어떻게 인사를 하는지를 나눠보자고 했다. 미국에서 온 학생이 당연하다는 듯이 “God bless you”라고 소개를 했다. 그날 들은 인사를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나라마다 다양한 인사말이 있었다.  


아랍에서는 “알함둘릴라(Alhandulilla)”(신께 찬미를)이라 말하고, 러시아에서는 재채기를 한 아이에게 “부지 즈도로브(Bud’ zdorov)”(건강해라)라고 화답한 뒤에, “로스티 볼쇼이(Rosti bolshoi)”(크게 자라거라)라고, 중국에서는 아이가 재채기를 하면 “백 살까지 살기를”이라는 뜻으로 “바이 슈이(Bai sui)”라고, 이탈리아에서는 “펠리시타(Felicita)”(행복해라), 프랑스에서는 “A vos souhaits”(소원 성취하기를) 또는 “Que Dieu vous benisse”(신의 가호가 있기를)라고 인사를 한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는데 도무지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재채기를 했을 때 따로 들었던 말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는 그런 말이 없다고 하기에는 뭔가 우리나라를 미개하거나 무례한 나라로 만드는 것 같았고, 우리에겐 그런 말이 없다고 독일어로 표현할 자신도 없었다.
얼떨결에 대답했던 말이 “에헴!”이었다. 대답을 하고나자 그 말이 재밌다며 학생들이 웃었는데, 순간적으로 깨달았던 것은 “에헴”이라는 말은 재채기에 대한 응답이 아니었다. 그 말은 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했던 말이기도 하고, 그보다는 아이가 기침을 하면 기침을 그치라며 어른들이 따라하라고 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우리말에도 재채기를 했을 때 건네는 말이 있었다니! ‘개치네쒜’가 바로 그런 말이었던 것이다. ‘개치네쒜’라는 말은 영 낯설어서 마치 주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개치네쒜’의 유의어로는 ‘에이쒜’나 ‘에이추’가 있고, 강원도 방언으로는 ‘개치네시’라 했다니, 제법 널리 사용하던 말이었지 싶다. 누군가 재채기를 했을 때 “개치네쒜!” 하면 고뿔이 들어오지 못하고 물러갔다는 것이다.

모르는 단어 하나를 아는 것을 넘어 누군가의 재채기 하나에도 따뜻한 관심을 갖는 의미로 마음에 새겨둘 우리말이다 싶다. ‘개치네쒜’라는 낯선 말이 어서 낯설음을 벗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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