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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시간이라는 약

by 한종호 2019. 9. 10.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5)

 

시간이라는 약

 

정릉교회 목양실은 별관 2층에 있는데, 창문에 서서 바라보면 바로 앞으로는 삼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겨우 자동차 교행이 가능한 길 세 개가 서로 만난다. 여러 번 때운 자국이 남아 있는 도로에는 부황을 뜬 자국처럼 맨홀 뚜껑들이 있고, 대추나무에 연줄 걸린 듯 전선이 어지럽게 묶인 전봇대 여러 개, 자동차보다도 애인 만나러 가는 젊은이가 걸음을 멈춰 얼굴을 바라보는 반사경 등이 뒤섞인 삼거리엔 늘 차와 사람들이 오고간다.


삼거리라 했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네 개의 길이다. 예배당으로 들어오는 길까지 합하면 사거리가 되는 셈이어서 열십자 모양을 하고 있다. 정릉에는 유난히 언덕이 많고 골목길이 많은데 예배당 앞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복잡한 길 주변으로 공사가 끊이질 않다보니 차가 엉기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한창 건축 중인 제법 큰 건축물 안식관을 끼고 있는데다가 인근에 연립주택을 짓는 곳이 여럿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일이다. 덩치가 큰 기계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종일 공사를 하다보면 가뜩이나 복잡한 길은 더욱 복잡해진다. 도로가 아닌 예배당 입구로 차를 빼보기도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은 자주 발생한다.    

 
동네로 올라오는 차와 큰 길로 내려가는 차, 골목에서 나오려는 차와 올라가려는 차, 사방으로 차들이 엉기면 바라보는 내가 보기에도 난감하다. 어디에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짐작이 안 될 정도다. 상황이 그렇게 되면 자동차만 꼬이는 것이 아니라 심사도 꼬여 경적소리가 요란해지고 서로 질러대는 고함소리가 거칠어지곤 한다.

 

그런데 신기하다. 아무리 엉긴 상태가 심각하다 해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풀려 있다. 누가 어떻게 해서 풀었는지는 몰라도 풀릴 것 같지 않아 보였던 상황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풀려 있곤 한다. 온종일, 혹은 몇날 며칠 엉겨 있는 모습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혹시 우리네 삶도 그런 것 아닐까?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상황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언제 풀렸는지 모르게 풀리는 것 아닐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그래서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일이 복잡하게 엉겼다고 애면글면 속을 끓일 것이 아니라 슬며시 시간에 맡겨보는 것도 한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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