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41)

 

거울

 

의식하지 않아도 보게 되는 모습이 있다. 목양실 책상에 앉으면 책상 오른쪽으로 큰 창문이 있고, 고개만 살짝 돌려도 창밖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따금씩 마주하게 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있다. 정릉교회 예배당 마당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네모난 콘크리트 기둥이 서 있고, 그 기둥을 시작으로 담장이 이어지는데, 볼썽사나운 모습은 그 기둥 뒤에서 일어난다.


남자들이 문제다. 콘크리트 기둥을 핑계 삼아 벽에다 오줌을 눈다. 벽을 향해 돌아서면 기둥이 자신을 가려준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는 지나가는 행인으로부터 겨우 자신의 얼굴만을 가려줄 정도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벽에다 대고 오줌을 누는 뒷모습이 2층에서는 빤히 내려다보인다. 벌건 대낮에 남자 망신을 사는 모습은 아주 드문 모습이 아니어서, 한 두 명이 벌이는 못된 버릇은 아니지 싶었다.

 

그 모습이 영 언짢은 것은 오줌을 누는 벽이 공터 쪽에서 보면 허름한 벽이지만, 얇은 벽 반대편은 예배당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해당된다. 저런 일이 쌓이고 쌓이면 예배당으로 들어설 때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독한 지린내에 인상을 찌푸려야 할 터,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싶었다.

 

 



 



이런 경우 몇 가지 선택이 가능할 것이다. 직설적으로 고지식하게, 이왕이면 붉은색 스프레이로 ‘소변금지’라 벽에다 쓰든지, 조금은 유머를 담아 눈앞에서부터 점선을 그은 뒤 일을 다 보기 전쯤 눈길이 멈출 만한 곳에 가위를 그려놓는 것이다.

 

생각하다가 다른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벽에다가 작은 거울을 하나 달았다. 딱 그 자리에 서면 자기 얼굴이 보일 딱 그 자리에. 그런 이유로 정릉교회 초입 기둥 뒤편 허름한 벽엔 거울 하나가 달려 있다. 허름한 공터에서 누가 거울을 본다고 벽에다 거울을 달았을까, 지나가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 할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그곳에 서서 바지춤을 내리려던 누군가도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갸웃 하기를.

 

거울 때문일까, 거울을 달고 보름쯤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데 아직은 그 자리에 서서 자기 얼굴을 무시하는 이를 보질 못했다. 그렇다고 노상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니니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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