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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콩나물국과 바지락조개

by 한종호 2019. 8. 6.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3)

 

콩나물국과 바지락조개

 

전교인수련회를 잘 마쳤다. 아무 사고가 없었다는 것보다는 함께 한 시간이 의미 있고 즐거웠기에 감사한 마음이 크다. <나보다 아름다운 우리>라는 주제를 가지고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가 한 자리에 모여 어색함을 지우고 벽을 허물었다. 프로그램마다 주제를 담아내어 뜻 깊은 수련회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어떤 어색함과 벽이 존재하는지를 실감하게 된 일도 있었다. 수련회를 마치는 날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전날 이야기를 한 대로 반찬 배식을 장로님들과 나와 아내가 맡았다. 매번 여선교회에서 수고를 했는데, 한 끼만이라도 수고를 하기로 했다.

 

나란히 반찬이 놓인 테이블 끝, 나는 국을 푸기로 했다. 밥과 반찬을 타가지고 오는 교우들에게 국을 퍼서 전하는 일이었다. 그날 아침에 준비된 국은 콩나물국이었는데, 콩나물국은 생각보다 푸기가 어려웠다. 콩나물이 서로 엉겨 있어 일정한 양을 담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교우들은 장로님들과 목사님이 배식을 한다며 좋아라 밥과 반찬을 받아 자리를 찾아갔다.

 

 

 


그렇게 국을 푸고 있을 때 식사를 마친 원로 권사님 한 분이 식사한 그릇을 놓아두는 곳으로 가다가 나를 찾아와 한 마디를 했다. “왜 내게는 바지락조개를 안 줬어요?” “덕분에 잘 먹었어요.” 하고 인사를 하러 오신 줄로 알았던 나는 순간적으로 두 가지 사실에 놀라고 당황했다. 반응이 너무 즉각적이어서 놀랐고, 권사님의 태도가 진지한 것에 당황했다. 

 

사실은 이랬다. 콩나물국을 담은 통 위쪽에는 띠처럼 콩나물이 모여 있었다. 띠를 헤쳐 가며 콩나물을 푸기 시작했는데, 국을 제법 푸다보니 국 아래쪽에서 바지락조개가 나타났다. 조개가 아래쪽에 가라앉아 있는 것을 몰랐던 것이었다. 그때부턴 콩나물과 조개를 같이 넣기 시작한 것인데, 국을 먼저 탄 권사님이 밥을 먹다보니 다른 이들 국그릇엔 권사님 그릇에는 없는 조개가 보였던 것이었다. 

 

폐회예배 설교 시간, 말씀을 나누기 전에 먼저 이야기를 했다.


“잊을까 봐 먼저 이야기를 하려고요. 오늘 아침식사를 할 때 국에 바지락조개를 드리지 못한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콩나물국을 푸다가 나중에 바지락조개가 나왔을 때, 저도 당황했답니다.”

 

웃으며 이야기를 했고, 교우들도 웃었지만 뭔지 모를 허전함은 여전히 남았다. <나보다 아름다운 우리>라는 주제로 수련회를 은혜롭게 마치는 날, 우리는 여전히 이런 한계를 가지고 있구나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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