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5)
보이지 않는 길
한동안 새들로 인한 고민이 컸었다. 날아가던 새가 목양실 창문에 부딪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곤 했던 것이다. 한쪽 면이 모두 통유리로 되어 있으니 새들에게는 치명적인 구조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책상에 앉아있다 보면 “퉁!” 하며 유리에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그러면 어떤 새는 용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날아갔지만 모든 새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창문 아래 바닥에 죽은 새가 보일 때가 있었다. 새가 부딪치는 것을 막아보려고 블라인드를 낮게 내리고, 가능하면 창문을 열어두었고, 공터에 키가 빨리 크는 나무를 심을 궁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새가 부딪치는 일이 없어졌다. 가만 생각해보니 새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왜 그럴까? 이젠 새들도 이곳에 유리벽이 있다는 것을 알아 피해가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는 일이다. 어찌 새들의 구역이 따로 있어 이곳을 지나는 모든 새들이 유리창을 숙지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한 가지 짚이는 것이 있다. 지금 창문 밖으로는 큰 건물 하나가 들어서는 중이다. 여선교회 안식관이다. 감리교 은퇴 여교역자들이 생활할 거처를 신축하고 있는 것이다. 제법 큰 건물이 맞은편에 들어서니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던 풍경이 답답하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며 새들의 길도 달라진 것일 게다. 건물을 뚫고 날아올 수는 없는 것이니까. 건물을 피해서 날다보니 창문 쪽으로 날아올 일도 없어진 것이고, 더 이상 창문에 부딪치는 일도 없어진 것이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누군가의 길은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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