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4)
저만치
우연히 소월의 시 ‘산유화’를 대하는 순간, 떠오른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험에 나왔던 문제가 있다. 당시 시험문제의 예문으로 주어진 시가 소월의 ‘산유화’였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산유화’라는 시에서 소월과 두보의 시 세계를 구분할 수 있는 단어 하나를 찾아서 쓰고, 그 이유를 쓰라는 문제였다. 문제를 대하는 순간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았다. 한국과 중국을 대표할 만한 두 시인의 시 세계를 어찌 단어 하나로 찾아내라는 것일까, 그런 일이 가당한 일일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답은 ‘저만치’였다. ‘저만치’라는 단어가 소월과 두보를 구분할 수 있는 단어였는데, ‘저만치’라는 단어가 자연과의 일정한 거리를 두는 ‘관조’의 태도라면, 두보의 시 세계는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기억에 없다. 기억에 없는 걸 보면 문제 앞에서 감탄만 했을 뿐, 정답을 쓰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때 그 국어문제는 단어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가르침으로 남아 있다.
그런 생각이 가능한 것이 어찌 시인의 시 세계뿐이겠는가? 우리가 하는 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말 한 마디에 말하는 이의 마음과 생각이 묻어난다. 별 생각 없이 하는 말 한 마디 속에도 말하는 사람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담기고는 한다. 40년이 지나도록 국어시험 문제 하나가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하는 한 마디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오랫동안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씨앗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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