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할래요

카테고리 없음 2020. 6. 17. 10:58

신동숙의 글밭(167)


분노할래요




분노할래요

모르는 아이의 작은 소리에도


욕심부릴래요

어진 어른의 큰 가르침에도


땅에 닿으려는 

옷자락의 끝을 추스르듯

제 모든 의식을 추스려서


이 모든 분노와 욕심도 

오롯이 진리 속이라면

쓸모가 있을 테니까요


사랑하지 않을래요

제 가족의 정다운 사랑에도


믿지 않을래요

제 자신의 확고한 믿음에도


입가에 묻은

한 방울의 물기를 닦듯이

제 모든 마음을 닦아서


이 모든 사랑과 믿음도

오롯이 진리 속이 아니라면

쓸모가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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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밖엔 될 게 없어서

한희철의 얘기마을(1)


그것밖엔 될 게 없어서


따뜻한 봄볕이 좋아 소리와 규민이를 데리고 앞개울로 나갔다. 개울로 나가보니 버들개지도 벌써 피었고, 돌미나리의 새순도 돋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밭둑에 어느새 풀들이 쑥 자라 있었다.


개울물 소리 또한 가벼운 몸짓의 새들과 어울려 한결 명랑했다. 겨울을 어떻게 났는지 개울 속에는 다슬기들이 제법 나와 있었다. 다슬기를 잡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논둑을 지나다보니 웬 시커먼 덩이들이 군데군데 논물 안에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개구리 알이었다.


“저게 뭔지 아니?”
“몰라요.”
“개구리 알이야, 저 알에서 올챙이가 나오는 거야.”



소리와 규민이가 신기한 눈빛으로 개구리 알들을 쳐다본다.


“올챙이가 커서 뭐가 되는지 아니?”
“개구리요.”


책에서 본적이 있는지 소리가 이내 대답을 했다.


“아빠, 그런데 왜 올챙이는 커서 개구리가 되는 거예요?”


올챙이는 커서 왜 개구리가 되냐니, 뭐라 대답할 말이 딱히 없었다.
“글쎄다”


대답을 망설일 때 소리가 한마디를 보탰다.


“그것밖엔 될 게 없어서예요?”


그것 밖에 될 게 없어서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냐는 말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것밖엔 될 게 없어서'라는 말이 참 재미있게 들렸다.


“그래 맞겠다. 그것밖엔 될 게 없어서겠다.”


난 거듭거듭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밖엔 될 게 없는 내 생의 모습은 무엇일지.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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