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성자들

세속의 성자들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창28:11-12)

주님의 평화가 모든 이들에게 임하시기를 빕니다.

별고없이 잘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지난 두 주 동안 교우들께서 보내주시는 메시지를 보며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감염병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기 삶을 알차게 가꾸기 위해 애쓰신 교우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접속을 유지했기에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다는 고백은 우리 가운데 신앙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저는 일본인 오시다 시게또를 통해 ‘먼 빛의 눈길’이라는 표현과 만났습니다. 그는 신앙은 우리 일상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일을 이해득실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속상하기도 하고, 속이 타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그 문제는 우리 인생의 수많은 계기 가운데 하나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다 보면 일상의 자잘한 일 때문에 감정이 격동하는 일이 줄어들게 됩니다. 성공했다 하여 날뛰지 않고 실패했다 하여 세상이 무너진 듯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것을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가을을 가리켜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계절이라 합니다. 바깥으로 향했던 우리 눈을 거둬들여 내면을 살펴야 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아를 만들어 사람들 앞에 내보이곤 합니다. 신앙인이라 하여 다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거짓 자아를 숨기기 위해 다양한 활동 속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예배, 성경 공부, 기도 모임, 친교 모임, 수양회 등에 참석하는 것으로 내가 꽤 괜찮은 신자라는 자부심을 품을 때도 있습니다. 마치 가인이 자기를 위한 도시를 만들고는 그것이 하나님의 도성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거짓 자아는 끊임없이 자기 확장을 꾀합니다. 자기를 선의 범주에 넣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악마화하거나 무시합니다. 종교적 열심이 오히려 사람들을 상식적인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마틴 부버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참 적실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어떤 사람이 랍비 모쉐 라이브에게 물었다. “당신은 십이 년 동안이나 당신의 스승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에게서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얻었습니까? 십이 년은 긴 세월입니다. 그에게서 경전들의 어떤 의미를 배웠습니까?” 랍비 라이브는 대답했다. “아니다. 나는 토라(유대교의 경전)를 배우기 위해 스승과 함께 생활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스승을 관찰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 그가 어떻게 신발끈을 풀고, 어떻게 그것을 다시 매는가를 지켜보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 그의 단순한 움직임들을 지켜보는 데에 십이 년이 걸렸던 것이다. 그가 숨쉬는 방식, 그가 서 있는 방식, 그가 잠자는 방식…이 모든 것이 하나의 명상이었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신비였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토록 오랜 세월이 걸렸던 것이다. 처음에는 내 자신의 생각이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내 머리 속에서 비워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나는 나의 스승을 볼 수가 있었다.”(마르틴 부버 원작, 미카엘 네프 편집, <성자가 되기를 거부한 수도승>, 류시화 옮김, 푸른숲, p.67)

일상을 거룩하게 사는 삶이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이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참 스승은 가르치는 이가 아니라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밥을 먹고, 길을 걷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대화하고, 음식을 먹는 모습을 통해서도 거룩한 삶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 삶의 특징은 삼감과 존중 그리고 경외심일 것입니다. 거친 말과 눈빛이 횡행하는 세상에 살다 보니 그렇게 조심스럽게 살면서 하늘을 드러내는 이들을 만나면 행복합니다.

<전라도 닷컴>이라는 잡지는 제가 제일 재미있게 읽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잊혀가는 시골 마을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을 자기 소명으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의 일부분이었으나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생활용품이나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월호 기획 특집 주제는 ‘고향 편지’였습니다. 흙과 더불어 살아온 노인들의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손은 주름투성이이고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맑은 미소는 욕심 없이 살아온 이들의 편안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담양에 사시는 90세의 할머니에게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당신을 찍지 말라 하십니다. 늙어 주름진 모습을 보이기 싫으셨던 것일까요? 그러면서도 싫지는 않으신 듯 활짝 웃고 계십니다. 기자가 담장 위에 있는 고양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나비야, 너 사진 찍는단다”라며 반기십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식구가 없응께 나비가 식구맹키여. 이상 의지가 디야. 영리해. 말하문 이상 알아들어. 안 시캐서 글제, 머이든 갈치고 연십(연습)을 시키문 잘할 것이구만, 하하.” 할머니가 나비를 좋아하는 것은 당신을 보고 ‘알은 척’ 하기 때문입니다. “나비 소리가 테레비 떠드는 소리보다 좋제. 나는 우리 나비 보고 마당에 꽃 보고 살아. 꽃도 나비도 애기 키우대끼 키우고 보제. 사람은 자기 공력 들이고 쳐다보고 살 것이 있어야써. 다 정성이여. 건성으로 되는 것은 이 시상에 없제.”(<전라도닷컴>, 2020.10.222호,p.19)

온 세상을 변화시키는 경세가는 아닐지라도 이런 마음을 품고 산다면 세속성자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세속 성자란 우리의 비근한 일상 속에서 거룩한 세계를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사실 그런 분들은 자기들이 그런 줄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꽃도 나비도 애기 키우대끼 키우’는 사람, 생명 돌봄을 자기 소명으로 여기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 영혼은 저절로 맑아집니다.

야곱이 꿈에 본 층계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달아나다가 광야에서 밤을 맞은 야곱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가 베고 잤다고 하는 돌베개가 그의 신산스러운 처지를 오롯이 드러냅니다. 그는 매우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그의 든든한 울타리였던 가족으로부터 멀어졌고, 설상가상으로 낯선 곳에서 맞이한 밤은 또한 들짐승들의 시간이었습니다. 잠을 청해보지만, 비몽사몽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꼭대기가 하늘에 닿은 층계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의 ‘베델’이라 일컫습니다. 성경의 베델은 특정한 장소의 이름이지만, 우리 삶의 베델은 도처에 있습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삶의 자리가 다 베델입니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위기를 만나 취약해질 때 우리가 선 자리가 곧 하나님이 계신 자리임을 알게 됩니다. 일상을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고 누누이 말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땅은 하나님이 머무시는 땅입니다(민35:34).

