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0)
하마터면
오늘 아침에는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한 뻔했다. 새벽기도를 마친 후 목양실 책상에 앉아 있다가 창문을 통해 할머니 두 분이 예배당 마당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한 할머니의 손에 검정색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나는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 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대하기 얼마 전, 할머니 두 분이 예배당 마당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았다. 두 사람은 예배당 앞 화단 쪽으로 갔다. 할머니들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예배당 화단에 심어 놓은 꽃을 누군가가 캐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귀한 꽃을 골라 캐간다니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싶었고,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예배당 마당으로 들어서는 이가 있으니 어찌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유심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파고라 아래 벤치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들은 이야기를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리고는 다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만약 할머니들의 나중 모습만 보았다면, 마당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돌아서는 한 할머니의 손에 검정 비닐봉투가 들려 있는 모습만 보았다면,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을 것이다.
달려 나가 할머니를 만나 봉투 속에 꽃이 담겨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을 하며 비닐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여쭸을 것이었다. 아무리 점잖게 이야기를 한다 할지라도 교회의 담임목사가 그렇게 생각하고 묻는다는 것은 할머니들께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일, 온 동네에 소문이 날 일, 치명적인 실수를 할 뻔 한 것이었다.
‘도둑을 맞으면 어미 품도 들춰 본다’는 속담이 있다. 도둑을 맞은 사람 눈에는 모든 이들이 다 도둑처럼 보인다. 모두가 수상쩍기 마련이다. 세상은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법이어서 선한 마음으로 보면 믿지 못할 사람이 없고, 의심하는 마음으로 보면 믿을 사람이 없는 법이다.
오늘 아침, 하마터면 나는 어미 품을 들춰볼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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