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을 옮길수록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7)

 

걸음을 옮길수록

 

오늘 새벽기도예배에서 나눈 본문은 마가복음 12장 1~12절이었다.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포도원 비유였다.

 

어느 순간부터 예수님의 걸음과 말과 태도는 점점 십자가에 가까워진다. 포도원 비유만 해도 그렇다. 종교 지도자들이 이야기를 듣고는 그것이 자신들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십자가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부터 돌아보는 것이 마땅한 도리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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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빛

  • 사진에 있는 문구가 한글이지요.. 러시아 사람이 쓴 글입니까? 이것이 어디에 있는 거에요?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12 08:41
  • 사진은 제가 올리는 것이 아니어서 모르겠네요.
    저는 원고만 쓴답니다.

    한희철 2019.10.12 19:31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6)

 

 겸손의 빛

 

 

 

 

 

“너는 하나님을 향하고 있거나 돌아서 있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 없이 있을 수는 없다.”

 

한 러시아인이 한 말이라고 한다. 그는 왜 굳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일까? 돌아보면 누구의 가슴 속에나 있는, 너무도 지당한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아닐까?

 

이 말을 내가 했다고, 이렇게 멋진 생각을 내가 했다고 이름을 밝히는 대신 무명으로 남아 그가 한 말은 또 하나의 빛을 발한다. 말의 의미는 물론 이름을 드러내지 않음으로 드러내는 겸손의 빛까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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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을 찬란한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사울을 일그러뜨려야 만 했을까?

다윗을 찬란한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사울을 일그러뜨려야 만 했을까?

 

 

사울은 오랫동안 잊혔던 인물이다. 그의 이름과 생애를 대충 아는 사람에게조차 잊혀왔다. 반면 다윗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추앙받아왔다. 무엇이 사울을 잊힌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다윗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추앙받아왔을까? 우리가 갖고 있는 사울의 초상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반면 다윗은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다. 누가 사울을 이토록 일그러뜨렸을까? 무엇이 다윗을 이처럼 화려하게 꾸몄을까?

 

 

 

사울은 이스라엘의 사사들이 다스렸던 지파공동체시대에서 왕이 통치했던 군주제시대로 넘어가는 이행기의 첫 왕이었다. 당시 고대 중동지역의 거대 문화권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물론이고 가나안의 작은 종족들도 모두 왕이 다스렸다. 이스라엘에도 왕정이 낯선 제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에는 오랜 전통의 야훼 유일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야훼 이외에 다른 신이나 인간이 왕의 자리에 앉는 것을 극구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했다.

 

이 전통의 대변자인 사무엘에게 백성들은 왕을 달라고 요구했다. 야훼가 마지못해 이 요구를 들어준 데는 외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서 안정적인 리더십이 필수적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함께 세금과 직업군대 등 관료제를 유지할만한 여력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울과 다윗은 그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후대의 역사는 사울을 일그러뜨리는 값을 지불하고 다윗을 찬란한 영웅으로 만들었다. 다윗을 그렇게 미화하기 위해서는 사울을 일그러뜨려야 했다. 물론 사울이 다윗을 능가하는 인간적인 매력을 갖췄다고 볼 수는 없다. 사울은 사울대로, 다윗은 다윗대로 매력과 약점을 모두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사울은 약점이 부각되었고 다윗은 매력이 두드러지게 강조됐다.

 

우리가 <사무엘서>에서 만나는 사울과 다윗은 신명기 역사가로 짐작되는 설화자에 의해 평가된 사울과 다윗이다. <사무엘서>는 이미 사울과 다윗에 대한 평전인 셈이다. 이 책은 이 평전을 평가하는 책이다. 곧 설화자가 이 두 사람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평가하는 책으로서 ‘평전에 대한 평전’인 셈이다. 이 책은 다윗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평가를 교정하려는 의도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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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명

  • 공감합니다. 저도 제 과녁이 아닌데도, 불쑥 불쑥 참지 못하고 쏘고 만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한적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11 09:16
  • 빗나간 화살,
    그것이 죄의 의미라 하더군요.

    한희철 2019.10.11 21:36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5)

 

어떤 소명

 

과녁이 아닌데도, 우리 가슴엔 수많은 화살들이 박혀 있다. 누군가의 말, 원치 않았던 사람, 피할 수 없었던 일, 때로는 피를 철철 흘리기도 했고, 겨우 아물던 상처가 덧나기도 했다. 상처투성이의 모습은 과녁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돌아보면 화살이 어디 내 가슴에만 박힌 것일까? 함부로 쏘아댄 화살이 내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미숙함으로 성급함으로 쏜 내 화살에 맞은 가슴이 왜 없을까? 나로 인해 잠을 못 이루며 괴로워하는 이가 왜 없을까?

 

서로의 화살을 뽑아줄 일이다. 떨리는 손으로 깊이 박힌 화살을 뽑아내고, 눈물 젖은 손으로 약을 바를 일이다. 돌에 퍼렇게 이끼가 낀 신학교 교문만이 아니다. 녹이 슨 봉쇄 수도원의 철문만이 아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소명 앞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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