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밤에게 낮은 낮에게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시 19:1-4a)

주님의 은혜와 평화를 빕니다. 한 주간 동안도 무탈하게 지내셨는지요? 우리 인생은 하루의 점철(點綴)이라지요? 점철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수없이 많은 점을 찍어 형태를 드러내는 점묘법 화가들이 생각납니다. 그들의 점 찍기는 일종의 수행이 아닐까요? 지루함의 악마와 싸우며 끝없이 반복되는 작업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사는 모습 속에 우리 인생 전체 모습이 반영된다고 합니다. 부분은 전체를 닮고 전체는 부분을 내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전에 산에 자주 다닐 때가 생각납니다. 숲 그늘 아래로 걸어갈 때도 있지만 그늘조차 없는 오르막길을 허위단심으로 올라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지간히 지쳐있을 때면 그 길을 걷는 것이 여간 곤혹스럽지 않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것이 고역입니다. 그때마다 ‘이 길은 우리 인생을 닮았구나’ 하고 혼잣소리를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주 힘겹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인생이 도전 아니던 순간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마음으로 사람들을 보면 괜스레 고맙고 정겹고 그렇습니다. 매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지금, 그저 상상 속에서라도 여러분들의 길에 동행이 되고 싶습니다.

매일 새벽,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 저는 산책에 나섭니다. 걷는 순간은 오롯이 혼자입니다. 내 영혼의 풍경을 살피기도 하고, 산지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생각들을 붙잡아 가지런히 만들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는 교우들을 생각하며 기도를 올리기도 합니다. 새벽 숲 사이를 걸으면 청량한 기운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풀벌레와 매미 울음소리가 배경음이라면 그 소리를 단속적으로 뒤흔드는 소리가 새벽 공기를 흔듭니다. 까마귀의 ‘까악 깍’ 하는 탁성, 다소 신경질적으로 ‘깍깍깍깍’ 우짖는 까치 소리, 그리고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울리는 멧비둘기의 구슬픈 소리…. 그 소리의 향연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시편 19편의 말씀이 저절로 실감납니다. 창조의 신비를 보고 누릴 수 있는 감각이 열린 사람은 행복합니다. 비록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진다는 그 말씀을 얼핏 감지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늘 다니는 산책로에서 만나는 풍경 또한 정겹습니다. 길 위에서 하루를 시작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철역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김밥이나 떡 같은 먹을거리를 진설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주머니가 계십니다. 그분이 그 장소에 이르러 맨 먼저 하는 일은 간밤에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주워 주변을 말끔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제게는 묵묵히 수행하는 그 행위 자체가 경건함으로 보입니다. 트럭에 싣고 온 각종 건축자재들을 가게로 옮기는 건재상 아저씨도 보입니다. 늘 입고 계신 낡은 셔츠는 그분의 건강한 노동의 증거처럼 보입니다. 프랜차이즈 빵집 틈바구니에서 구멍가게와 다를 바 없는 빵집을 운영하시는 아저씨는 앞치마를 두르고 상을 닦는 일로 새벽을 깨웁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로 옆에 트럭을 세워놓고 생선이나 채소 등의 찬거리를 파는 모자도 있습니다. 새벽부터 생선 비린내를 풍기니 상쾌하진 않지만 그 트럭 주변에서 일고 있는 활기가 싫지는 않습니다. 맞은편에는 과일 트럭이 있는데,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슬쩍슬쩍 건너편을 바라보며 아저씨는 애꿎은 과일의 위치를 바꾸며 시간을 견딥니다. 그 모습이 늘 안쓰러워 보입니다. 아마도 손님이 모이는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산균 음료를 파는 아주머니는 공원을 드나드는 분들과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눕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의 풍경입니다.

공원 안에서도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 것은 기본이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변형된 춤으로 몸을 흔드는 분들도 계십니다. 목책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걷는 분, 커다란 나무를 등이나 손으로 두드리는 분, ‘헙헙’ 기합 소리를 내며 걷는 분, 자기만의 건강법인지 독특한 자세를 반복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분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그만큼 진지합니다. 가끔 젊은이들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커다란 헤드셋을 낀 채 몸에 딱 달라붙는 운동복을 입고 달립니다. 이른 새벽임에도 이미 벤치를 차지하고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분들도 보입니다. 

