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은 세고 어둑하기 한이 없어라

송대선의 시편묵상 2021. 5. 5. 22:53

 

 

시편 42

 

너희, 사람들아! 언제까지 나의 영광을 짓밟으려는가? 언제까지 헛일을 좇고 언제까지 거짓 찾아 헤매려는가?(공동번역)

 

嗚呼濁世子 冥頑盍有極(오호탁세자 명관함유극)

세상에 물들면 고집은 세고 어둑하기 한이 없어라

그러니 허망한 것에만 빠져드네(시편사색, 오경웅)

 

가인(歌人) 박보영 씨가 부른 노래가 떠오릅니다.

 

바람은 보이지 보이지 않지만

나무에 불며 녹색의 바람이 되고

꽃잎에 불면 꽃바람 된다

방금 나를 스쳐지나간 바람 무슨 바람되었을까?

 

일본의 어느 장애를 지닌 분이 지었다는 시에 붙인 노래입니다. 그는 자신을 스쳐 지나간 바람은 세상에 어떤 의미로 흘러가는지를 묻습니다. 저도 그리 묻고 싶습니다. 저는 시방 무엇에 물들어 있고 어떤 결로 흐르고 있습니까? 당신을 믿는다고 하는데 저는 당신으로 물든 인생입니까? 거룩한 당신의 말씀이 저를 물들이고 있는지요? 당신의 사랑과 평화가 저를 물들이고 있습니까? 혼탁한 세상에 물들면 고집은 점점 세지고, 저만 옳은 줄 알고 제 살 궁리만을 지상목적인 양 찾아 헤맵니다. 이 생을 살아가는 이상 이런저런 경험들을 아니 할 수 없지만 마치 자신의 경험이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척도인 양 휘두르는 어리석은 인생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경험이라야 짧은 세상살이에서 주워든 짜집기 잡설이라 조삼모사에 지나지 않아 조금만 살펴보아도 모래 위의 누각이요, 바람 앞의 등불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더해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지고 마음은 더욱 더 텅비어 허망해지지요. 느느니 영합이요 어줍잖은 자기합리화입니다

그 옛날 송옥(宋玉)이 부른 노래가 경계가 됩니다.

 

處濁世而顯榮兮 非余心之所樂(처탁세이현영혜 비여심지소낙)

어지러운 세상에서 영화를 누리는 것

진정 마음이 원하는 바가 아니어라

 

영화를 얻으려다 다들 자신마저 잃어버리는 세상이라 자신을 지키며 주님을 우러르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어 보이겠습니까? 그런 허망함에 물들지 않게 하시고 다시 한 번 더 제 마음을 살피어 이 하루도 당신으로 물들이려는 마음 다지게 해주십시오.

 

공명(公明)하신 주님, 제 안에 있는 어둡고 어둑한 것들, 제 이기심과 고집을 부끄러워하면서라도 어떻게든지 꺼내놓게만 해주십시오. 그렇게 사(), 은밀하고 감추인 욕망들을 내어놓으면 그 빈 자리를 당신이 차지하시는 거지요. 그러니 절로 당신께 가까이 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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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을 순서대로 읽되 한 시편 안에서 마음에 닿는 것을 붙잡으려 합니다. 차례와 관계없이 공동번역과 개역개정, 오경웅의『성영역의』(《시편사색》으로 번역출간)를 중심으로 더 입에 붙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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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편 2절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공동번역》) 優遊聖道中 涵泳徹朝夕〔우유성도중 함영철조석〕 거룩한 말씀 새김질하며 거닐며 종일 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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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편 4절 竭聲籲主(갈성유주) 온맘과 영혼으로 주님 당신을 부릅니다(《시편사색》, 우징숑) 그러니 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이렇게 제 속의 결심은 연약하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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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손 내미사 자비 드러내소서

시편 6편 4,5절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공동번역》) 祈主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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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징숑(오경웅)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시편사색》)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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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입맛

 


