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1)
징검다리
오래 전 단강에서 보낸 시간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보와 함께 기억을 하곤 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주보에 담았다. 땅 끝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여겨졌던 일들, 그 일을 기록하는 것은 내가 이웃에게 다가가는 한 방법이었고, 내게 허락하신 땅을 사랑하는 한 선택이었다. 고흐가 그림을 통해 땅의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나는 이야기를 통해 다가갔다. 주보의 이름도 <얘기마을>이었다.
지렁이 글씨로 글을 쓰면 아내가 또박또박 옮겨 썼다. 때로는 아내조차 내가 쓴 글씨를 읽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글씨를 읽지 말고 이미지를 읽으라 말하고는 했다. 그렇게 손으로 써서 만든 주보는 민들레 씨앗처럼 조용히 퍼져갔고, 700여 명의 독자가 있었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믿음의 식구들이었다.
단강을 떠나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서로에게 그랬다. 떠남을 얼마 앞두고 만든 주보 표지에 ‘징검다리’라는 짤막한 글을 실었다.
내가 아니면 건너지 못한다.
나는 건너지 못한다.
떠나는 날이 보름여 남았을 때니 단강을 떠난다는 것을 교우들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떠나는 마음을 남기고 싶었다. 우연히 만난 옛 주보 표지에 실린 ‘징검다리’, 나는 여전히 징검다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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