저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걷기 때문에 무리 지어 걷는 분들이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얼핏 들려오는 소리가 귀를 스칠 때가 있습니다.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간간이 몸 아픈 이야기들을 나누십니다. 소소한 그런 이야기들이 이제는 하찮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마음 따라 살지 말고 몸 따라 살라’는 말이 한때는 나약한 정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말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 속에 지혜가 있음을 압니다. 고생물학자이며 신부였던 테이야르 드 샤르댕은 어느 글에서 인간이 처한 가장 괴로운 정신적 딜레마는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그 말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젊어서는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보며 높이 그리고 빨리 나는 연습을 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에 감정을 이입한 채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강 하구에 몰려들어 밀려오는 물고기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끼룩거리며 다툼을 벌이는 갈매기 떼를 비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갈매기 떼를 비웃지 못합니다. 우리 삶이 사소한 것들에 의해 얼마나 크게 흔들리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동료 의식을 느낍니다. 나와 그들이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서로 안에 있다는 말이 이런 뜻일까요?

공적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모든 시민의 의무이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내는 일에 몰두합니다. 그린랜드의 빙하가 하루에 85억 톤이 녹아내렸고 그것은 플로리다 주 전체를 5cm 높이로 채울 수 있는 규모라거나, 터키의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는 소식에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버틀란트 러셀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라는 책에서 “나는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 온화한 것을 좋아하려 했다. 나는 이 세상이 한층 세속적으로 변해가는 시대에 살면서도 통찰의 순간들로부터 지혜를 이끌어내려 했다”고 말합니다. 80세 생일을 맞으면서 그는 자기 삶의 주요 가치를 세 가지로 술회하기도 했습니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의 탐구,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 그것입니다. 참 대단한 분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비루하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저마다 자기 몫의 삶을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일상을 충실하고 아름답게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거룩한 삶이란 남들이 하지 않는 종교적 실천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조율된 삶이야말로 거룩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식 솜씨는 상차림에서 드러나지만, 그의 인격은 설겆이에서 드러난다”. 어디선가 본 문장인데 보는 순간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을 벗어놓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의 풍경을 알 수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원에서 가끔 저를 알아보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일부러 아는 척을 하며 인사를 건네는 분들도 계시지만, 가만히 목례만 건네며 지나가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낫다고 평가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품성이 다를 뿐입니다. 자기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인지 남이 애써 준비해 놓은 것을 누리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것을 남겨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먹고 자고 입고 놀고 일하고 쉬는 일상의 일들을 떠나 어디서 하나님 경외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레 19:2b)는 말씀을 늘 떠올리고 있습니다. 어떤 삶이 거룩한 삶인가요? 부모를 공경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우상을 섬기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기초입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밭에서 추수할 때 밭 구석구석까지 거두어들이지 않는 것,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는 것, 이웃을 속이지 않는 것, 이웃을 억누르지 않는 것, 품꾼의 품값을 미루지 않는 것, 듣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하지 않는 것, 눈이 먼 사람 앞에 걸림돌을 놓지 않는 것,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 헐뜯는 말을 하지 않는 것, 이웃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이익을 보려 하지 않는 것, 앙심을 품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을 통해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웃과 평화롭게 살 줄 모르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기만이기 쉽습니다.

힘겨운 때일수록 자기 삶을 정성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해치우기 위해 하지는 마십시오. 성과에 집착하여 너무 자기를 닦달하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을 자비롭게 대할 수 있어야 다른 이들을 느긋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낙심과 절망과 공포의 얼굴을 직시하고, 그 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우리 일상의 삶이 이루어지는 그 현장이야말로 우리의 도량임을 잊지 마십시오. 벌써 입추 절기가 다가옵니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가을 농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평화와 생명의 씨를 곳곳에 뿌리는 기쁨을 누리십시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가 자라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여름이 다 지나기 전에 교회 문을 다시 열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 시간이 다소 늦어진다 해도 초조해 하거나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사랑과 경외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야말로 하나님의 현존의 장소입니다. 평화의 주님께서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1년 8월 5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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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에게 말을 걸다



오후에 작실에 올라갔다.
설정순 성도님네가 잎담배를 심는 날이었다.
해질녘 돌아오는 길에 일을 마친 이속장님네 소를 데리고 왔다.
낯선 이가 줄을 잡았는데도 터벅터벅 소는 여전히 제 걸음이다.
종일 된 일을 했음에도 싫은 표정이 없다.
그렇게 한 평생 일을 하고서도 죽은 다음 몸뚱이마저 고기로 남기는 착한 동물.


