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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내 몸이 너무 성하다

by 한종호 2019. 8. 17.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3)

 

내 몸이 너무 성하다

 

 


 

거꾸로 걷거나 뒷걸음질을 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정록 시인의 시를 읽다가 그의 시를 모두 읽고 싶어 뒤늦게 구한 책 중의 하나가 <벌레의 집은 따뜻하다>인데, 보니 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첫 번째 시집을 뒤늦게 읽게 된 것이었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책머리에 실린 ‘서시’가 매우 짧았다. 군더더기 말을 버려 끝내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것이 시라면, 시인다운 서시다 싶다. 

 

다시 한 번 곱씹으니 맞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사람 손을 많이 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몸이 너무 성하다니! 나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고, 사람들 속에서 살지만 삶을 모른다고, 여전히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짧은 말 속에 자신의 한계를 겸손하게 밝힌다. 그런 표현과 단어조차 흔하고 뻔해 슬그머니 나무 이야기를 통해서. 

오히려 그런 고백이 시인을 향한 신뢰로 확장된다. 다음 장을 넘기는 마음에 설렘과 기대가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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