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경지의 한 자락
小窓多明 작은 창가에 빛이 밝으니
使我久坐 나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하네
제주도 <추사기념관>에 걸린 추사의 글 중 마음을 찌르듯 다가온 글자는 ‘窓’이었다. ‘窓’이란 글자 대신 창문틀을 그려놓았으니, 그 자유분방함이 마치 달빛에 취한 사람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모든 글자가 그랬지만 또 하나 눈길이 머문 글자가 있었는데, ‘앉을 좌’(坐)였다. ‘坐’는 ‘흙’(土)에 ‘두 사람’(人+人)을 합한 글자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형상을 담고 있다. 그런데 추사는 ‘坐’를 쓰며 ‘土’ 위에 네모 두 개를 올려둔 것으로 썼다. 네모가 생각보다 큰데, ‘입 구’(口)로도 보이고 창문을 그렸나 싶기도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漢字正解>를 펼쳐 ‘坐’라는 글자를 찾아보았다. 하나의 글자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갑골문(甲骨文), 금문(金文), 소전(小篆), 예서(隸書), 해서(楷書), 초서(草書), 행서(行書) 등으로는 어떻게 쓰이는 지가 담겨 있는 책이다. 그 중 예서에 해당하는 글씨를 보니, 추사가 쓴 글씨처럼 쓰여 있었다. 물론 추사의 글씨에서는 두 개의 네모가 꼭대기 부근에 자유롭게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찌 감히 추사의 글씨를 논할까만, 이미 추사는 글자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었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자유로움을 더해 마음껏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지 싶다. 소경이 코끼리 다리 더듬듯 헤아릴 길 없는 까마득한 경지의 한 자락을 어렴풋이 헤아려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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