‘살아생전 머리에 달린 뿔은 언제, 어디에 쓰는 걸까?’


커다란 소의 눈이 유난히 착하고 맑게 보인다.
알아들을 리 없지만 걸음을 옮기며 계속해서 소에게 말을 건넨다.


‘소야, 난 네가 좋단다.’


소는 여전히 눈을 껌벅거릴 뿐이었지만.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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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어떻게든 된담



“나무하러 가는 사람 왜 불러요?”


저만치 산으로 나무하러 오르다 잰 걸음으로 뛰다시피 내려오신 신집사님, 말은 그렇게 하지만 환한 얼굴, 마음이 그런 게 아니다. 체구에 맞게 만든 작은 지게를 마당에 세워 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2월이 다가오자 집사님은 고민이 된다. 2월 1일부터는 용암 쪽으로 일을 나가기로 했는데 갈까 말까를 망설이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재배하는 곳에 ‘취직’을 한 것이다. 한 달에 세 번 쉬고 점심은 각자 지참. 그리고 월급은 18만원이다. 오가는 차비 빼고 나면 뭐 그리 크게 남는 게 없지만 그래도 고정된 수입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것만 생각하면 취직을 하는 게 집에서 품 파는 것보다야 열 번 편한데, 문제는 땔감이다. 연탄도 기름보일러도 없기 때문에 천생 나무를 해서 때야 한다.


‘개미 역사하듯 부지런해야’ 그나마 끼니를 잇고 방안 온기를 지키는데 왜 그리 나무는 잘 타는지, 한 짐 만들어 와야 두 끼 때고 나면 그만이다. 여자가 하는 나무란 잔가지뿐 굵은 나무는 엄두를 못 낸다.


형편이 그런데 출근을 하면 나무할 시간이 없게 되고, 그러면 끼니도 그렇고 난방도 그렇고, 그렇다고 집에 남아 있자니 생활이 걱정이다.


오래 해왔기에 잘 아는 일이지만 품 파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땀에 젖는 하루 수고도 수고지만 쉬는 날도 많다.


“까짓것 품 팔아야 손에 묻은 밥풀이에요.”


그저 끼니를 이을 수 있을 뿐, 집사님은 품을 손에 묻은 밥풀이라 했다.

안쓰러운 표정 한줌 보탤 뿐 난 더 할 말이 없다. 이야기를 나누고는 더듬더듬 기도를 한다. 큰 목소리, 자신 있는 기도는 언제부터인지 멀어진 일이다. 모질게 살아가는 집사님이지만 집사님은 눈물도 많다. 그래도 주먹으로 눈물을 닦곤 이내 웃음이다.


“어떡하죠?” 


어려운 이야길 들었을 뿐 아무 대답도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신을 신으며 묻자 “어떻게든 되겠죠. 너무 걱정 마세요.” 하신다.

2월이 왔고 집사님은 출근을 했다. 그렇다면 나무는? 집사님 말마따나 모든 게 어떻게든 돼야 할 텐데. 어떻게 어떻게든 된담.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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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예배

사진/김승범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를 두고 분명 거룩한 땅이라 이름 부를 것입니다.’


끝내 목이 멨다. 창립예배를 드리며 인사말을 하는데 가슴이 떨렸고 빈말은 삼가고 싶었다. 먼 길을 달려와 마당 한가운데 둘러선 사람들. 무엇보다도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실명한 창식이 와준 게 고마웠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그려오던 목회의 첫발. 오늘은 1987년 3월25일 수요일, 눈바람 불고 무지 추움.


이정송 감리사님과 유상국 목사님의 뒤를 이어 ‘기독교대한감리회단강교회’라 쓰인 현판을 작은 사랑방 모퉁이에 힘차게 못질을 한다.


‘이제 시작이다.’ 안쓰러운 표정을 남기고 모두들 돌아갔지만 외롭진 않았다. 삶의 터전은 다르지만 우린 모두 하나님 품속에서 사는 거니까. 난 또 이곳에서 새로운 이웃을 만나야 하니까.


