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43)
달팽이
오랜만에 달팽이를 보았다. 어릴 적 흔하게 보았던, 적당한 크기의 달팽이였다. 돌돌 감긴 황금빛 껍데기를 등에 지고 부지런히 길을 가고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정한 곳이 있는 것인지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더듬이로 연신 사방을 더듬으며 방향을 찾는 듯했다.
달팽이의 더듬이는 두 쌍이다. 큰 더듬이 끝에는 눈이 한 개씩 있고, 작은 더듬이 사이에 입이 있다. 입에는 까칠까칠한 이가 있어 풀잎이나 이끼 등을 먹는다. 달팽이를 보면 하나님이 유머가 참 많으신 분이라는 걸 생각하게 한다. 어찌 달팽이를 만드실 생각을 했을까 싶기 때문이다. 구조나 형태가 생존과는 상관없이 심미적이다 싶어 저런 모습으로 어찌 사나 싶은데, 달팽이에게도 있을 것은 다 있는 셈이다. 너나 걱정해, 달팽이는 자신을 보며 걱정을 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달팽이를 보고는 장난기가 동해 마른 풀잎을 찾아 더듬이를 건드렸다. 걸음은 그리 더디더니 더듬이를 줄이고 몸을 움츠리는 속도는 어찌 그리 빠른지, 웃음이 절로 났다. ‘미안, 장난이었어!’ 하며 잠시 기다리자, ‘내 그런 줄 알았어’ 하듯이 움츠렸던 몸과 더듬이를 다시 펴고는 자기 길을 가기 시작했다. 온몸이 투명해 보여 무엇으로도 자신을 지킬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달팽이, 그럴수록 달팽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간다.
달팽이를 들여다보다가 마음으로 인정한다. 그래, 네가 맞겠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지,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에는 예민한 더듬이가 있어, 누군가를 흉내 내지 않고 자기 걸음으로 가는, 방향이 정해졌으면 온몸으로 가기, 가만 쪼그리고 앉아 달팽이가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가르침을 마음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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