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4)
오디가 익는 계절
피기도 전에 잘리는 담배 꽃 이야기를 듣고는 담배 꽃엔 예수님의 십자가와 어머니의 희생이 담겨 있는 것 같다며 아직 본 적이 없다는 꽃을 보기 위해 시골을 찾았을 때, 담배 밭 초입에 선 뽕나무에는 오디가 잔뜩 달려 있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까만 오디가 종알종알 가지마다 가득했다.
바닥에도 떨어진 것이 까맣게 널려 있었으니 오디는 익을 대로 익은 것이었다. 보기로 한 담배 꽃은 뒷전, 우리는 오디를 따먹기 시작했다. 손과 입이 금방 까맣게 변했는데, 그런 서로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 같이 웃어댔다.
오디를 따먹다 보니 어릴 적 소리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소리가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오더니 물었다.
“아빠, 뽕나무를 보지 않고도 오디가 익은 줄 어떻게 아는지 알아요?”
오디가 익었는지를 확인하려면 뽕나무를 보는 일이 당연한 일, 나무를 보지 않고도 오디 익은 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궁금했다.
“새똥을 보면 알아요, 새똥이 까매지면 오디가 익은 거예요.”
오디를 따먹은 새가 똥을 누면 새똥의 색깔이 오디 빛깔, 새똥만 살펴도 오디 익은 걸 알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관찰하며 자라는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다시 한 번 오디의 계절이 왔다. 오디가 달린 뽕나무 앞에서는 내남없이 모두가 아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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