달래, 냉이, 언개잎, 두릅, 제피잎, 쑥 털털이
쓴 나물 입에도 대지 않으려는 우리 아이들
치킨, 피자, 떡볶이에 자꾸만 봄이 밀려난다

올해도 아이들의 몸 속에 봄을 심지 못해서 큰일이다
이 아이들이 커서 맞이하는 봄은 무슨 맛일까

내 어린 시절 뒷동산에서 뛰놀다
심심해서 꺽어 먹던 배추 꽃대 맛은 지금도 푸른데

아이들 고사리손으로 캐온 쑥을 모아서
쑥 털털이 해서 나눠 먹던 마을 아주머니들은 고향

어린 몸에다 봄을 심을 수 있었던 가난이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인 줄을 두고두고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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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댐 없이, 드러남 없이, 흔적 없이”

<꽃자리> 출간 책 서평 2021. 5. 5. 06:17

시간차가 있긴 하지만, 저자와 나는 공유한 역사의 시간대가 넓게 겹친다. 비록 같은 하늘 밑에 살았어도, 그는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현장에서 살았고, 나는 현장과는 철저히 격리된 상아탑 속에서 스스로 갇혀 살았다. 학문적으로도 남미 해방신학에 대한 긍정적 관심과 수용, 우리의 민중신학에 대한 성서학 쪽에서의 지원을 자처했으나, 나 자신의 공헌은 미흡했다. 


70년대 말, 어느 날 오후, 신촌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피폐해진 모습의 청년을 만났다. 그는 한때 모 대학 기독학생회에서 내가 인도하는 성경공부에 참여하였고, 그 후 현장에 뛰어들었다가, 모진 고문 끝에, 건강을 잃었다. 그때 거기에서 그를 만나고 나서, 나는 한 국립대학교와 두 사립대학교의 기독학생회에서, 정기적으로 때로는 부정기적으로 인도하던 성경공부를 나 스스로 중단해 버리고 말았다. 학생들의 요청을 진작 거절하지 못한 것, 위험한 책 성경을, 아무런 예비지식 제공 없이, 예방 조처도 없이, 민감한 비전공 수재들에게 그대로 읽힌 것이 후회막급이다. 실천을 강조하다가, 결과적으로 내가 참여하지 못한 고난의 현장에 내 아우, 내 자식을 대신 보낸 격이 되었으니, 내 죄가 크다. 


은퇴하고 나서도 한 참 후, 은퇴한 사람이 마치 현역처럼 바쁘면 어떻게 하느냐고 나를 나무라는 한 친구가 있었다. 이젠 인생 좀 조용히 살라고, 지난 삶을 뒤돌아보며, 자기 성찰을 하며, 참회하는 삶을 살라고, 내게 권한 책들이 있다. 2016-17년에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 조지 기싱, 시어도어 젤딘의 책들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다. 자서전 같기도 하고, 수상록 같기도 하고, 명상록 같기도 한,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한 해를 보냈다. 한편으로는, 내가 인생 끝자락만이라도 후회하지 않고 살 것을 다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과문의 탓일는지 몰라도, 이 세 명, 영국과 미국 지성인 말고, 우리나라에서도 실천과 이론을 겸비한 이들 중에 이런 종류의 명상록이나 수상록을 쓸 사람은 없는가,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다가 이번에 꽃자리출판사에서 나온 최창남의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를 만났다. 

 


삶의 지혜가 번득인다. 위로가 있고, 격려가 있다. 저자의 경륜이 있다. 삶에 대한 성찰이 있다. 시와 산문과 SNS 문자 같은 것이 섞여 나오는가 하면, 이야기의 문체도 유려하다. 막힘 없이 술술 읽힌다. 읽히면 그냥 읽어나갈 것이지, 남의 글 읽으며 분석하고 평가하고 장르를 규정짓는 못된 버릇 평생 못 버리고, 최창남의 “하는 말”을 연구한답시고 자빠져 있다. 나의 첫 마디, “이건 아포리즘이다.” 20여 년 전에 읽은 이성복의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는 책이 떠오른다. 내가 알기로는 그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아포리즘”이란 말을 책 제목과 함께 나열한 첫 책이다. 독서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시가 끝나면 산문이 나온다. 산문은 ‘하다체’와 ‘하게체’와 ‘합니다체’로 구분된다. 왜 그랬을까? 내가 나를 재촉한다. 그런 거 따지지 말고 계속 읽어, 어서 읽으라고! 독백 같은 것은 ‘하다체’로, 누군가 듣는 이가 설정되어 있을 때는 ‘하게체’와 ‘합니다체’다. 시도 마찬가지다.

