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42)

 

저물 때 찾아온 사람들

 

저물어 해 질 때에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데리고 왔다.(마가복음 1:32) 그들은 왜 해가 질 때에 왔을까? 하루 일이 바빴던 것일까, 한낮의 더위를 피해 날이 선선해지기를 기다렸던 것일까?


짚이는 이유가 있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21절) 안식일 법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생명이 위급한 환자 외엔 고칠 수가 없었다. 필시 그들은 안식일 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 안식일의 해가 질 때를 기다려 병자들을 데리고 왔을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주신다. 예수님은 굳이 안식일 법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었다. 안식일이라고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다(마가복음 3:4)고 하신 분이시다. 당시의 종교적인 잣대로는 어림도 없는 생각이지만, 하나님께 붙잡힌 예수님은 사람이 만든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우셨다. 어찌 하나님의 뜻을 사람의 규정 안에 가둘 수 있을까, 하나님의 뜻을 따를 뿐이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이 조심스럽게 안식일의 해가 저물 때를 기다려 찾아온 것이었지만, 그들을 사랑으로 맞아주신 것이었다.
  

 

 

 


다들 바쁜 목회 일정,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모일 수 있는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친구가 이 땅을 훌쩍 떠난 지 1년째 되는  날, 그냥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눈에 선한 친구의 사진을 제단 앞에 놓았고, 그 옆에 하얀 빛깔의 꽃을 놓았다. 동기 목사들이 모이는 날, 나는 그렇게 자리만 만들자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말씀을 나누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 곁을 떠난 친구야 말로 저물어 해 질 때에 찾아온 사람들을 만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사회에서 외면 받던 사람들, 중심에서 밀려나 무시당하던 사람들, 친구는 그들을 만나고 품어주는 삶을 살았다.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때로는 오해를 받고 때로는 비난을 받고,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누가 무어라 하든지 친구는 변함없이 약자 편에 섰고 소수 편에 섰다.

 

돌아보니 그랬다. 저물 때에 찾아온 사람들을 만난 사람, 친구는 세상 규정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속 좁은 세상을 향해 웃어 주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떠난 친구가 더욱 그리웠다. 그가 남긴 빈자리가 더욱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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