한 흐름의 앞쪽에 선다는 건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잘 견디며 깨어 있어야지. 흔들릴수록 방향감각 잃지 않으며.

-목회수첩은 가능한 계속 쓰도록 하겠다. 어쩜 난 쉽게 실어증(失語症)을 앓게 되겠지만 이곳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계속 기록해 보련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은 아니다. 짧은 글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기록함이 내 함께 살아갈 사람들을 향한 내 가장 큰 애정임엔 분명하니까.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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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목양지로 가는 길



3月25日 이른 아침, 원주로 향하는 영동 고속도로엔 춘삼월에 어울리잖게 세찬 눈발이 휘날렸다. 이따금씩 비취는 햇살에 현란함을 더한 춘설은 창가보다는 창가에 기댄 가슴으로 부딪쳐 왔다.


첫 목양지로 향하는 빈 가슴이 오히려 든든했다. 내 떠남을 춘설로 기억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고마웠다. 그 길밖엔 없었다.


강원도행이 좌절됐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친구와 몇몇 선배의 얼굴이었다. 지금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하여 나는 무조건 떠나야 했다. 


나를 위해 다시 한 번 마련된 그 자리로 떠나는데 자존심 같은 건 생각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한 공동체가 잃어서는 안 되는, 내게 주어진 작은 십자가였다.


황동규의 시구 하나가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살고 싶다, 누이여, 하나의 피해자로라도.’
친구야, 그리고 선배님들, 더 이상은 마십시오. 모두 저를 위한 격려임을 알지만 더 이상은 단강에 대해 염려를 말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변경할 수 없는 사실, 내가 단강에 왔다는 엄연한 사실을 이제부터 저는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약속하며 마련해준 따뜻한 배려, 그것이 제게 힘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저는 그것 아닌 것들과 싸워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마주해야 할 것은 불편함과 부족함일 것입니다. 넌지시 지켜봐 주십시오. 누구보다도 당신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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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사님 아니세요?


주일저녁예배를 원주 시내에 나가 드리게 되었다. 성도교회 선교부 헌신예배에 설교를 부탁 받았다. 저녁 무렵, 차를 몰고 귀래 쪽으로 나가는데 용암을 지날 즈음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는 아가씨였다. 묘한 불신이 번져 있는 세상, 믿고 차를 세우는 아가씨가 뜻밖이었다. 


아가씨는 뒤편 의자에 앉았다. 아무 말도 안 하며 나가는 것도 쑥스럽고, 그렇다고 뭐라 얘기하자니 그것도 그렇고, 무슨 얘길 어떻게 할까 하고 있는데 뒤의 아가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 한 목사님 아니세요?”


설마 나를 아는 사람? 룸미러로 뒤의 아가씨를 다시 한 번 쳐다보지만 아는 사람이 아니다.  “저는 모르겠는데, 어떻게 저를 알죠?” 아가씨가 웃으며 대답을 했다. 


“제가 목사님을 처음 본 건 중학교 때 버스 안에서였어요. 귀래중학교를 다녔는데 버스 안에서 어떤 아저씨가 책을 읽는 것을 여러 번 보았어요. 뭐하는 분이기에 버스에서 책을 읽나 궁금해서 친구들께 물었더니 단강교회 목사님이라는 것이었어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학생은 용암에 사는 학생이었고,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 원주 시내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어떤 할머니가 고추 자루를 여러 개 가지고 버스에 탄 적이 있었어요. 할머니가 짐을 싣느라 혼나시는 걸 보면서 도와드려야지 마음은 그러면서도 나서질 못했어요. 왠지 창피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뒷자리에서 누군가가 앞으로 나와 할머니 고추 자루를 받아 실었죠. 그 사람이 바로 목사님이었어요. 그때 굉장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기억에도 없는 일을 그 학생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도 좋은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뜨끔했다. 저 학생은 또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때때로의 내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그 학생의 기억 속에 혹 부끄러움으로 남아있는 모습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웃으며 나누면서도 생각은 그랬다. 


언제 어느 때라도 부끄럽지 않게 살기! 남의 시선 의식함 없이 할 도리를 다하기! 난 새삼 마음속으로 몇 가지를 다짐해야 했다. 

  <얘기마을>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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