이 책 1/3쯤 읽어왔을 때 나는 이 책의 성격을 규명해 버리고 말았다. “명상록이다”, “수상록이다”, “더러는 회고록이다”(109, 113-114, 133쪽 이하). “더러는 참회록이다”(111쪽). 내 멋대로 어쩌구, 저쩌구.... 이 책 절반을 넘기면서부터는 나는 이 책을 그만 “구약성서 <전도서>류의 지혜문학”으로 분류하고 말았다. 울릉도간첩단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울룽도1974>를 쓰기 위해 생존자 손두익 선생을 만나러 가는 저자(133쪽)를 보면서, 나는 구약 <전도서>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전도서>의 저자 ‘코헬렛’의 관찰이다. 그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억압과, 억압당하는 이의 억울한 처지를 목격한다. 힘없는 이들이 억울하게 억압을 당해 눈물을 흘려도, 그들을 위로하는 사람이 없다. 억누르는 사람들은 권력을 가지고 폭력을 행사하는데, 억눌리는 사람들에게는 억울함을 위로해주거나, 맺힌 한을 풀어주는 보복자가 없는 현실을 확인하고 한탄한다(전 4:1). 최창남은 한탄만 하고 있지 않고, 참여하여 위로하고, 실천하러 나선다. 그 결과물이 2012년에 출간된 <울릉도1974>다. 1978년 동일방직사건, 1979년 YH사건, 1980년대의 대표적인 노동 탄압인 '원풍모방사건, 1980년대 콘트롤데이터 노동조합 사건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산동네 목회 현장, 노동 현장의 위장취업에 이르기까지 지역 운동에 참여한다. 


내가 이 책을 <전도서>류의 지혜문학이라고 한, 두 번째 까닭은 그에게서 발견되는 해학 때문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296쪽 이하), “서툴게 살 수 있어 좋다”(318쪽 이하)를 위시하여, 2014년부터 삶의 터전을 서울 신도림에서 제주도의 어느 중산간으로 옮기고, 미친 듯이 쏘다니며 살던 삶을 그치고, “나댐 없이, 드러남 없이, 흔적 없이” “그냥저냥 대충대충 드문드문 서툴게 살기로”(372쪽), “그저 ‘알 수 없는 채’로 살기로 했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무엇인가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안다고 아는 것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안다고 다 알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저 순간 순간 내 삶에, 내가 머무는 공간에 함께 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성의를 다하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뿐”(373쪽)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코헬렛의 숨겨둔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한창 때는 초등학교 6학년 읽기 교과서에 게재된 동화 <개똥이 이야기>(2000/2007), <그것이 그것에게>(2005), 50일간의 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하늘길에 서다>(2009), <울릉도 1974>(2012), <숲에서 만나다>(2013) 등의 역작을 냈다. 그는 노동가요 "노동의 새벽"을 비롯한 민청련의 주제가 “모두들 여기 모였구나”의 작곡자이기도 하다. 소로우, 기싱, 젤딘에 필적할 사상가를 만난 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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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진/연세대학교와 히브리대학교(Ph. D.)에서 공부하고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와 대한성 서공회 총무, 세계성서공회연합회 이사를 엮임하였다. 어지간하면 열정 따위는 시드럭부드럭 스러질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명징한 인식과 탐구하는 열정은 아직도 줄어들지 않으신 듯하다. 2003년 <창조문예>에 황금찬, 이성교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성서신학자와 성경번역자로 살아오는 동안 누구보다도 언어에 예민하였기에, 그 여정이 시로 귀결된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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