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을 못하고 살아가는 ‘양아치과’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2021. 10. 6. 11:35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7)

 

이름값을 못하고 살아가는 ‘양아치과’

 

 

‘양아치’라는 말은 들판을 뜻하는 한자의 ‘야(野)’와 사람을 뜻하는 ‘치’가 합쳐진 말이라고 합니다. 중간에 ‘아’가 들어가는 것은 두 단어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어투입니다. ‘야’가 ‘양’으로 변하는 것은 ‘송아지’, ‘망아지’의 생성과정과 유사합니다. 아무튼 ‘양아치’는 들판을 마구 돌아다니며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살아가는 이를 일컫는 말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어찌 보면 이 양아치라는 말은 농경사회가 확립되어가면서 유목생활을 했던 시대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농경생활이 주도권을 잡아가면서 유목민적 생활양식은 점차 비하의 대상이 되어갔던 셈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한 자리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시대에, ‘양아치’는 이른바 비주류가 되어갔고 사회적 사각지대에 속하게 되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치’라는 말이 붙는 것이 한때는 권세가를 뜻하는 ‘다루하치, 누루하치, 마루하치’등이었으나 이 ‘치’를 쓰는 북방계 유목부족의 위세가 차차 꺾이면서 격하되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이 치, 저 치’ 등으로 상대를 낮추어 부르는 말로 바뀌어 간 것이니 이 ‘양아치’라는 말도 애초의 괜찮았던 위상에서 시대적 변화에 따른 수난을 겪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이 듭니다.

 

 

 

 

우리가 근대사회로 진입하면서 이 ‘양아치’라는 말은 넝마주이부터 시작해 건달, 깡패, 하류인생, 쓰레기 같은 존재 등등으로 포괄적인 분화를 합니다. 격렬한 사회적 변동의 현실 속에서 낙오하거나 주먹으로 상대를 갈취하는 식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은 이 ‘양아치’과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일종의 치열한 생존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세계였습니다.

 

이들 양아치과에 속한 이들에게 무슨 양심이나 의리, 또는 도덕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물론 양아치들 사이에 서로 의리나 동지적 연대가 있었을지는 모르나, 걸핏하면 별 것도 아닌 일에 함부로 주먹을 쓰고 비열한 욕이 입에 배어 있으며 추악한 일을 저지르기를 서슴지 않는 그런 종류의 인간형을 ‘양아치’과는 담아내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란 나름의 진화과정이 있게 마련이어서, 폭력배 수준의 양아치에게만 이런 말들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실력은 없는데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던 지, 위엄과 명예를 지켜야 할 때 치사하게 군다든지 당당해야 할 때 비굴하게 군다거나 대의를 위해 자신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하는 지점에서 부하나 제3자를 걸고 넘어져서 그들을 희생시킨다든가 하는 것은 모두 양아치적 속성으로 지탄받게 됩니다.

 

말하자면, 양아치는 ‘3류’로 구는 것입니다. 본래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자유와 야망과 광활한 꿈을 안고 지냈던 존재들에게 붙였던 이름이, 그만 졸렬하게 구는 자들에게 붙이는 명칭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이름값을 못하고 살아가면 누구나 그렇게 되기 십상입니다. 오늘날 정치권, 그리고 정부는 어떤 과에 속할까요?

 

치사하기 짝이 없는 책임전가에 급급하고 몸싸움과 주먹 쓰는 일에는 능하며 정작 필요한 실력은 없는 이들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누구 답을 알고 있는 이 없는지요?

 

김민웅/전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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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밥솥



드라이버, 펜치 등 연장을 챙겨가지고 이른 아침 작실로 올랐다. 단강리에서 제일 허름하지 싶을 아랫작실 언덕배기 박종구 씨 집엔 아무도 없었다. 벌써 일터로. 학교로 간 것이었다.


30촉 백열전등, 컴컴한 방에 불을 켰다. 두꺼운 이불이 방 아래쪽으로 그냥이고, 윗목엔 철화로가 있다.


불기가 없는 화로 위엔 커다란 까만색 냄비가 있는데, 그 위론 라면 부스러기가 둥둥 떠 있었다. 익지도 않은 채 불은 라면이었다. 올라올 때 만난 학교 가던 봉철이, 아마 그의 아침이었나 보다.


두꺼비집을 찾아 전원을 내리고 천정을 가로지르는 두개의 전선에서 선을 따 테이프로 감싸고 벽 쪽으로 끌어내려 아래쪽에 콘센트를 달았다. 


다시 전원을 올렸다. 콘센트 불이 오는지 확인을 해봐야지 싶어 방안을 살폈다. 부엌, 방, 모두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30촉 전등 외엔 전기를 사용하는 기구가 하나도 없었다. 박 종구 씨를 찾아 만나 저녁에 다시 오겠다 말하곤 내려왔다.

원주에 나가 주보인쇄를 해 가지고 온 저녁에는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댑터를 챙겨 우비를 입고 다시 작실로 올랐다. 일을 마치고 온 광철 씨, 중학교 3학년 민숙이. 6학년 봉철이가 있었다. 전기밥솥이 와 있었다. 지난 번 사오고도 이제껏 콘센트가 없어 사용치 못하고 친척 네 보관돼 있던 전기밥솥. 매뉴얼을 꺼내놓고 차례차례 사용법을 민숙이에게 가르쳐 줬다.


“민숙아, 가서 쌀 씻어올래. 한번 실제로 해보자” 
민숙이가 나가 쌀을 씻어왔다. 
“자, 한번 해봐. 그렇지 밥통을 꼭 닫고 취사 단추를 눌러.”
취사 단추 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한참 있다 김이 날거야. 그리고는 취사가 보온으로 넘어가지. 보온으로 넘어간 다음 15분 정도 뜸을 들이면 밥이 되는 거야.”
이젠 됐지 싶기도 했고, 내일 주일 준비도 해야지 싶어 일어나려다 다시 앉았다. 
‘이왕이면 밥 다 되는 걸 보고 가자.’


둘러앉아 밥 되기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광철 씨가 지금도 자랑스레 국민교육헌장을 외고 있다는 것도, 민숙이의 꿈이 디자이너라는 것도, 자신은 산업체학교라도 가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고 싶은데 집에서는 아예 고등학교에 안 보내려 하여 민숙이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도, 썰렁한 윗방, 민숙이 잠자리엔 여름 내내 비닐 돗자리 하나 깔렸다는 것도, 민숙이가 저녁은 아예 안 먹고 잔다는 것도, 민숙이의 아침 기상시간이 다섯 시 반이라는 것도, 심심할 때면 성경을 읽는다는 것도, 동생 봉철이에게 알파벳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도, 봉철이가 책을 잘 읽고 받아쓰기도 잘 한다는 것도 난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어느새 밥이 끓고 뜸이 들어 뚜껑을 여니 맛있는 밥이 지어졌다. 재를 날리며 매캐한 연기에 기침을 해가며 짓던 밥이었는데. 주걱으로 한 주걱 떠 먹어보니 맛이 기가 막혔다. 한 주걱씩 나눠 맛을 보았다.


“전기밥솥에 민숙이가 처음 지은 밥이 아주 맛있게 됐다. 오늘처럼만 하면 민숙이는 일류요리사 될 거야. 자 그럼 난 갈게. 내일 교회에서 보자.”


더욱 굵게 내리는 어둠속 찬비. 그러나 가슴속엔 왠지 모를 따뜻함. 좀 더 기다려 박종구 씨 오거들랑 함께 저녁을 같이 먹고 오면 더 좋지 않겠냐는 선한 꾸중 뒤로 그런 따뜻함으로 전해져 왔다.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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