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12)
씨는 열매보다 작다
씨는 열매보다 작다. 지극히 당연하고 단순한 이 사실을 나는 단강에서 배웠다. 그것도 단강에 들어간 지 7년 여 세월이 지났을 무렵.
당시엔 잎담배 농사가 동네의 주된 농사였다. 농자금을 보조해 주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수매가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흙벽돌로 된 건조실이 서 있었는데, 생각 없이 바라보면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건조실은 동네에서 가장 높은 집이었다.
지금도 그날을 기억한다. 잎담배 모종을 밭에 옮겨 심던 날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일을 하는 밭을 찾아갔다. 손에 커피를 들고 있었는지는 기억에 자신이 없다. 이제 막 나비 날개만큼 잎을 펼친 모종을 내다심는 것이었다.
잎담배를 심는 모습을 바라볼 때 번개처럼 마음을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아, 씨는 열매보다 작은 것이구나!’ 조금 과장하면 그 순간은 깨달음의 순간에 가까웠다.
잎담배 씨는 재처럼 작아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성경에 나오는 ‘겨자씨’ 이야기를 듣고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는 겨자씨가 아니라 담배씨라고 일러준 이들도 단강의 교우들이었다. 그 작은 씨를 심으면 싹이 나고, 싹이 난 것을 모종을 하여 밭에 내다심으면 내 자리를 찾았다는 듯 잎담배는 쑥쑥 자라 마침내 어른 키를 넘는다.
그렇듯 작은 씨를 심어 큰 열매를 거두는 것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큰 씨를 심어 작은 열매를 거두는 것은 없다. 무시하기 좋을 만큼 작은 것에서 의미 있는 일은 시작된다. 거창한 것, 대단한 것,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것에만 마음을 빼앗긴다면 그는 씨앗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다.
씨는 열매보다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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