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2)

 

때 아닌 때
    


1981년, 그해 가을을 잊을 수 없다. 짝대기 하나를 달고 포상 휴가를 나온다는 것은 감히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군에 입대한지 넉 달여 만의 일이었으니 그야말로 꿈같은 휴가였다. 
논산에서 훈련을 마친 뒤 자대에 배치를 받자마자 배구대표선수로 뽑혔고, 광주 상무대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을 했다. 9인제 배구였는데 나는 레프트 공격수였다. 아무리 규모가 큰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해도 이등병에게까지 휴가를 줄까 염려했던 것은 기우, 보란 듯이 3박4일간의 휴가를 받은 것이었으니 군 생활 중에 누릴 수 있는 기쁨 중 그만한 것도 드물 것이었다.

구름 위를 날아가는 것 같은 기차를 타고 올라와 수원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부곡역에 내린 나는 먼저 교회를 찾아갔다. 예배당에서 기도를 드린 뒤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려 사택에 들렀다. 사모님이 나오셨는데, 나를 보더니 왈칵 눈물을 쏟으신다. 반가움과는 다른 눈물이었다. 잠시 뒤에 나오신 목사님도 마찬가지였다. 눈물부터 보이셨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더 참지를 못하고 여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지요?” 질문을 받은 두 분은 당황하셨다. 모르고 왔느냐며 되물으셨다. 

막내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그렇게 들어야 했다. 나를 좋아하고 따르던, 자기도 신학을 공부해서 형을 도와 목회를 하고 싶은 꿈을 가졌던, 형이 우승을 하면 휴가를 나갈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는 매일 밤 예배당을 찾아 기도를 드렸던, 우승을 하며 누구보다 먼저 떠올랐던, 휴가를 나오며 가장 싶었던 사랑하는 동생이었다.


사고였다. 막 입대한 내가 충격을 받을까 집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막 장례를 마친 뒤였다. 포상 휴가를 받아 기쁨으로 달려온 내게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내가 동생을 잃은 것과 어머니가 막내아들을 잃은 것은 달랐다. 비교할 수가 없는 슬픔과 고통이었다. 어머니는 당신 생의 유일한 벗을 잃었다고 했다. 그만큼 막내는 심성이 착했고 다정다감했다. 그런 어머니 앞에서 나는 눈물조차 보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를 모르겠는 시간을 뒤로 하고, 부대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그 때의 쓸쓸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눈물에 젖은 기도를 드렸다. ‘내 것 아닌 것, 내 것이라 하지 않게 하소서.’

 


부대에서는 포병 생활과 군종 생활을 겸하여 했는데, 어느 날 말씀을 준비하다가 마가복음 11장을 읽게 되었다. 잎만 무성한 채 열매가 없었던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난히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었다.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는 구절이었다.


예수께서 베다니 지역을 지나가실 때는 유월절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6월말 7월초에 열매를 맺는 나무에게 4월에 열매를 찾는 것은 누가 봐도 부당한 일이었다. 나무 잘못이 아니라 열매를 찾는 이의 잘못이었다. 동생을 보낸 슬픔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당하게 여겨졌던 그 말씀은 이런 의미로 다가왔다. ‘주님은 때 아닌 때에 열매를 요구할 수 있는 분이구나.’

며칠 전 새벽기도 시간에 만난 본문이 같은 본문이었다. 같은 본문 앞에서 다시 한 번 동생을 떠올리게 되었다. ‘너는 멀리 떠난 것이 아니다. 이제부턴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살자’ 했던, 귀대하던 기차 안에서 가졌던 다짐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우리의 삶이란 때 아닌 때에 열매를 찾는 그분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 삶이다. 시간이 우리 몫이 아닌 것처럼 항의나 원망 또한 우리 몫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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