며칠 전 어느 개신교 신자가 사찰에 불을 지르며 ‘할렐루야’를 외쳤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광신자들의 행태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허물고 있습니다. 타자를 악마화하는 일체의 종교적 신념은 위험합니다. 그것은 예수 정신과 무관합니다. 믿음은 시민적 덕성과 유리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됩니다. 종교적 열심이 지식과 덕성과 결합하지 않을 때 폭력으로 귀착되기 쉽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취약한 상황에 내몰린 이들 곁에 다가서야 할 때입니다. 개그우먼 한 분이 세상을 등졌다고 하지요? 참 가슴이 아픕니다. 절망의 벼랑 끝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마침내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그 마음이 얼마나 가엾은지요. 우리 주변에 그런 분들이 없나 잘 살펴야겠습니다. 에너지 빈곤층에게는 다가오는 겨울이 공포스러울 수 있습니다. 유난히 올해는 후원자들의 발길이 뜸하다고 하네요. 마종기 시인의 시가 떠오릅니다.

하느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겨울 기도’ 부분)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이라는 표현이 늘 제 마음에 걸려 있습니다. 다음 주 토요일(14일)에 2남선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연탄배달 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작은 실천이지만 귀한 일입니다. 스산한 날씨에 지치지 마시고, 늘 감사해야 할 일들을 기억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2020년 11월 5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posted by

평화의 밥상

신동숙의 글밭(270)


평화의 밥상



따끈한 무청 시래기 된장국 한 그릇, 김밥 반 줄, 유부 초밥 세 개, 깍두기 일곱쪽, 수도승들이 산책길에 주운 알밤 한 줌, 제주도 노란 귤 하나로 따뜻하고 맛있는 풍요로운 이 가을날 점심밥상의 축복을 받습니다.


아침부터 분주히 많은 양의 식사 준비를 하시던 누군가의 마음이 손길이, 먹는 이의 입으로 가슴으로 전해지는 거룩한 식사 시간은 그대로 고요한 감사의 기도 시간이 됩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앞마당엔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상이 보이고, 밥을 먹는 제 곁엔 사찰의 공양게송이 가까운, 이곳에선 하느님과 부처님이 사이좋은 이웃입니다. 


하나의 평등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이미 깊은 땅속에서 하나에 뿌리를 둔 하나라는 사실을 문득 해처럼 떠올리다 보면 어둡던 마음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종교의 벽을 초월한 이곳 평화의 땅, 평화의 집에서 먹는 음식은 몸에는 약이 되고 마음엔 기쁨이 됩니다.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공양게송 한 줄을 꼭꼭 씹어 가슴으로 새깁니다. 또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서 이렇게 공양게송을 한 줄 한 줄 가슴으로 새기다 보면, 이대로 식사가 끝날 때쯤이면 공양게송을 다 외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마 돌아서서 금새 잊어버린다 하여도 상관없습니다. 이 다음에도 이곳 같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또 새롭게 가슴으로 새기면 되니까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산책을 하듯, 말의 뜻을 가슴으로 새기는 일이란 매 순간을 깨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잠자던 가슴으로 말씀의 새숨을 불어넣어 몸을 일으켜 세우는, 매 순간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생명의 활동입니다.


이 화창한 가을날 멈추어 하늘의 평화가 머무는 이곳은 평화의 땅이 되고, 미리 맛보는 천국이 됩니다. 밥 한 끼를 먹어도 이렇게 마음 편안한 곳에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겐 커다란 선물이자 축복입니다. 


오늘도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그 어느 곳에 있든지 저마다 마음이 편안한 평화의 밥상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신동숙의 글밭 > 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은 레몬 홍차  (0) 2020.11.12
빈방은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  (0) 2020.11.10
평화의 밥상  (0) 2020.11.06
투명한 예수  (0) 2020.11.04
비가 그친 후 소나무 숲 냄새  (0) 2020.11.03
"평화에도 머물지 말라"  (0) 2020.11.01
posted by

어떤 축구 선수

한희철의 얘기마을(136)


어떤 축구 선수


가끔씩 떠올리는 축구 선수가 있습니다. 어느 날 중요한 시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영 자신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실수로 경기를 놓칠 것 같은,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 고민 하던 그가 그만의 방법을 생각해 냈고, 운동장에 들어간 그는 열심히, 어느 때 보다도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이란, 공 없는 데로만 뛰어다니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이 자기 앞에 왔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실수를 미리 피하기 위해 그는 공 없는 곳으로만 열심히 뛰어다닌 것입니다.



그럴 수가 있냐며 웃지만, 사실 우리들의 삶이 그럴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실수가 두려워서 삶을 피해 다니는 안쓰러운 모습들. 실수를 두려워하여 삶을 외면하는 자는 실수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삶이란 이미 커다란 실수입니다. 


실수 또한 우리들의 삶의 한 모습이며 때로는 우리 삶의 좋은 선생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엄해 보이지만 실은 따뜻함을 지난 선생님 말입니다. 


두려움에 쫓겨 공을 피해 뛰는 것이 아니라 공을 향해 달리는, 그렇게 삶을 향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는 모습이 그립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엄마  (0) 2020.11.08
엄마 젖  (0) 2020.11.07
어떤 축구 선수  (0) 2020.11.06
밤은 모두를 재워  (0) 2020.11.05
먼 곳에서 벗이 찾으니  (0) 2020.11.04
쉬운 삶  (0) 2020.11.03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