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4)
수고를 안다면
매일 아침마다 전해지는 고마운 문자가 있다. 이민재 목사님이 보내오는 성서일과 본문이다. 마치 일용할 양식을 전해 받는 느낌이다. 성서일과 본문을 받으면 먼저 읽은 뒤 정릉교회 교직원들과 시무장로님들께 보낸다. 같은 말씀을 나누는 것이 의미 있는 동행에 좋은 도움이 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받은 문자를 보내는 일은 기계에 영 서툰 내게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받은 문자를 길게 누른 뒤 전달 기능을 사용하면 된다.(어떤 기능을 두 번까지 해보는 것은 그래도 가능하다.)
이번에 두 분 선배 목사님 내외분과 같이 여행을 하며 아침마다 보게 된 모습이 있다. 이민재 목사님은 아침마다 노트북 앞에 앉아 뭔가 작업을 했다. 원고를 쓰시나 싶어 여쭈니, 성서일과 본문을 보내는 일이었다. 보니 목사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보내고 있었다. 문자를 받은 내가 단톡방을 통해 보내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제법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보내고 있으니 시간도 제법 걸렸고, 수고도 여간이 아니다 싶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는 새삼 인사를 드렸다.
“늘 고맙게 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욱 더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야겠어요.”
사람 나이 여든여덟 살을 두고 ‘미수’(米壽)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쌀 미’(米)라는 글자가 ‘八’과 ‘八’이 합해진 글자이기 때문이다. 쌀 한 톨을 먹기 위해서는 농부의 손이 여든여덟 번 가야 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 모든 농부의 수고 위에 하늘의 은총에 보태지지 않으면 우리는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누군가의 수고를 안다면 세상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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