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샘



가끔 누군가를 만나
소화되지 않는 말이 있지

목에서 걸리고
가슴에 맺히는 말 한 마디

저녁답 쪼그리고 앉아 군불로 태워버릴 
부뚜막 아궁이도 내겐 없는데

한겨울밤 문틈으로 바람 따라 보내버릴
엉성한 문풍지도 내겐 없는데

사방이 꽉 막힌 방에서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숨통이라도 트려고
빠져나갈 구멍을 찾다가

몸을 지으실 때 가장 연약한 틈
눈물샘으로 흐른다

가슴이 나를 대신해서 
나를 위해서 말없이 울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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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



아침 일찍 끝정자로 내려가 안 속장님과 속장님의 언니를 태우고 작실로 올라갔습니다. 며칠째 앓아누워 있던 속장님의 언니가 작실 집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속장님 또한 몸이 안 좋은 상태지만 더 아픈 언닐 혼자 보낼 수가 없어 속장님이 언니를 따라 나섰습니다. 며칠 동안을 텅 비어있던 썰렁한 집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의 눈에서 핑그르르 눈물이 돕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들, 게다가 걸음도 편치 않은 병약한 몸들입니다. 

내려오는 길, 김천복 할머니 댁에 들러 할머니를 모시고 부론으로 나왔습니다. 밀려있는 객토 대금을 갚으러 농협에 가는 길입니다. 허리 굽은 여든의 노인네가 콩과 깨, 고추 등을 장에 이고 가 푼푼이 팔아 모은 돈으로 농협 빚을 갚으러 갑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웃으며 나누지만 할머니 모시고 빚 갚으러 가는 길은 우울한 길입니다. 

 


12시, 원주 <태자>에서 모이는 '목요성서모임‘, 서너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작지만 소중한, 작기 때문에 소중한 모임입니다. 저녁 강의가 있어 기다리던 참에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받는 아내의 목소리가 다급합니다. 


단강속 이옥분 씨가 원주의료원 응급실로 나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병원으로 달려가니 이옥분 씨는 수술실에, 남편은 바깥 복도에서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쉰이 다 되어 단강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부부입니다. 어렵게 만난 두 사람의 주례를 내가 맡았습니다. 


한참 만에 수술실 문이 열렸고 두 분 선생님이 나왔습니다. 급성맹장인줄 알고 복개를 했는데 맹장보다는 몸속에 안 좋은 부분이, 몇 개의 혹이 발견됐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혹이 난 부분을 도려내야 될 것 같아 보호자 의견을 물으려 나온 것이었습니다. 


불안을 어쩌지 못하는 남편은 살려만 달라고, 어떻게든 살려만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생사가 걸린 문제는 아니라 했지만 그의 불안은 가실 줄을 몰랐습니다. 


혹 난 부분을 도려내면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남편에게 설명을 하자, 이야기를 하던 의사가 깜짝 놀랍니다. 그 나이에 아기라니, 두 사람의 사정을 의사가 알 리 없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에게 가장 큰 축복으로 찾아올지도 몰랐던 한 가능성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더욱이 남편은 장손. 쉽지 않은 순간이었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마침 수술의 마취를 맡았던 선생님이 평소 아는 분이라 늦게까지 많은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모두 끝난 건 아니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뻔한 살림, 무엇으로 병원비를 대야 할 지 막막함이 남았습니다. 


더더욱 뒤죽박죽된 상황, 의료보험관계를 알아보다보니 환자의 이름이 ‘이옥분’이 아니고, 환자 이름도 모르고 일을 본다는 듯 창문 밖으로 내다보는 병원 직원의 시선이 딱하고, 결혼 신고는 물론 퇴거신고도 안 된 상태,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 지 막막하고, 신신당부에도 남편은 술을 먹고는 “어떻게든 너를 살리겠다”고 계속 울먹이고.


늦은 밤 돌아오는 길, 어깨를 내리누르는 무거운 무게. 사방 캄캄한 밤길.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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