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88 따뜻한 기억 성탄절 이른 아침 승학이 할아버지가 찾아오셨습니다. “오늘이 성탄절 맞제?” 그러면서 무언가를 손에 쥐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만 원짜리 지폐였습니다. “얘들 과자락두 사줘.” 할아버지는 이내 걸음을 돌렸습니다. 고마운 손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마다 그랬습니다. 당신은 교회에 나오지 않지만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그렇게 정성어린 손길을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넉넉지 못한 용돈을 아꼈다 전하시는 지폐도 지폐였지만, 해마다 어김없는 따뜻한 기억이 더욱더욱 고마웠습니다. - 1991년 2021. 12. 25. 별빛도 총총한 은총의 첫 새벽!, 새벽송 꿈결인 듯싶게 노래 소리가 들렸다. 자다 말고 한참을 생각했다. 꿈인가? 생시라면 누굴까? 분명 새벽 송은 안 돌기로 했는데 누구란 말인가. 한 곡이 끝나자 또 다음 곡,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문을 열었을 때 문 앞엔 빙 둘러선 젊은이들, 잠이 확 달아났다.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머쓱한 표정을 짓는 내게 커다랗게 인사를 건넸다. 만종교회 학생들이었다. 새벽송을 돌만한 사람이 없어 올해부턴 못 돌겠다는 아쉬운 소리를 귀담아 들었던 친구 최 목사가, 먼 새벽길을 달려왔던 것이다. 그제야 보니 친구는 방앗간 앞에 차를 세워두고 있었다. 그렇게 듣는 성탄의 새벽노래는 그야말로 은총이었다. 첫 새벽 알렸던 천사들의 노래. 별빛도 총총한 은총의 첫 새벽! - 1991년 2021. 12. 24. 성탄의 참된 의미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39) 그리스도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리스도가 몸소 내 안에서 육신이 되지 않고,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위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한들 그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탄절은 기쁜 날이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그리스도라 부른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아들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몸을 통해 당신이 태어나시기를 바란다. 우리의 영혼은 생래적으로 그런 놀라운 ‘생식력’을 품고 있다고 한다. 엑카르트는 단언한다. “피조물 중에서 영혼만이.. 2021. 12. 24. 단강을 찾은 산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뒤로 돌아 게시판에 머리를 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욀 때 모두들 열심히, 그러나 조심스럽게 술래 쪽으로 나아갔다. 느리기도 하고 갑자기 빨라지기도 하는 술래의 술수에 그만 중심을 잃어버리고 잡혀 나가기도 한다. 그러기를 십 수 번, 술래 앞까지 무사히 나간 이가 술래가 ‘무궁화- ’를 하고 있는 동안 그동안 잡아들인 사람들의 손을 내리쳐 끊으면 모두가 “와-!”하며 집으로 도망을 친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꽃을 따러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따겠니, 따겠니?” 두 패로 나누어 기다랗다 손을 잡곤 파도 밀려갔다 밀려오듯, 춤을 추둣 어울린다. 따지듯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러나 발그레한 모두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조용하고 작은.. 2021. 12. 22. 