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3)
내 몸이 너무 성하다
거꾸로 걷거나 뒷걸음질을 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정록 시인의 시를 읽다가 그의 시를 모두 읽고 싶어 뒤늦게 구한 책 중의 하나가 <벌레의 집은 따뜻하다>인데, 보니 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첫 번째 시집을 뒤늦게 읽게 된 것이었다. 다시 한 번 곱씹으니 맞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사람 손을 많이 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몸이 너무 성하다니! 나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고, 사람들 속에서 살지만 삶을 모른다고, 여전히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짧은 말 속에 자신의 한계를 겸손하게 밝힌다. 그런 표현과 단어조차 흔하고 뻔해 슬그머니 나무 이야기를 통해서.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책머리에 실린 ‘서시’가 매우 짧았다. 군더더기 말을 버려 끝내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것이 시라면, 시인다운 서시다 싶다.
오히려 그런 고백이 시인을 향한 신뢰로 확장된다. 다음 장을 넘기는 마음에 설렘과 기대가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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