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15)
비둘기와 클래식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목양실은 정릉교회 별관 2층 맨 끝에 있다. 책상에 앉으면 오른쪽 유리창을 통해 한창 건축 중인 안식관 공사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는 아파트 숲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책상 맞은편 윗부분에도 작은 창이 있다. 가로로 길게 퍼진 창이 동쪽의 빛을 받아들인다. 설계라는 작업이 재미있게 여겨지는 것은 설계에 따라 전혀 다른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빛조차도 서로 다른 빛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작은 창 바깥쪽으로는 벽의 두께에 해당하는 공간이 있는 모양이다. 언제부턴가 비둘기가 날아와 그곳에 앉는다. 비가 오던 날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은데, 조금씩 날아와 앉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둥지를 틀 궁리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며칠 전이었다. 마침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고 있는데 비둘기가 날아왔다. 벽을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그림자가 어렸고,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두 마리였다. 비둘기는 창문을 통해 나를 빤히 바라보기도 했다. 저 낯선 존재가 누구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비둘기를 보고는 일부러 볼륨을 높였다. 너희들도 들어보라는 뜻이었다. 음악 소리를 들었을까, 비둘기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 같았다. 마침 듣고 있던 음악은 바이올린 연주였는데, 하늘을 날던 비둘기가 잠시 창가에 앉아 듣는 바이올린 연주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하던 일이 있으니 마냥 비둘기를 바라볼 수는 없는 일, 다시 일을 하다 창을 바라보니 언제 떠났는지 비둘기가 보이지를 않았다. 아마도 비둘기는 클래식을, 바이올린을 좋아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다음에 다시 찾으면 비둘기의 음색에 해당하는 노래를 들려줘야겠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어떨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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