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3)
창(窓)
때늦은 휴가를 다녀왔다. 교회 안의 여름행사를 모두 마치고, 다른 교직원들이 모두 휴가를 다녀온 뒤에 떠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휴가철이 끝나서인지 가는 곳마다 한적한 것도 좋은 일이었다. 두 분 선배 목사님 내외분과 함께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하필이면 뒤늦게 찾아온 태풍으로 인해 떠나는 것 자체가 아슬아슬했다. 줄줄이 취소되었던 항공편이 우리가 예약한 비행기부터 가능했으니까.
제주도는 갈 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오래 머물 일이 없다보니 그럴 것이다. 섬이면서도 늘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온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따로 급할 것도 없고 굳이 지켜야 할 일정도 없이 마음가는대로 움직였는데, 그런 마음을 안다는 듯이 섬은 가슴을 열 듯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자유롭게 정해진 일정 중에 <추사기념관> 방문이 있었다. 추사가 유배를 왔을 때 머물던 집에 세운 기념관이었다. 주차장도 널찍했고, 입장료도 없었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념관의 모양을 ‘세한도’에 그려진 집 모양대로 지은 것이었다. 어서 유배의 시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추사의 마음이었을까, 세한도 그림 속 집에는 유일하게 문이 하나 그려져 있는데 기념관은 그 문마저 건축물에 반영하고 있었다.
휴가 중 추사기념관을 찾은 보람은 단 하나, 그곳에서 만난 글씨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넓지 않은 기념관을 둘러보다가 추사가 쓴 글씨들을 만났다. 그 중의 하나가 현판을 탁본한 것이었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小窓多明 使我久坐
작은 창가에 빛이 밝으니 나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하네
글의 내용도 좋았고, 그런 내용을 담아낸 글씨도 좋았다. 마치 추사가 작은 창가에 앉아 빛을 즐기고 있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유난히 마음에 다가온 글자가 하나 있었다. ‘窓’이었다. 그 글자를 보는 순간, 마치 창(槍)에 찔리는 것 같았다.
추사는 창이라는 글자를 쓰는 대신 창을 그려놓았다. 설마 추사가 창이라는 한문을 떠올리지 못했을 리는 만무할 터, 작은 창에 가득 머문 맑은 빛에 취한 듯 창틀을 그리는 것으로 글자를 대신한 것이었다.
추사의 글씨 속에 흐르는 자유로움은 곧 그의 마음이었던 것이었다. 창이라는 글씨를 쓰는 대신 창을 그릴 만큼. 추사의 마음 한 자락 마음에 담고 돌아설 때, 문득 돌담을 끼고 불어오는 제주의 바람은 유난히 자유롭고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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