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6)
거오재 노오재
냉천동에 있는 감신대에 입학하여 만난 친구 중에는 한남동에 사는 친구가 있었다. 서울에 머물 일이 있으면 친구 집을 찾곤 했다.
한남동을 찾으면 즐겨 찼던 곳이 있었는데 ‘胎’라는 찻집이었다. 순천향병원 맞은편에 있는, 가로수 플라타너스 나무가 2층 창문 바로 앞에 그늘을 드리우는 찻집이었다. 창가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했고, 손님이 없을 때는 연극을 하는 주인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당시만 해도 찻집에는 성냥을 선물로 준비해 두곤 했다. 찻집 이름이 새겨진 작은 성냥이었다. 그런데 ‘胎’에 있는 성냥은 특이했다. 한쪽 면에 한문으로 된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居惡在 路惡在’라는 구절이었다. 신학생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뜻을 묻는 대신 혼자서 그 뜻을 헤아려보기로 했다.
한 달여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항복하듯이 주인에게 물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읽기부터 잘못하고 있었다. ‘거악재 노악재’로 읽었는데, ‘惡’은 ‘악’이 아니라 ‘오’로 읽어야 했다.
'거오재 노오재'(居惡在 路惡在)는 옛 선시 중의 한 구절이었다. 그 뜻이 그윽했다. '머물 곳도 마땅치 않고 갈 길도 마땅치 않다'였다. 그 짧은 한 마디로 우리 삶의 풍경을 오롯이 담아내다니, 선시의 창끝이 매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8년의 일이었으니 오래 전의 일이다. ‘胎’라는 찻집이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득한 세월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 성냥갑에서 본 선시 하나는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다. 머물 곳도 마땅치 않고 갈 길도 마땅치 않다고, 삶이 그렇게 보일 때마다 불쑥 떠오르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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