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생각(39)

 

사소해도 요긴한

 

세탁을 해 온 가운을 입으려고 비닐 덮개를 벗기는데, 쉽게 벗겨지지가 않았다. 살펴보니 아랫부분을 옷핀으로 꿰매 놓은 것이었다. 소소한 부분까지 챙기는 꼼꼼함이 느껴졌다. 빼낸 옷핀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두기로 했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였다.


지난번 열하루 동안 DMZ를 걸을 때, 어떤 물건을 챙겨야 할지를 정두수 장로님께 물은 적이 있다. 40여 일 산티아고를 다녀온 경험이 있으니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 같았다. 10가지 목록을 적어달라는 부탁을 장로님은 아예 필요한 물건을 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때 받은 물건 중의 하나가 옷핀이었다. 처음에는 옷핀이 어디에 필요할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옷핀은 먼 길을 걷는 사람에게 요긴했다.

 

 

 

나는 두 가지 용도로 썼다. 하나는 물집을 터뜨릴 때 썼다. 폭우 속 진부령을 오르고 나자 당장 물집이 잡혔다. 물집이 생겼을 때 터뜨려야 하는지, 그냥 가라앉게 해야 하는지, 터뜨린다면 어떻게 터뜨려야 하는지, 언젠가 글을 읽은 기억은 있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 자신이 없었다. 마침 옷핀이 떠올랐고, 옷핀으로 찔러 물집을 터뜨렸다.

 

또 다른 용도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가방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것으로 챙긴 것 중에는 양말도 있었다. 두 켤레만 챙겨 번갈아 신기로 했는데, 두툼한 양말은 아침이 되어도 마르지가 않았다. 그 때 떠오른 것이 옷핀이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며 가방 뒤에 양말을 걸었다. 양말을 건 채 길을 걷다보면 햇볕과 바람이 양말을 잘 말렸다. 가방에 양말을 거는 데는 옷핀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그렇다, 세상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실은 요긴한 것이 있다. 작은 옷핀처럼.
요긴해 보이지만 사소한 존재보다는, 사소해 보이지만 요긴한 존재되기!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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