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1)
지뢰 대신 사람이
의미 있는 시간에는 자연스레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가 보다.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많은 이들이 기억했다. 그것은 나라와 국경 종교를 초월하는 일이었다.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동선(共同善)임을 확인하게 된다.
여러 가지 뜻 깊은 행사들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DMZ 평화인간띠잇기였다. 한반도의 서쪽 강화에서 동쪽 고성에 이르는 500km의 DMZ 마을길에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서서 평화를 기원하는 행사였다.
매우 뜻 깊은 행사라 여겼지만 참여를 못했다. 교우들께도 참여를 권하지 못했다. 교우 가정에 결혼식이 있었다. 참여하진 못했지만 마음으로 위안을 삼은 것이 있었다. 2년 전 여름, 고성에서 임진각까지의 DMZ 길을 혼자 걸은 적이 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 속과 화살처럼 쏟아져 내리는 뙤약볕 아래를 열하루 동안 한 마리 벌레처럼 걸어갔다. 분단의 땅에 살면서 아픔과 상처로 갈라진 내 나라를 위해 몸으로 기도하고 싶었다.
DMZ를 걸으며 씨앗처럼 마음에 두었던 말이 있었다. ‘호다’라는 말이었다. 예수님의 속옷은 ‘호지’ 않은 옷, 뜻밖에도 ‘호다’라는 말을 나는 성경에서 만났다. 요한복음 19장 23절이었다. ‘호다’는 헝겊을 여러 겹 겹쳐 대고 땀을 곱걸지 않은 채 성기게 꿰매는 것을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님의 호지 않은 속옷을 예수님의 마음이 담긴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나누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이해를 했다.
DMZ 인근 마을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갈라진 이 땅이 하나 되기를 기도했다. 아픔과 상처의 자리에 평화 임하기를, 내가 걸어간 걸음이 이 땅을 호는 한 땀이 되기를 원했다.
그때 그 길을 걸을 때 가장 흔하게 눈에 띄었던 것이 ‘지뢰’ 경고판이었다. 붉은색 바탕의 역삼각형 표지판에 지뢰라 쓰인 경고문이 철조망을 따라 내내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뢰라 쓰인 경고판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손을 잡았다. 맞다, 진정한 평화는 좁쌀처럼 깔린 지뢰를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손을 마주잡을 때 찾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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