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46)
대답
벽에다 대고 방뇨를 하는 이들을 위해 벽에다 작은 거울을 달았던 것은 일종의 대답이었다. 자기 얼굴을 보며 방뇨하는 일은 공존할 수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목양실에 앉아 있다 보면 갑자기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유리창에 부딪치는 새다. 날아가던 새가 유리창을 분간하지 못한 채 되게 부딪치고 마는 것이다. 깜짝 놀라 다시 날아가는 새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다. 엊그제는 바닥에 떨어져 죽어 있는 새를 보았다.
생각을 하다가 교회 조경위원회를 맡고 있는 홍 권사님께 부탁을 했다. 창문 쪽 마당에 느티나무를 심으면 좋겠다고. 느티나무가 자라면 창가에 푸른 그늘을 드리워 줄 뿐만이 아니라 새들이 부딪치는 일도 사라질 터. 나무를 심는 것이 대답이겠다 싶었다.
대화를 나누던 권사님이 한숨을 쉬며 뜻밖의 곤혹스러움을 토로한다. 조경 일을 하는 권사님은 바쁜 중에도 틈틈이 교회에 들러 예배당 곳곳에 꽃을 심고 가꾼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예배당 마당에 심은 꽃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캐 간다는 것인데, 꽃을 아는 사람이라 했다. 귀한 꽃만 골라 캐간다니 말이다. 아무리 꽃을 사랑해도 그렇지 어찌 예배당 마당에 심어놓은 꽃을 캐 갈 수가 있을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누가 캐 갔든 그 사람 정원에서 꽃이 잘 자라면 좋겠다고 권사님은 꽃 같은 말을 했지만, 그런 볼썽사나운 심사를 두고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인지, 대답이 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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