팔팔 동지 팥죽 새벽잠 걷어내시고 일어나셔서 몇 날 며칠 마련하셨을 붉은팥, 맵쌀, 찹쌀로 팔팔 끓이신 동지 팥죽 뚜껑 열리지 않도록 팔팔 올림픽 보자기에 꽁꽁 싸매고서 동해 바다가 품은 동짓날 떠오르는 태양처럼 품팔이로 가정 일으키신 바다 같은 품에 안으시고서 새벽 댓바람에 붉게 익은 얼굴 가득 자식 손주들 건강과 평화를 기도하시며 지나온 2021년 한 해도 감사히 다가올 2022년 한 해도 감사히 선물처럼 주시는 오늘을 해처럼 품으시고서 엄마는 새벽바람처럼 징검다리를 건너오셨습니다 2021. 12. 22. 촛불 같은 우리가 아랫작실 광철씨 네서 속회예배를 드리기로 한 날, 비가 내렸습니다. 봄비 치곤 차기도 하고 빗발도 굵은 비가 스산한 바람과 함께 진종일을 내렸습니다. 어둠이 내리도록 비는 그치질 않았습니다. 작실마을 교우들이 김천복 할머니네로 모였습니다. 마을 첫째집인 할머니 네서 모여 광철씨 네로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던 중 다들 모여 길을 나섰는데 보니 아무고 손전등을 가져온 이가 없었습니다. 비 내리는 밤이라 한치 앞이 어둠이고 저만치 올려다 보이는 광철 씨네 희미한 불빛까진 온통 어둠에 가렸는데 불이 없었던 것입니다. 모두들 난감해 하고 있을 때 얼른 김천복 할머니가 집으로 들어가더니 양초에 불을 붙여 왔습니다. 촛불을 켜들고 길을 나섭니다. 한걸음씩 촛불로 어둠을 지우며 좁다란 밭둑을 걸어갑.. 2021. 12. 21. 벽돌 네 나 벽돌 일곱 나를 머리에 이고서 계단을 오르는 아지매가 떨군 눈길을 따라서 벽돌 스무 나도 넘게 등짐을 지고서 계단을 오르는 아재의 굽은 등허리를 따라서 빈 몸으로 계단을 오르는 김에 속으로 벽돌 네 나쯤이야 하면서 갓난아기를 안듯이 품에 안고서 오르다가 열 계단쯤 올라서면서 그만 어디든 내려놓고 싶어졌다 애초에 세 나만 챙길 것을 후회하면서 묵직해진 다리로부터 차오르는 뼈아픔이 벽돌로 쌓아올려야 뚫리는 하루치의 하늘과 벽돌이 된 몸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먼지 같은 숨이 벽돌 같은 세상을 맨몸으로 부딪히고서 맞는 밤하늘은 허전해 하나 하나의 벽돌 모두가 나로 쌓였다가 눈물로 허물어지는 외로운 겨울밤을 보내며 2021. 12. 19. 성탄장식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지난 추수감사절 때 작은 종이에 크레용으로 써서 제단에 붙였던 글을 성탄 트리를 장식한 지난주까지 계속 붙여놨었다. 아이들과 같이 성탄장식을 끝내곤 트리에 불을 넣은 후 뒤로 물러나 바라보는데 그 글귀가 새롭게 들어왔다. 추수감사절 때나 맞았지 싶었던 그 글귀가 반짝이는 장식과 어울려 성탄의 의미로도 귀하게 여겨졌다. 후배 덕균의 수고로 여기 저기 별이 뜨고, 동방박사가 지나고,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란 커다랗고 멋있는 글자가 제단 가득하지만, 언젠가 성탄엔 게으름을 통해 만난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를 성탄장식으로 써 봐야지, 게으름을 변명하며 마음에 담아둔다. - 1989년 2021. 12. 19. 작고 하찮을수록 소중한 이야기들 장에 다녀오는 길, 단강으로 들어오는 버스 안에서 듣게 된 이웃마을 한 아주머니의 얘기를 이필로 속장님이 했습니다. 기름 한 종지 더 얻자고 개치(부론)까지 갔다가 결국은 한 종지만 얻게 됐다는 얘기에 우린 한참 웃었습니다. 다시 이어진 얘기에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졌습니다. 아주머니 옆 자리에서 아주머니 얘길 듣던 한 중년 남자가 그 얘길 듣더니만 “아 그거 참 재미난 얘기네요. 아주머니, 그 얘기 차근차근 다시 한 번 해 보세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얘길 글로 쓰면 좋은 글감 될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웃음이 다시 터졌던 건 그 중년 남자 얘길 하던 속장님이 “우리 목사님 같은 분이 또 있드라구요, 글쎄.” 하고 얘길 마쳤기 때문이었습니다. 헛간에 걸어놓은 못쓰게 된 살림살이들처럼 아무짝에도 .. 2021. 12. 19. 이전 1 ··· 27 28 29 30 31 32 33 ··· 29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