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벗이 찾으니

한희철의 얘기마을(134)


먼 곳에서 벗이 찾으니



막 수요예배가 시작되었을 때 낯선 청년 세 명이 예배당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배낭을 하나씩 메고 있었다.


뒤편 한 구석에 배낭을 벗어 놓더니 나란히 뒷자리에 앉는다.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하며, 설교를 하며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짐작 가는 데가 없다. 누굴까, 누가 단강을 찾아와 함께 예배를 드릴까, 궁금증이 들쑥날쑥 머릿속을 드나들었다.


설교를 마치고 성도의 교제시간, 소개를 부탁했다. 단강이 그리워서, 단강교회 교우들이 보고 싶어서 왔노라고 했다. 짧은 소개를 박수로 받았다.


예배를 마치고 모두들 난롯가에 둘러앉았다. 멀리 울산에서 올라왔다는 말보다는, 교우들을 소개 했을 때 익히 알던 분을 만난 듯 익숙한 이름을 되뇌는 청년들의 모습에 교우들이 놀랬다.


단강 이야기가 담긴 책 <내가 선 이곳은>을 읽고서 먼 여행길, 일부러 행선지를 단강으로 정했던 것이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온 젊은이들 앞에,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드문 일 앞에서 교우들은 고마워했다.


처음이면서도 밀린 이야기 나누듯 밤이 깊었다. 좁다란 사택 불편한 잠자리였지만 마음은 편했다. 보일러의 불 문을 활짝 열고서 연탄 한 장을 더 올려놨다. 


먼 곳에서 찾아온 벗을 맞는 즐거움, 옛 선인의 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밤이었다. 


-<얘기마을> (1992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축구 선수  (0) 2020.11.06
밤은 모두를 재워  (0) 2020.11.05
먼 곳에서 벗이 찾으니  (0) 2020.11.04
쉬운 삶  (0) 2020.11.03
우리는 가난합니다  (0) 2020.11.02
별들의 잔치  (0) 2020.11.01
posted by

투명한 예수

신동숙의 글밭(268)


투명한 예수


공생애를 사시던 예수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제가 유심히 살펴보던 점은 모든 행함 중에 보이는 예수의 마음입니다. 모든 순간의 말과 행적을 놓치지 않으며 제 마음에 비추어 보는 일이 다름 아닌 성경 읽기와 사람 읽기, 마음 읽기가 됩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과 일은 어디까지나 마음의 일이니까요.


결혼식 축하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신 후 보이신 예수의 마음에는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으십니다. 혈우병을 앓던 여인이 군중 사이를 지나던 예수의 옷자락을 잡고서 병이 나음을 보이시고도, 예수는 "너의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고 할 뿐입니다. 



신약의 전문을 낱낱이 살펴보아도 이른바 종교인들이 내세우는, 예수가 행하신 이적과 기적 중에도, 예수는 언제나 자신의 공로와 의를 내세운 곳이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예수의 마음은 투명합니다. 예수의 허공처럼 투명한 그 마음을 대하고선 저는 그 앞에 그만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와 닮은 마음이 있다면, 중도연기의 석가모니가 깨달아 보여준 본성이 허공처럼 투명합니다. 그리고 다석 류영모 선생님의 마음이 그처럼 투명한 허공을 닮았습니다. 법정 스님의 삶과 아름다운 마무리에서도 맑은 바람이 하늘을 스칩니다. 


종교의 벽을 초월한 마음의 세계에서 본다면 예수와 석가모니의 마음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하나의 하늘, 하나의 허공입니다. 저는 그렇게 보았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제 마음에 비친 예수와 석가모니의 마음이 투명한 것입니다. 학문과 종교 교리에 비추어 아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에 비추어 그냥 아는 것입니다. 학문과 종교 교리는 단지 이정표와 참고서로 삼을 뿐, 모든 현상과 삶과 사람과 마음을 바라보는 거울과 교과서와 중심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 중심으로부터 평화와 사랑과 자유의 바람이 불어오니까요.


예수의 마음에는 자기 자신의 것이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가끔은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을 때가 있습니다. 싱그러운 풀냄새를 풍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나무의 청정함을 닮은 사람을 스치기도 합니다.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살아가는 이들에게선 저절로 자연의 향기가 스며들 테고, 지극해지면 그 마음은 허공을 닮아서 모든 것을 안으면서도 그 어디에도 물들지 않을 테지요. 


말씀과 행함 중에 보이신 예수의 마음을 보고 있으면, 예수는 사라지고 투명한 하늘만 보입니다. 가장 온전한 마음을 저는 예수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신동숙의 글밭 > 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방은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  (0) 2020.11.10
평화의 밥상  (0) 2020.11.06
투명한 예수  (0) 2020.11.04
비가 그친 후 소나무 숲 냄새  (0) 2020.11.03
"평화에도 머물지 말라"  (0) 2020.11.01
구멍가게 성당  (0) 2020.10.27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